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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매일성경 묵상 2011.12.23. 시편 119편 33-48절

* 매일성경 묵상이라는 폴더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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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시편 119편 33절부터 4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의 제 5연과 6연이 되겠네요. 



33-34절
 
시인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주의 율례의 도'를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시인은 배우기를 원한다. 그리고 깨닫기를 원한다. 먼저 잘, 그리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것이 완전히 내면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 생각과 마음의 법칙이 되어야 하고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순종의 추진력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 순종의 기본은 바로 배움이며, 그 배움의 내면화이다.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두 가지를 위한 시간과 마음의 투자가 필요하다. 

35 - 40절
그러나 그는 말씀대로 살겠다는 자신의 서원을 지키려면 또 다른 은혜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배우고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라고 기도드린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 주의 첩경을 즐거워하지만 그 즐거움만으로는 충분치 못함을 잘 알고 있다. 만약 방해가 없고 장애물이 없다면 순풍에 돛을 단듯이 순종의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다. 순종의 항해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있다. 가장 큰 암초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은 선을 향한 의지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악을 향한 끌림도 가지고 있다. 마치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소용돌이를 향하는 선원들처럼... 그래서 시인은 간구한다. 자신이 허탄한 것을 향한 탐욕을 향하지 않고 그 마음이 '주의 증거'에 고정되게 해 달라고, 혹 그런 것들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 질때면 다시 영혼에 새 생명을 주셔서 활력을 달라고 말이다. 또 하나의 암초는 바로 사람들의 비난이다. 시인은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다가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 그리고 몰이해 속에 빠지게 되는 일을 시인은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찾아오지 않게 해 달라고, 또 찾아오더라도 곧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탐욕의 유혹이 있으며, 허탄한 것을 향한 이끌림이 있다. 또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있는 것은 있다고 말씀드려야 한다.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정직한 기도이다.  

41-44절
시인은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는 '주의 말씀대로'라고 말하면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구하고 있으며, 기도를 드린 후에 '왜냐하면(우리 말 성경에는 '...이니이다'라는 말 속에 숨어 있다)'이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셔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시인이 제시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왔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가 하나님의 규례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수가 없다. 
- 기도는 막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약속(언약)을 근거로 한다. 그래서 기도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렇게 하였사오니 하나님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렇게 하소서'라는 형식이 될 때 가장 강력하고 확신있는 기도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신실한 약속'이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 청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신실함은 항상 부족하고 형편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하였사오니 당신은 저렇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이 기도 후에 확신있는 서원을 드린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이것이 그의 기도의 결론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기도에 근거해서 다시 확신있는 서원을 드리고 있다.
-그가 다시 하나님의 법에 대한 헌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그는 단지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말씀에 따라 살았을 때 주어질 현실적인 보상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법을 '항상 영영히 끊임없이' 순종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분명히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참된 만족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45-48절
그 다음에 시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주눅들어 있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그의 모든 미래에 대한 확신의 근거는 바로 이 사실에 근거한다. 그는 주의 법도를 구했다. 탐욕을 구한 것도 아니고, 허탄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니다. 그는 진실로 주의 법도를 바라는 사람이 누리게 될 '기이한 복'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기도를 통해서 그 복에 대한 확신을 회복했다. 첫째, 자유롭게 행보하게 될 것. 둘째, 왕들 앞에서도 하나님의 증거있는 약속과 교훈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할 것. 셋째, 앞으로는 주의 계명을 더욱 즐거워하게 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사랑하는 주의 계명을 묵상하게 될 것. 이것이 그가 확신하는 미래의 삶의 모습과 그러한 삶이 가져다 줄 복이었다. 자유, 당당함, 즐거움...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약속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이한 복'이다. 
- 우리의 자유, 당당함, 그리고 즐거움.... 우리는 이런 것들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디서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시인은 오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지도를 우리 손에 쥐어준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그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사는 것. 이것이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참되며 또 확실한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을 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항시 겸손한 기도,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며, 그 기도는 단순히 실천의 힘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그 말씀과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진실로 기뻐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여야 한다. 또한 막연한 기도여서는 안되며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신 약속에 의지해서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기도가 끊이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순종의 길을 가면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 물론 성경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묵상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보려는 노력도 생략되어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