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9.03. 새벽예배 - 애굽 온 땅에 흑암이 있게 하라(출애굽기 38)

장유진 2014. 9. 18. 19:07


20140903D (#1).mp3.zip


출1021to29 - 애굽 온 땅에 흑암이 있게 하라(출38).pdf





본   문 : 출애굽기 10장 21-29절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는 것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물, 공기, 흙 등등... 특히 내가 태어나면서 부터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부터 내 주변에 있었던 것들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것일수록 그것이 없어지면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 집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수록 우리의 생명과 삶에 필수적인 것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 유지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이미 무의식 중에 누리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그것이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없으면 곧바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지구 이 곳 저 곳에서는 양식이 없어서 하루에서 수 천명씩 목숨을 잃고 있고, 깨끗한 물을 구할 수가 없어 오염된 물을 마셨다가 기생충이나 전염병에 걸려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무제한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 그리고 공짜로 쓰고 있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다 그렇게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생명에 필수적인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은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단 한 가지 만큼은 적어도 생명하고는 지장 없는 정도로는 누구나 차별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입니다. 빛은 우선 우리가 무엇을 보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본다고 할 때,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그것 자체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저를 보고 계시는데요. 여러분은 사실 저를 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는 빛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없다면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어떤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빛은 사실 보게 해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에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빛은 무엇보다도 열기를 전해 줍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빛 중에서 반딧불이가 내는 빛을 제외하면 열이 없는 빛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빛에게 열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셨기 때문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막지역에서는 햇빛 속에 있으면 탈듯이 더워도 그늘로 들어서면 시원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밤 중에는 영하로까지 기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빛이 없으면 우리가 어떤 것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열기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아홉 번째 재앙은 바로 암흑이었습니다. 원래 암흑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없어지면 저절로 세상을 덮는 것이 바로 암흑입니다. 아홉 번째 재앙이 애굽에 임할 때는 이전의 재앙과는 달리 전혀 예고가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늘을 향해서 손을 들어 애굽 전역에 흑암이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나 애굽의 입장에서 보면 아홉 번째 재앙은 전혀 예상할 수 없이 당한 재앙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덟 번째 재앙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께 얼마나 악하고 불쾌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대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참고 더 오래 기다리십니다. 그렇지만 그 참으심과 기다리심은 무한정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도를 넘어가면 곧바로 그 동안 미뤄 놓았던 것을 실행에 옮기십니다. 좋은 일을 위한 요구이든 아니면 악한 일로 인한 징벌이든 그렇게 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시점을 어떻게 정하시는 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만 믿고서 너무 그 분을 오래 참게 하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 넘어야 할 선을 넘으면 그 때는 정말 우리 선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성도는 눈치가 빨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전에 먼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영적인 감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꾸 불안한데도 계속해서 그 길로 가는 것은 결코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흑은 3일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동안 애굽인들이 머무는 지역에는 정말 미세한 빛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무는 고센지역에는 예전처럼 아침이면 밝은 태양이 나왔다가 저녁이면 노을이 붉게 물드는 일이 다른 날처럼 똑같이 반복되었습니다.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지역을 구분했던 다른 재앙들도 그랬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마치 물과 기름이 갈리듯이 빛과 어둠이 갈려야 합니다. 그리고 빛이 비치는 쪽에서도 어둠이 있는 쪽을 볼 수 없어야 하지만 어두운 쪽에 있을 때에는 빛이 있는 쪽이 전혀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빛이 머금고 있는 열기조차 느끼지 못해야 합니다. 이것은 빛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특징대로 하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적어도 어두운 쪽에 있을 때는 밝은 쪽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피조물 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아홉번째 재앙은 단순히 이상한 자연현상을 통한 징벌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에 빛이 전혀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완전히 떠나셨다는 뜻이고 그래서 그게 생명이든 진리든 양심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당연히 주셔야 할 일반적인 은혜들도 거두어 들이겠다는 하나님 편의 의사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장자를 죽이는 것이었던 것은 하나님이 완전히 버리실 때, 그 곳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완전히 버리시면 거기는 더 이상 생명이 없습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빛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 그 곳에는 밝음도 있고 따뜻함도 있으며 생명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거기에는 밝음도 없고 따뜻함도 없으며 생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느끼고 또 그렇게 넉두리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세상에 밝음과 따뜻함이 있는 것은 아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완전히 버리시고 완전히 떠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삶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떠나지 않게할까? 아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더 함께 계시고 싶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성도 개인의 삶이든 교회이든 간에 그 곳을 더욱 더 밝고 따뜻하고 풍성한 자리로 만들 수 있는 하나 밖에 없는 방법이니까요.


항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주시는 밝고 따뜻한 빛으로 자신의 삶과 교회, 그리고 내가 사는 삶의 자리를 가득 차게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