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에베소서 3장 14-21절
20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으로 기억되는데요. 그 때 저는 저의 삶의 이 곳 저 곳이 동시에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붙들려고 했던 것들,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정말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이상하게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삐걱거리며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디서 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제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성경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 읽게 된 잠언의 한 구절 덕분에 저는 그 흔들림을 모두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잠언 4장 23절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읽는 순간 이게 답이구나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너를 흔들고 있는 것은 네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고 그래서 붙들려고 했던 것들이 아니다. 지금 너를 흔들어 놓는 것은 네 마음이다. 네 마음을 놓치면 다 놓치는 거다. 마음을 놓치면 생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마음만 붙들 수 있으면 다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저는 다른 것 다 미뤄놓고 마음을 지키려고 마음의 흔들림 자체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을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어려운 위기를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부터 삶을 흔드는 문제들을 만나면 오히려 마음에 집중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마음이라고 하면 자꾸 감정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실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격과 생각, 그리고 감정과 의지가 거하는 곳입니다. 그런 것들 자체이기도 하구요. 잠언 말씀을 보면 그래서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이니까요. 물론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아마 한 순간이라도 마음을 완전히 놓쳐버린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럴 때는 정말 살아있어도 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이 바로 그것 때문에 스스로 아까운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삶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무너져 버렸고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마음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결정적이고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는 마음이 전부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성도들 중에는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마음에 은혜가 담기지 않을 때, 자꾸 어떤 특별한 행위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조건들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필요하고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과 연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잠시 잠깐의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해결책은 될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선한 목자 교회를 섬기시는 유기성 목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에 대한 글이었는데요. 거기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가려 먹는 데는 굉장히 신경을 쓰고 애를 쓰면서도, 이상하게도 자기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에 아무 것이나 다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그래서 그 마음을 더럽히고 망쳐놓게 놓아둔다.’고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우리 신앙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우리 마음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마음이 흔들리면 우리 신앙도 함께 흔들리게 되고, 그러면 신앙을 통해 은혜와 복을 누리는 일도 큰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든 지켜 내고 또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삶을 지키고 또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하시면서 항상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고 그 마음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잘 지켜진 마음에 담아 주시는 은혜를 꼭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들을 위해서 드린 또 한 번의 기도인데요. 잠시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첫째,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실 것. 둘째,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게 해 주실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오늘은 이 기도들 중에서 첫번째 기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16절을 찾으시고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여기서 ‘속 사람’이라는 말은 흔히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성경에서는 그냥 마음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새로 지어주신 성도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거듭난 마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을 우선적으로 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큰 고통을 수없이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기록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의 목록을 보면 정말 한 사람이 저 많은 어려움을 다 견디어 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모든 일들을 견디어 내고 믿음과 은혜를 지켜내려면 무엇보다도 속 사람이 강건해야 하는데, 이 속 사람은 구원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강건해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마음처럼 온전히 자기에게만 속한 것도 없지만, 동시에 자기 마음만큼 자기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마음만 고쳐 먹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드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게 쉽게 되면 왜 그렇게 살겠습니까? 그게 안되서 그러고 있는 것이지요.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밉습니다. 정죄하고 싶지 않은데 정죄가 앞서지요. 화를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습니다. 주눅 들기 싫은데 자꾸 주눅이 듭니다. 기뻐하고 싶은데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에이. 아냐! 아냐!’ 하고 고개를 흔들면 잠시 잠깐은 되는 것 같아도 돌아서면 또 제자리입니다. 하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꾸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면, 하물며 그 마음 전체를 강하게 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마음’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내적인 존재는 새롭게 지음 받습니다. 그 본질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속사람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나는 분명히 예수를 믿는데 왜 이런가, 왜 이런 면에서는 이렇게 부족하고, 이렇게 나약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 한 번 제대로 믿어 보려고 애를 써 본 사람들에게는 이런 좌절감과 싸우는 일이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성도들 중에는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다가 결국 낙심해서 그냥 저냥 포기하고 사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속사람은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어느날 갑자기 저절로 강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게 찾아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은 무엇이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한다고 말합니까? 우리의 결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도 아니지요.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만이 그 분의 능력으로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모르고 내가 예수 믿었으니까 이제 다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든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또 자기 힘으로 속사람을 강하게 하려고 하니까 계속 실패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래부터 내면이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 속사람이 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계속해서 성령님의 능력 안에 거할 때, 계속 그 능력에 의지해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 속 사람은 강건해 지고 또 강건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속 사람의 강건함을 원하신다면 항상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이 원리를 꼭 기억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일단 우리 속사람이 강건해 지면 우리는 실제로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실패하던 일에 성공하게 되고, 쉽게 포기하던 일을 끝까지 할 수 있게 되고, 실제로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 받는 일도 훨씬 더 줄어듭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영적인 침체의 문제, 오늘은 천국에 있지만 내일은 지옥에 있는 듯한, 영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반복하는 문제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우리 속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에,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속 사람이 강건해야만 그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계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마음에 그리스도께 계신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만 보면 구원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실 바울의 이 기도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은 이미 우리들처럼 예수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께서 계실까요, 계시지 않을까요? 분명히 계십니다. 계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지금 에베소의 성도들이 예수를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말은 같지만 다른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숨겨진 뜻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는 것답게 그리고 변함 없이 머물러 계시게 하옵시고…” 성도들 속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렇지만 계신다고 다 똑같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는 것에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머물러 계심이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미약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삶을 달라지게 할 정도의 일이 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 또한 에베소의 성도들이나 우리들처럼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제가 읽어드리는 구절의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 속에는 자신은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너무나도 다른 두 가지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계속해서 문 밖에만 세워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안 믿는 게 아닙니다. 믿기는 믿는데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문 밖에 계시기는 하지만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릅니다. 예수님을 안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합니다.
반면에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예수님을 모셔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똑같이 예수님을 믿지만 이 사람들은 앞에 나온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양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저는 이 말씀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 안에 거하시면서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사람의 인생이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살면서 벌이는 잔치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과 그 풍성함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사람들에게는 사는 것 자체가 천국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진짜로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여기 이 속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것처럼 기쁨이 넘치고 풍성한 삶이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깊이, 그리고 확실히 거하시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적당한 거리에 모셔 놓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 확실하게 들어오시게 하시고 지속적으로 계시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일이 우리의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은 그 일의 통로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렇게 하기에 충분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그저 혼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새롭게 된 우리의 마음, 그러니까 속 사람이라는 땅에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하면 강건할 수록 우리의 믿음은 그만큼 더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또 더 온전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사람은 강건해야 하고 또 강건해져 가야만 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하면 믿음이 강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강건하지 못하면 그 마음에 예수님께서 확실하고 충분하게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사람의 삶과 신앙에 구체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을 확신과 기쁨이 넘치는 그런 것으로 만드실 수가 없으십니다.
노령의 목회자가 차갑고 축축한 감옥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희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희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은 성도의 모든 것은 속 사람의 강건함에 달려 있고, 성도의 속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은혜는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없으니까요.
바울은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울의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보게 되는 것은 사실 바울 자신의 간절함이 아닙니다. 그의 모습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그 안에 계신 성령님의 기도, 성령님께서 하도록 만드신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은혜를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그 분의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하게 해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연약하기만한 속사람을 가지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면서 불안하게, 그리고 기쁨도 충만함도 없이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시고, 예수님이 계신 흔적만 지니고 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저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속시끄러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내면적인 어려움들도 있구요.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도 우리는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고 힘들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의 복된 삶과 참된 믿음을 방해하는 주범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 속사람에 믿음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머물러 계시지 못합니다.
성령님께서 정말로 해결해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우리 속사람의 연약함의 문제 말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겉모습보다는 우리 속 사람을 다루고 싶어 하십니다. 근본적으로 속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시다. 아닌 척하지 말고, 강한 척하지말고, 숨겨 놓지 말고 내 앞에 다 내 놓고 간절하게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능력으로 너의 속사람의 연약함을 다루어 내고 강하게 만들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바울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여러분을 위해서 이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계속 붙들고 놓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속 사람의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해 주시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 은혜가 잘 담겨지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담겨도 금방 쏟아져 버리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주님이 거기 계시면서 주시는 기쁨과 생생한 확신이 없지는 않으십니까? 만약 그러시다면 여러분은 꼭 자신을 속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누리는 모든 은혜와 능력은 속사람의 강건함에 달려 있습니다. 꼭 기도하시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하는 자에게 더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우리 아버지이시니까 분명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거듭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그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고,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꼭 해결받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바울을 따라 기도하셔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속 사람이 강건해 지는 복을 누리시고,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확실하게 모시고 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령님의 능력으로 내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더 이상 쉽게 깨지고 쉽게 흔들리는 불안한 속 사람을 가지고 살지 않게 하소서. 특히, 잘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연약함이 있다면 그것 한 가지를 내놓고 기도합니다.
-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충만하게 거하셔서 내 삶이 잔치처럼 되어지게 하소서. 기쁨과 풍성함이 넘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