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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3.08.25. 전교인 기도회 -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2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2.pdf


20130825SE (#01).mp3.zip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8-11절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무척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느라고 직접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까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고, 그래서 주님의 커다란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이런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고 사신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서마나 교회의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들은 처음이고 또 마지막이신 예수님의 손 안에 있는 일이며, 이 땅에서의 힘든 일들은 결국 죽음과 함께 끝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가장 큰 위로와 능력이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서마나 교회를 향해서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몰라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알면서도 그것을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들에게도 가장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려움에 함몰 되어서 고통만 당하지 말고,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주시는 은혜를 챙겨야 합니다. 고통보다 더 크고 아픔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야 합니다. 다 아시는 하나님은 언젠가는 그 고통과 어려움을 끝나게 해 주실 것이고, 선한 것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든지 이것을 잊지 마시고 여기에 여러분의 믿음을 묶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어려움을 아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궁핍하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서머나 교회와 그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무척 어려운 환경에 있었습니다. 믿는 것 때문에 핍박과 경제적으로 구체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들이 믿음 때문에 굉장히 가난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부요한 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초라해 보이는 서머나 교회, 그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던 서머나 교회, 가난하기만  그들을 향한 주님의 평가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 그리고 믿음으로는 그 어떤 교회보다도 부요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가지는 약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서머나 교회와 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빈곤하고 믿음은 궁핍합니다. 영적으로 너무 굶어서 영적으로 빈사상태에 있지만 그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의 문화는 있고, 기독교적인 행태는 있지만 영성은 없습니다. 성도 개인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다닙니다. 예배는 드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거의 굶어죽어 가고 있고, 심지어는 그 사실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형식을 지키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식을 채울만한 꽉 채워진 영성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운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가까이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주님과 가까이 붙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비록 핍박은 받고 있었고, 생활에 곤란을 겪을 만큼 궁핍한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였지만, 그들은 항상 주님가까이서 주님과 붙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가장 부요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습니다. 부자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일까요? 그것이 진짜 문제일까요? 우리가 이것 때문에 항상 속이 상해야 하고 끙끙거려야 할까요? 커다란 교회 앞에서 부끄러워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시각이고 믿음이 없는 반응입니다. 작은 것, 부유하지 않은 것. 이것은 주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교회가 작은 데다가 은혜까지 풍성하지 못한 교회, 믿음마저 부족한 교회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런 교회의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에 풍성하고 믿음에 부요한 사람들의 교회가 된다면 사이즈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사이즈와 물질적인 부요함과 상관없이 은혜 받는 일에 열심을 내고, 더 크고 부요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애쓰는 성도들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우리의 소명이요 목표로 삼고서 열심히 주님을 찾는다면 주님은 우리 교회를 분명히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이고, 우리를 향하여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는 평가를 내려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작은 것, 부족한 것에 신경쓰지 마시고 은혜를 더 많이 받고 믿음을 더 크게 만드는 일에 욕심을 내고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부요한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나를 가장 부요한 교회의 성도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핍박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핍박은 당시에도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그런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말라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란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도 어렵지만 앞으로는 더 어려워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직한 복음은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사형통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입니다. 주님도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주님을 따라서 살려고 하면 반드시 환란과 어려움이 따르게 되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지금도 충분히 어렵지만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들이 처해있는 영적인 현실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환란을 주는 주체가 사탄이며 그 기간은 십 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시험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만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험에 이기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만 그 시험에 지면 사탄에게 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탄의 주는 환란이 10일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기간이 글자 그대로 10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후에 서머나 교회는 무척 오랜 기간동안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10은 성경에서 꽉 찬 숫자이기 때문에 그 환란이라는 것은 당할 만큼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견디려 한다면 견디지 못할만큼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번째는 그 환란은 분명히 끝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당할만한 시험 밖에는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그 시험이 주님 보시기에 너무 과하다고 생각되시면 피할 수 있는 길을 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인한 환란과 어려움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인 한 사탄은 우리가 손쉽게 예수믿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견디려고 마음만 다져 먹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과 믿음을 힘들게 하고 있다면, 꼭 그것을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결국은 끝나게 될 것이고, 내가 견디지 못할만큼 힘든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주님은 그 믿음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죽도록 충성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대학시절에 영화를 한 편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습니다. 제목이 유치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는데, 무척 재미도 있고 느끼게 하는 바도 컸습니다.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은퇴할 때가 다 된 말단 형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은퇴할 때가 다 되었는데도 버젓히 이루어 놓은 일도 없고,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형사는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병원에 마약을 하는 버스 운전사 한 명이 같이 검진을 받습니다. 두 사람은 동일하게 혈액검사를 위해서 피를 뽑아놓았는데, 운전사가 자신의 마약 투여가 탄로날까봐 그 형사의 혈액과 바꿔치기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운전사는 자기도 모르게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말기환자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병은 그 형사에게로 갔습니다. 형사는 졸지에 시한부 인생이 되었습니다. 살 날은 얼마남지 않았고, 아들은 공부를 시켜야 하겠고…… 고민하던 형사는 순직을 하면 그 보상금으로 아들 공부를 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어차피 죽을 인생, 아들을 위해서 희생하자고 마음 먹고 위험한 일들만 도맡아 합니다. 건물 위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리는 일, 비무장으로 무장강도를 설득하러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는 일 등등…… 죽을 일은 도맡아 하지만, 이상하게 그 일들이 해결될 뿐 이 형사는 죽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영화의 끝에는 그 운전사가 버스를 운전하다가 갑자가 병이 악화되어 죽게 되어 그 일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 형사는 수많은 공을 세우고 명예롭게 상을 받고 은퇴하게 됩니다. 코메디 영화지만 저는 그 영화를 통해서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를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적당히 하려고 하면 예수믿는 것처럼 곤욕스러운 일이 없지만, 오히려 목숨걸고 믿으면 그 끝은 영광스러울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끝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과거형이 아닙니다. 미래형도 아닙니다. 항상 현재형입니다. 신앙에는 항상 ‘지금’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 앞으로 불려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마지막 처럼 생각하면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시되 항상 현재에 최선을 다하시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현재에 충성을 다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죽도록 충성하였고, 끝까지 견디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를 낸 교회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잘 아는 폴리갑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86년동안 나를 배반한 적이 없으신데, 내가 어찌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한 사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지금도 있습니다. 서머나는 지금의 터키의 이즈미르입니다. 이 도시는 회교권 내에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이 지역주민의 3분의 일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회교권 내에서는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들은 죽도록 충성하였고, 끝까지 견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곳에는 교회도 있고,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지금 없습니다. 흔적조차 없습니다. 왜 입니까?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신 주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작지만 큰 교회, 부족하지만 부요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들의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사람들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하고 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