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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7.2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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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7월 21일 목요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말씀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잉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왕의 길을 준비하는 전령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닦여진 길을 걸어 당신의 백성들에게로 돌아오신 왕이셨으니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늘 본문말씀은 그야 말로 복음의 전주이자 영광스러운 시작이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누가는 자신이 왜 지금 우리가 누가복음이라고 부르는 이 내용들을 기록해야만 했는지 그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사실 전편과 후편, 1권과 2권 같은 관계에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누가에 따르면 이 놀라운 두 권의 책은 순전히 개인이 개인을 위해서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꽤나 명망 높고 지체높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데오빌로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두 책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이 한 권은 복음서로 또 한 권은 유일하게 기독교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는 일의 가치를 그다지 크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봉사한 일로 자기가 원하는 어떤 이익을 얻으려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좀처럼 한 사람을 위해서 힘든 일을 하고 까다로운 헌신을 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한 사람을 위한 헌신, 어찌 보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한 사람을 위한 헌신도 하나님의 값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아마도 자신의 이익이나 입장을 따지지 않는 그 사람의 헌신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작은 일이라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신앙적으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사고방식입니다. 물론 우리는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중에서 취사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삶에 주어지는 작은 일들이나 만나게 되는 작은 사람들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고 사소한 것들도 돌보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요. 


누가복음은 그렇게 성경 자체로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한 사람을 위한 헌신을 통해 태어난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데오빌로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자기 처럼 예수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서 펜을 든 사람이 이미 많지만 자신도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한 이유는 데오빌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데오빌로가 더욱 더 확실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미 아는 것은 진부한 것으로 여기고,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또 저 이야기한다고 시큰둥해 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자꾸 색다른 것을 찾습니다. 다른 가르침을 찾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좋은 신앙을 추구하는 성도의 바른 모습일까요? 


사실 우리가 더 좋은 신앙, 더 확실하고 견고한 신앙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몰라서 못 믿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신앙에 대한 지적인 관심이 있는 분들, 그래도 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알기는 알아도 확실하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그렇게 알고는 있다고 해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새로운 진리 말씀위에 세워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옛 터 위에 다시 세워지고 더 단단하게 새롭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희미하게 알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가고, 이미 확실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정말로 믿고 또 더 단단하게 믿을 때, 비로소 신앙은 좋은 신앙이 되고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성경! 우리가 마음 먹고 읽으면 6개월이면 한 차례 읽습니다. 천천히 읽어도 1, 2년이면 한 번 읽게되지요. 설교를 들어도 한 10년이면 다 듣습니다. 50년 예수를 믿는다면 같은 본문으로 5번 정도 설교를 듣는 셈이고, 성실하게 읽으면 굉장히 여러차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은 그 자리이고, 삶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익히고 또 익혀서 참된 말씀의 사람, 알고 있는 말씀 위에 자기 믿음을 세우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누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그것도 이미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게하고 믿게 해 주기 위해 노력했을 때 그 열매로 태어난 책입니다. 그 책이 바로 우리 손에 성경으로 들려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을 읽기 시작하면서 과연 우리가 놓치고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은 것,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옛 것과 이미 알고 있는 것. 우리가 이런 것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할 때, 우리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초가 든든한 신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언제나 작은 것과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중요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우리가 되어서 그런 것들 위에 삶을 가치있게 세우고 믿음을 든든하게 세우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