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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5.09.04. 금요기도회 -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사도행전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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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9장 10-20절




바울의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2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고린도에서 1년 반동안 있었던 것도 이례적으로 긴 기간이었는데, 여기서는 2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에베소라는 도시가 상당히 크고 중심이 되는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2년 동안을 그 자리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가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였기 때문에 그 2년 동안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대인, 헬라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번씩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그러니까 복음이 아시아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놀라운 일들과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선 11절은 바울이 행한 이적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우리는 이 구절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이적을 일으킨 것은 바울입니다. 바울이 그의 손으로 그 일들을 했습니다. 직접 혹은 간접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저 하나님께 손을 빌려드린 일 밖에 한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본문말씀을 살필 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놀라운 일을 행할 때, 그것을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정말 놀라운 일을 행했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병자들을 고쳤겠지요. 그런데, 그런 치유의 역사가 어느 정도까지 일어났느냐 하면 사람들이 바울이 사용했던 수건이나 혹은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덮으면 그가 어떤 질병에 걸렸든지 치료되었고, 심지어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까지도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했으니까 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고, 또 남자였지만 가죽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앞치마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래 혹은 빼앗다 시피 그렇게 땀을 딱은 수건이나 일할 때 사용하다가 벗어놓은 앞치마를 가져다가 환자들이나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덮어주었는데, 그 수건과 앞치마까지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도대체 바울에게 얼마나 큰 능력이 있길래 그가 땀을 닦은 수건이나 입었던 앞치마까지 그런 능력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그 일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놀라운 일을 행한 것이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바울을 통해 나타난 능력은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기적이 벌어지면 그 일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이기 때문에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행하시는 이유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그 이적으로 우리들을 회복시키시 위해서 입니다. 특히 병이 치료되는 것이나 악한 영을 쫓아내는 것은 더욱 더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곤경에서 구원하시고 또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싶으신데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이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적이라는 것이 그저 우리의 눈에 보기에 만그런 것이지만 말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적은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믿을만한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더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그 이적의 통로가 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고 또 그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이적이 전혀 반대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병을 고쳐주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저 고마워하면 됩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구요. 마치 그 일을 그 사람이 한 일인 양, 그리고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인 양 생각하고 그 사람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당연한 것 같고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우리 눈앞에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그런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바르지 못한 반응을 보이기가 참 쉽습니다. 


눈 앞에서 이적이 벌어질 때, 생겨날 수 있는 첫번째 부작용이 이적을 행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면 두번째 부작용은 그 일 자체와 그 일이 일어나게 한 능력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고 악한 영들을 몰아내자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유대인 마술사들이 시험 삼아서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다가 저는 “응?”했습니다. ‘유대인 마술사’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참 유대인들은 다양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두 눈에 불을 켜고 바울을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같은 유대인인데 사악한 마술사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상태가 될 수 있을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성도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겉으로는 똑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데, 그 믿음 안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잊게 되면 누구든지 이런 상태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사람들 중에 대표주자가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마술사 일은 그야 말로 페밀리 비즈니스, 가족사업이었습니다. 성도는 직업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좋은 직업을 선택하도록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저 세속적으로 돈 많이 벌고 인정받는 직업이라고 그것이 성도인 우리들에게도 좋은 직업은 아니니까요. 제사장의 아들들이 그것도 일곱 명 모두가 이 ‘사업’에 뛰어들어 먹고 살고 있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도 ‘시험 삼아’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서 악귀를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이 때 정말 코메디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거들먹 거리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의 이름을 들은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을 노려보면서 말합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든? 그 사람들은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건든? 근데 니들은 누구냐?” 그리고는 그 악귀에 들린 한 사람이 그 일곱 명을 제압했습니다. 결국 이 일은 오히려 그 지역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일이 되었지만 이 일은 오늘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미신을 믿는 일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미신에는 인격적인 관계와 헌신이 전혀 필요가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그 믿음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을 향한 인격적인 헌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장독대에서 정한수 떠놓고 드리는 치성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치성은 인격적인 관계가 전혀 필요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소원이 있고, 그 소원에 대한 간절함만 있으면 됩니다. 그 소원을 이루려는 정성이 그가 섬기는 잡신을 감동시키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우선입니다. 기도는 이 관계 안에서만 드려질 수 있고 또 응답될 수 있습니다. 또 기도는 본질적으로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을 구하는 것이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헌신이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 이것을 잘 모르고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는 무관심하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치성을 드리듯이 그저 정성과 간절함으로 하나님과 승부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려는 헌신은 생각하지 않구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그저 소원성취의 도구로 생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건 마치 시험삼아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내쫓으려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성도에게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요 중보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도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유대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을 그들이 이익의 도구로 삼고 있는 잡신들처럼 대했다가 악한 귀신에게 호되게 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이 만들어 냈던 놀라운 이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이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제일 강조해서 들려주는 진리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모든 일들이 그저 갑자기 아무런 맥락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그것과 더불어 일어난 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그리고 20절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두 말씀의 요점이 무엇이지요. 이적은 놀라운 능력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복음이 전해지고 그 복음이 믿어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놀랍게 보여졌고, 악한 귀신들이 떠나가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참으로 믿어지는 곳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소식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왕되어 살고, 세상을 왕 삼아 살고, 또 다른 신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던 삶을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는 소식이 복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그래서 결국 왕을 바꾸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다스림에 순종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을 믿는 것이고, 이것을 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그제서야 복음을 믿는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복음이 선포되고 거기 그 복음을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런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는 왕이신 예수님의 능력있는 통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스리심 덕분에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쫓겨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곳에는 죽음과 사탄이 발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런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분께 순종하는 삶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 하나님의 능력있는 통치가 강하게 이루어 집니다. 우리 삶 속에서 죽음의 역사가, 사탄의 영향력이 그만큼 약해지고 그래서 우리 삶의 구석 구석이 회복되고 바로 세워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곳에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했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 없이 혼자서 흥왕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바울이 두 해 동안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 그 때 말씀이 흥왕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병든 자들이 고침받고 악한 귀신이 쫓겨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하나님의 능력은 그저 그것을 원하고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하고 그 유익을 얻기 바라는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하게 여겨지고 순전하게 믿어지는 그 곳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듣고 믿고 순종하여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있는 다스리심이 드러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 유익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아름다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