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요한복음 2장 13-22절
복음서들을 보면, 비유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 말로 비유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사물들과 사건들에서 가져다 쓰는 말이나 이야기들을 의미하지만 복음서의 비유들은 단순히 이런 의미가 아니라 여기에 더 중요한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습니다. 분명히 비유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일이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사용하시는 비유들은 그것을 들으면 그 이야기 자체는 알아듣겠는데, 그 이야기를 통해서 진짜로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는 더 모호해질 때가 더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비유라는 말의 더 깊고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비유인 동시에 수수께끼이기도 합니다. 그 뜻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전혀 진짜 뜻을 알 수 없는 그런 수수께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수수께끼같은 비유가 하나 나옵니다. 어제 살펴본대로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고, 그것을 휘두르시면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몰아냈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찾아와서 항의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한 인물인 것 같소만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놀라운 증거를 보여주시오.” 이 때 예수님의 수수께끼같은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은 헛 웃음을 웃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이 성전을 헐면 그걸 당신이 사흘안에 다시 짓는다구요?” 그저 말만 들으면 예수님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말이 맞습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이는 것은 예수님의 말을 그저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것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알아도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다 안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예언하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이 허물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찟김을 당하고 죽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성전을 삼일만에 다시 세우시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삼일만에 되살아 나실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이 그 말씀의 진짜 뜻이라는 것이죠. 여기까지 와야 이 수수께끼가 다 풀린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처음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로 끝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질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앞뒤가 맞으려면 이야기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부활이 가지는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되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야, 서론과 결론이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것은 성전을 허무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원래의 성전이 아니라 헤롯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또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시 지은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로 화려하게 지어져야 했고, 그래서 그것을 짓는데 46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규모와 화려함 때문에 성전은 당시의 유대인들의 자존심이자 자랑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성전 앞을 지날 때면, 마치 자기 집 자랑하듯이 “저 것 좀 봐라. 돌 하나만 해도 저만하다. 정말 굉장하지 않니?”라고 하며 서로 어깨를 으쓱이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성전은 이미 성전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성전이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 곳을 장터로 만들었던 장사치들과 제사장들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마치 부적이나 눈에 보이는 우상처럼 여겼습니다. 그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게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이들이 하나님 앞으로 진지하게 나아가는 길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제사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알맹이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껍데기만 있으면, 형식만 갖추면 알맹이는 보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성전에 갔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전은 실제로 성전 자체에는 잘못이 없을지라도 원래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갈라놓는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성전은 무너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는 더 가까워지고 또 진짜로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과 계속해서 동거하실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을 찟으셨습니다. 지금까지 그 분의 몸을 대신했던 성전에 채찍질을 해가며 성전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전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전을 성전답게, 그리고 온전히 다시 세우기 위한, 죽은 성전을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살아난 성전, 참된 성전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옛날의 죽은 성전은 무너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새 성전, 참으로 살아있는 진짜 성전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잘못된 성전을 허무시고 온전한 성전을 3일만에 다시 세우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만나시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수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교회도 있고, 은사도 있고, 직분도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맡겨주신 특별한 일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며, 그것들을 통해 우리를 더 가깝고 온전하게 만나시려고 주신 선물들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 분과 교제를 누리는 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보니 이것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목사라는 형식이, 목회자라는 사실이 마치 나를 하나님 곁으로 더 가까이 가져다 놓는 듯이 생각하고 그저 그 사실에만 안주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알량한 은사를 마치 내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인 양 착각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만으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그 분과의 교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직분이든, 은사든, 아니면 과거의 은혜나 복이든, 혹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다 선한 것들이지만 내가 그것을 받았고 또 가지고 있다는 형식적인 사실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의 복된 사귐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 묶이면 오히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심각하게 막혀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로 더 나아오라고 주신 은혜의 통로들이 오히려 은혜를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죽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처럼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그것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새 성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모든 은혜와 진리로 거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며, 거기서 그 분의 모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죽은 성전 안에 머무는 것, 그것은 편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 분과 온전한 교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내 안에, 그리고 나의 삶 속에 혹시 허물어 버려야할 죽은 성전은 없는지 곰곰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신앙적으로 안주하게 만드는 그런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물어 달라고 예수님께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로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새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이 주신 은혜와 의로움 속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식이 아니라, 타이틀이 아니라 단지 그 분의 은혜에만 의지할 때 우리의 삶과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참된 성전이 되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주님께서 다시 세우시는 새롭고 완전한 성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풍성하고 은혜넘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