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민수기 10-11장)

장유진 2015. 3. 4. 06:56


20150304D.mp3.zip





설교일 : 2015년 3월 4일 수요일




오늘 본문은 어제 읽었던 9장 뒷부분과 연장선상에 있는 본문입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성막 위로 떠오른 구름을 따라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군대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9장 22절과 23절을 보면 정말 인상적인데요. 거기는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행했는지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한 일은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때는 구름이 성막 위에 일년 씩이나 머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일년씩 살아가기도 했구요. 


하나님의 군대가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훈련을 시키기에 가장 적당한 곳인 광야에서 그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물론 그렇게 행진시키지 않으시고 머물러 계신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여행하고 또 그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기 위한 가장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가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동안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광야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척박한 환경과 언제든지 공격해 올 수 있는 이방민족들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이런 환경에서 때로는 며칠, 때로는 몇 달, 때로는 일년씩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멈춰 서 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광야에 머물러 있게 하시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훈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인생이나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생이나 한 교회의 역사나 ‘광야의 시기’라고 불릴만한 시기들이 있습니다. 참 어렵죠. 답답하고 불안하고 또 절망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그럴 때 우리는 이리 저리 흔들리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 우리를 집중적으로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믿고, 또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와 명령에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럴 때 순종할 수 있다면 평상시에는 더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을테니까요. 


10장은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광야를 행진해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10장에서 중요한 것은 나팔소리와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의 나팔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항상 나팔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셨고 그 나팔소리를 정확하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팔소리를 듣고 움직일 때는 항상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주신 질서와 차례에 따라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공동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바르게 분별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교회는 나팔소리의 공동체입니다. 나팔소리는 항상 분명하게 들려져야 하며, 성도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온전히 분별하여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에도 최선을 다해서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나에게 들려진 나팔소리와 다른 사람에게 들려진 나팔소리가 다르다고 느껴질 때, 그것이 명백히 진리와 어긋나고 교회의 교회됨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교회 안에 정해주신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서로 어긋나 무질서해지고 혼란스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악한 말로 모독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 우리도 이런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런 죄를 지었는가를 살피고 우리 신앙생활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11장 4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나님께 범죄한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들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하랴?” 여기 보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자꾸 끼어드는 불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반항심이 있지 않은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속마음을 살피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태도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불순종은 이번에는 이스라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작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나온 이런 저런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람들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탐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갑니다. 그들 중에는 나보다 믿음이 바르고 견고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보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있고, 또 아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뒤쪽에 속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많이 부족한 사람들, 그리고 아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따라서 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차이는 있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거의 항상 탐욕입니다. 그들은 탐욕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또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태도를 정합니다. 그렇다면 탐욕이 무엇입니까? 탐욕은 필요 이상의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100이 필요한데, 200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그래서 탐욕은 항상 만족을 모릅니다. 정말 부족하고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고 더 필요하지도 않은데, 계속해서 배고파 하고 목 말라 하는 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그래서 탐욕은 항상 불평과 불만을 동반할 수 밖에 없고, 우리들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불만과 불평이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부당한 태도입니다. 그 불평과 불만은 필요이상의 것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매일 매일 주셨습니다. 물론 그걸 매일 먹자니 조금 질릴 수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만나가 그렇게 질릴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그것만 먹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쉽게 질릴만한 음식을 주셨을리가 없으니까요. 또한 그것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라면 그 만나 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들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매일 매일 먹기에 충분하게 공급되는 만나는 그 어떤 이유로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족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맛도 영양도 말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게 부족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왜 그렇죠? 바로 같이 어울려 살았던 사람들이 탐욕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탐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말과 믿음이 없거나 우리보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인생의 정답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탐욕이 자리잡게 되고 우리의 기준도 탐욕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은근한 불평과 불만으로 채워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최고로 점잖게 말씀드려서 말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야 하고 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유혹, 탐욕의 유혹을 받고 있지 않은지도 잘 살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서 그 말씀이 주는 능력과 인도하심이 주는 든든함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