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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24.새벽예배 -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요한복음 38)

요0622to31 -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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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6장 22-29절




사람들은 어딜가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놀라고, 때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따라다녔느냐 하면 꼭 요즘 청소년들이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따라다녔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도착한 적도 있었을 정도 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람들은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배를 빌려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까지 예수님을 쫓아 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팬 클럽이 버스를 대절해서 따라간 것입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라다녔습니까? 아마 그들 중에는 생업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다닌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몇 날 몇 일을 주님만 따라다녔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주님을 열성적으로 따라온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책망 섞인 충고를 하셨습니다.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보게 하시려고 했던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모든 말들과 일들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또 경험하게 주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로, 그리고 그저 신기한 경험을 또 하고 싶어서 주님을 따라다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영적인 호기심도 필요합니다.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신앙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하고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분명히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충분히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호기심이 되었건, 현실적인 필요가 되었건 건강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현실적인 필요가 해결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더욱 더 밝은 시력으로 하늘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더욱더 견고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호기심이 채워지고 현실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것을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을 자기실현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신앙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히 세속적인 시각에서의 성공을 이루기는 쉬울 것입니다. 자신의 소원, 자신의 뜻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사람은 참된 신앙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오늘 주님은 본문을 통해서 참된 신앙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좇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양식은 인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냐고, 무엇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냐고 묻습니다.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예수믿는 사람이 되면 일하는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만 노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것들을 ‘썩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그런 것들이 전혀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온통 걸어놓고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대신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내가 힘써서 얻으려는 것이 달라져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목적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백성의 삶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에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를 믿는 것 밖에는 길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분명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니 그야말로 그냥 예수님을 믿는 일로만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삶에 있어서는 믿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일입니다. 딱 한 가지 일만 해야한다면 바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의 성육신, 그 분의 죽음, 그리고 그 분의 부활……. 이 모든 것이 나의 죄를 처리하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믿음이 그저 마음 속에 있는 것만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말씀하신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지금 예수님을 열렬히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시는 거의 모든 이적을 목격한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통해 직접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그러니까 메시야로 믿는 믿음이 생겨난다면, 자기 영혼을 영원히 구원하실 분으로 믿는 믿믕이 생겨난다면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 되겠습니까? 그 믿음이 단지 마음 속에만 머물러 있는 믿음에서 끝날 수 있겠습니까? 그 모든 말씀을 듣고, 그 모든 행하신 일을 본 사람들……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삶의 방법, 그리고 그 분이 말씀으로 제시하셨던 하늘나라 백성의 삶의 방법을 따라가려고 애쓰고 힘쓰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또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늘나라의 백성이라는 확신을 얻게 될 것이고, 또 하늘나라가 얼마나 풍성한 나라인지, 그 나라의 백성들의 풍성한 삶의 방법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대로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썩는 양식이 아닌 영원히 있는 양식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가장 지혜롭고 능력있는 삶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 믿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시다”라는 것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모든 삶의 방법, 그 분이 하신 모든 일, 그 분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진리이고, 다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에, 그 말씀에 설득되어서 그런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사는 모습을 달리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까지 “썩는 것”을 더 많이 얻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사는 일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러한 삶을 통해 맺혀진 열매를 먹을 때에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썩어질 것을 위해서 일하고, 그렇게 얻어진 것을 먹으면 결국 그것과 함께 썩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냥 살면 그것이 영생을 위하여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썩는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말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고 그 선택의 열매는 모두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선택하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영원하고 참된 만족을 주는, 참으로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기쁨을 주는 그 양식을 위해서 일하며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심이 땅에서도 그렇고 하늘에서도 그렇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살고 떠 그 양식을 먹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분의 생각과 그 분의 마음에 일치하는 것을 찾아내시고, 그것에 따라 사셔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거두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양식으로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풍성함과 견고함을 누리며 사시는 지혜로운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