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1.01. 새벽예배 - 너희도 떠나려느냐(요한복음 44)


요0667to71 - 너희도 떠나려느냐.pdf


20121101D.mp3.zip




본문 : 요한복음 6장 67-71절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진리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엔가는 사람들을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반으로 나눠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말씀이 언젠가는 사람들을 반으로 나누게 될 것을 분명히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나에게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를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 때가서 준비해도 충분히 서야 할 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습관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거스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 신앙을 위해 작은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 지금 그런 연습을 꾸준히 해가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신앙을 위해서 큰 손해를 보거나 목숨을 내놓는 일은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항상 우리의 마지막 모습을 어느 정도는 포함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런 준비 없이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절대로 서면 안되는 쪽에 서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없이 그런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순간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자신만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그들은 아주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생의 진리가,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말씀이 그들을 시험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걸림돌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영생에서 그만큼 스스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모두가 다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 두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무척 아픈 마음으로 그 남아있는 열 두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떠나려느냐?” “너희도 내게서 너희가 원하는 것, 만나와 배부름을 얻을 수 없다고 나를 떠나려느냐?” 그 때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이 고백이 예수님께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정말 추수날의 얼음냉수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렸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사실 완전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그 표현은 완전했지만 의미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대답은 열 두 제자들의 영생을 위한 믿음을 만들어낼 씨앗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의리때문에, 정때문에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더 확고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록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 분의 가르침을 계속 들으면서 적어도 예수님의 가르치심 속에 영생을 위한 말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생을 위한 떡과 물에 대한 말씀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 말씀을 그렇게 알아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말씀이 영생에 대한, 영생을 위한 말씀이며, 그 말씀들이 자신들에게 영생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열 두 제자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 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열 둘로도 충분했습니다. 더 많이 남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열둘로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불완전하다고 하여도 그들은 영생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붙들기 위해서 적어도 하나의 큰 걸림돌을 뛰어 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원래 모든 땅에서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땅에서는 튕겨져 나오고 거부되어서 쓸모 없이 되어버립니다. 열매를 맺는 땅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좋은 땅만이 말씀을 싹틔우고 자라게 하여 열매가 맺혀지게 합니다. 그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거기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가 열려져서 그 모든 손해들을 덮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훌륭하고 희망적인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예수님은 아주 슬픈 이야기를 하나 더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그리고 성경은 이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킴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그 이야기를 하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에 대한 언급은 사후적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유다는 아직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저 제자들 중의 한 명이 마귀라고 하셨지 그가 하게될 행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의 그 말씀은 누구에게든 해당될 수 있는 말씀이었고, 누구나 다 들어야 하는 말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지금 괜챦다고 해서 계속 괜챦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 주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해서 나중에도 예수를 잘 믿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주님을 떠나고 주님을 배신할 가능성은 다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있는 열 두 제자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낙심하기를 잘하고 유혹에는 약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베드로의 대답이 정말 열 두 제자들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 속에는 그 당시에 가룟 유다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아픈 말씀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유다가 그런 생각과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고 또 그 불완전한 믿음을 더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유혹과 악한 마음을 이길 정도로 강하고 확고해 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건데 이 말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의미의 무게가 다 다른 말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이 그저 자기가 이제 그 사실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야 말로 자기 신앙의 전부이고 가장 큰 소망이며 목숨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확신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앞쪽의 믿음에서 뒤쪽의 믿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우리에게 들려준 두 가지 고백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안됩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하신 분, 그러니까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또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믿는 우리의 믿음은 한 자리에 고정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계속 더 온전해져 가야 하며 계속 더 풍성해져 가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사탄의 유혹이 있더라도, 그 확신을 뒤흔들려고 하는 아무리 강한 도전이 있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붙들고 버텨낼만큼 그만큼 강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남아있는 자들을 향해서 “너희도 떠나려느냐”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하신 말씀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믿음의 어떤 수준과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이 두 말씀을 기억하며, 이미 알아들은 영생의 말씀을 사랑하고 더 사랑하려고 힘써야 하며,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더 견고한 확신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셔서 가룟 유다의 길이 아닌 베드로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게 해 주셔서 영원히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