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1.14. 새벽예배 -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출애굽기 78)

장유진 2014. 11. 18. 13:33





본   문 : 출애굽기 21장 28-36절




어제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과 관련된 율법을 살펴 보았는데요. 오늘은 어떤 사람의 짐승이나 혹은 부주의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나 상해를 입혔을 경우, 그 일을 바로 잡기 위해서 주신 율법을 살펴 보겠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손해나 상해에 관한 율법들은 그러한 피해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보다 손해를 입힌 사람의 책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늘 살펴볼 말씀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책임을 지닌 존재로 보고 계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책임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이 행한 일이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있고, 또 그렇게 책임을 피해 가는 것을 지혜로운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이 있는 존재로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어기는 것이니까요. 


오늘 본문에 처음 나오는 것은 소가 사람을 들이받아서 죽이거나 상처를 입힌 경우에 대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소가 우발적으로 한 번 그렇게 한 경우와 주인의 부주의 때문에 그런 일이 반복된 경우를 따로 놓고 보고 계십니다. 먼저 소가 사람을 받아서 죽게 만든 경우에, 그것이 그 소가 사람을 들이받은 첫번째 경우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소는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소 주인은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경우 그 일은 그 주인과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소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소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으니 소도 그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명에는 생명으로’라는 원리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또 후에도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도살한 소의 고기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허용한다면 사람의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게 되기가 쉽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소가 사람을 받아서 그 사람이 죽었는데, 이번이 그 소가 사람을 다치게 한 첫번째 경우가 아니라면 그 때는 소 뿐만 아니라 그 소의 주인도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소의 주인이 이전에도 그런 일로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부주의했고 그래서 그 결과 사람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 비록 그 주인이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경우와 똑같은 경우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주의는 그다지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부주의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위험한 일의 이유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나 상처를 입혔다면 그러한 부주의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다거나 몰랐다는 말로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소유물에 대해서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게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경우에는 ‘생명에는 생명으로’라는 법이 적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동생인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었을 때, 가인은 자신이 아벨을 죽였으면서도 “내가 동생이나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인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도 그렇지만 소극적으로도 그렇게 해야 하는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주고 지켜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이 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책임감이 느슨해 지면서 부터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고 또 항상 안전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모두가 다 가인처럼 생각하는 세상이 온다면 그런 세상은 그야 말로 끔찍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부주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었을 때는 그 사람의 생명으로 죽은 사람의 생명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그 소의 주인을 예외 없이 죽이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소의 주인이 자신의 부주의로 잃게 만든 그 생명에 대한 속전을 지불하려고 하면 명령된 대로 속전을 지불하게 하고 목숨은 살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석금을 지불하고 석방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충분한 책임을 가지게 하시면서도 한 마리의 짐승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는 비극이 일어나는 일을 막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 나머지 조항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다쳤을 경우에는 금전으로 공정하게 배상해야 합니다. 또 죽은 사람이 종인 경우에도 금전으로 배상하면 됩니다. 단, 종이 죽은 경우에는 소도 함께 죽여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종이란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는 소유물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런 종 때문에 자유인이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경우, 그 액수만 조금 적을 뿐 자유인이 소 때문에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와 결국에는 그 처리 방법이 같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조항들 또한 또 다른 생명이 희생되는 것은 막으면서도 동시에 해를 입힌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소정의 책임을 지게 하는 조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구덩이를 팠다가 메꾸지 않아서 거기 다른 사람이 가축이 빠지게 되면 보상해야 한다는 율법과 또 소가 소를 받아서 죽게 만든 경우에는 죽은 소를 반으로 나눠 가지고 살아있는 소는 팔아서 그 값을 반씩 나눠 가지라는 율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그 피해가 사람이 아닌 가축들에게 미쳤을 때, 적용해야 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나온 율법에서 그 대상만 바뀐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이 율법은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 주어야 할 의무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산까지도 아끼고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이런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막상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은 그 사실을 잃어버리고 이기적으로 움직이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다른 범죄와 상처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율법들을 주신 이유는 그게 그 사람의 생명이든 혹은 소유이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보호하고 또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아무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닮아가면 안됩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이 세상에 인간을 내시면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셨던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상처를 입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재산과 안전을 귀중하게 여기며 할 수 있으면 그것까지 최선을 다해서 챙겨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더 풍성하고 평안한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도 그 열매를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다하며 살려고 애쓰는 우리에게 이런 복과 보람을 알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