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0321-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17).pdf
본 문 : 창세기 3장 21절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비록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며, 그래서 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징벌을 내리셔야만 할 때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자비와 사랑,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으십니다. 아니, 가장 우선에 은혜를 놓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징계를 생각하느라 하나님이 나를 은혜로 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21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형벌을 선고하신 후에 하신 일 한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렇게 엄청난 벌을 내려놓고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입니다. 어마어마한 벌을 선고해 놓고 그 죄인을 위해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힌다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죠. 제가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 큰 잘못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맞지 않으려고 도망치다가 현관문에서 엄마한테 붙잡혔던 것 같습니다. 현관문에서 붙잡혔으니 현관에 있었던 것으로 두들겨 맞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무로 된 쓰레빠였습니다. 슬리퍼 보다는 쓰레빠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한 두어대 맞은 것 같은데, 여름이어서 얇은 옷을 입고 있었기 그 쓰레빠 자국이 등어리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너무 쓰리고 화끈 거려서 방에 들어와 엎드려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또 혼날까 싶어서 자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엎드려 있던 제 옷을 들추시더니 눈물을 흘리시면서 상처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고 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벌을 내리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죄에 대한 징벌을 내리시기는 하지만, 엄격하고 무자비한 재판관이 아니라 자녀에게 매를 드는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마음은 21절의 그들을 위해서 가죽 옷을 지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가슴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자마자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당장은 괜찮았지만 그것은 오래 갈 수가 없었습니다. 무화과 나무잎은 하루를 넘기지 못합니다. 또 만들어 입은 들 마찬가지입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하는 것들은 모두가 다 임시방편입니다. 또 언제 떨어져 나가고 부숴질 지 모르는 너무나 약한 것들입니다. 게다가 그런 것들로는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징벌을 내리시는 그 순간에도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생각하셨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궁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선고가 끝난 후, 어떤 짐승 하나를 희생하셔서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두 사람에게 입혀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담과 하와는 가려야 할 곳은 충분히 가릴 수 있게 되었고, 적어도 서로를 향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릴 수 있는 방편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옷이라야 우리를 부끄러움에서 제대로 구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원하고 완전한 가죽옷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지어주셨던 가죽 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스스로는 죄 때문에 생겨난 수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의 문제를 영원하고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가죽 옷을 입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우리 죄 값을 치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덧입을 때, 우리의 수치의 문제를 영원하고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벌에 대한 선고를 내리시는 순간에도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마음을 쓰셨던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라는 영원하고 완전한 가죽 옷을 준비해 주셨던 것입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림자구나. 내가 덧입고 있는 그리스도의 의의 그림자구나.’하고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볼 때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던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덧입혀 주신 그 완전한 의를 기억하며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래서 친히 우리의 의가 되어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은혜를 한 순간도 잊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그 깊고 풍성한 은혜, 우리를 깊게 감동시키시는 그 덮어주시고 입혀주시는 은혜를 회복하게 하시고 잊지 않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마음으로 항상 우리를 바라보시고 또 대하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형벌의 선고를 내리시는 순간에도 그들의 수치를 기억하시고 그 수치를 해결해 주시려고 마음 쓰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한 마음으로 저와 여러분을 대하고 계십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 어떤 환경 아래에서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런 순간에도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가 나를 향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입혀주신 그 완전한 가죽옷으로 우리의 더러움과 수치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이렇게 새벽마다 기도하면서도 평안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덧입혀 주신 가죽 옷을 통해 그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