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2. 주일오전예배 -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여호수아 7)
성경본문 : 여호수아 5장 13-15절
이미 작고하셨지만 예전에 안이숙 사모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작고하시기 전에 한 번은 제가 다니던 교회에 오셔서 집회를 하셨는데, 그 때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눈에 안 보이는 것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데 익숙해 져 있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말씀은 저에게는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도, 천국도,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도 보지 못하면서 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과학의 시대입니다. 이 말은 이 시대는 과학이 가장 힘이 센 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적이냐 아니냐’라는 말은 ‘진리냐 아니냐’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과학이란 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입니다. 원칙적으로 그 나머지 부분은 다루지 못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덕분에 우리가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을 경험하고 또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학덕분에 인간은 커다란 힘과 풍요함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이렇게 세상이 과학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의 반쪽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과학이 지배하기 전의 세상을 살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신비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기대와 경외심을 가지고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물질적인 면보다 영적인 면을 더 크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나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의 시대가 되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의 반쪽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이미 자신의 더 중요한 반쪽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많은 성도들에게는 여전히 눈에 보이고 몸으로 경험되는 현실이 더 크고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그런 현실을 돕는 보조자나 혹은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해 주시는 분쯤으로만 여겨질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꼭 밖으로 들리게 대답하지 않으셔도 좋지만 꼭 한 번 생각해 보시고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눈에 보이는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측면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이고 영원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지요? 그러신 줄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측면과 눈에 보이지 않는 측면들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십니까? 하나의 일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측면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으며 살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게 전부인 줄 알고서 살아가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참 성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당장 현실적인 유익이 없어 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것들이 더 가치있고, 그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고 그 순서에 따라 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그 성을 눈 앞에 놓고서 두 주간이나 머뭇 거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두 가지 일을 모두 이행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고 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온전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고 또 자신이 어떤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도 분명히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사람이고 또 누구인가를 새롭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다음에 이제 실제로 여리고성을 공격하기 전에 있었던 마지막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의 가까운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문득 자기 앞에 칼을 들고 서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아주 대단한 전사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무엇보다 먼저 그를 경계하고 탐색했습니다. 만약에 그런 뛰어난 전사가 자기들 편이 아니라 상대방의 편이고, 지금 자기 눈 앞에 그런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서 있다면 그것은 굉장한 위험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당신은 우리 편이냐? 아니면 우리 적들의 편이냐?” 이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호와 군대의 대장인 천사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 천사는 과연 누구의 편일까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이니 이스라엘의 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나안 족속들, 특히 이제 공격해야 하는 여리고 사람들의 편일텐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라면 그럴 수가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이 천사는 이스라엘의 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대장이 천사이니 그 군대 또한 천사들이겠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군대의 대장인 천사가 천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도우러 온 것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마도 이 본문을 읽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읽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에 여러분에게 전할 설교를 준비하기 전에는 그냥 자동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찬찬히 본문을 뜯어 보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여호수아와 천사 사이의 대화가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물었습니다. “우리 편이냐? 아니면 우리 적의 편이냐?” 그랬더니 천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다” 질문과 대답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니라니 갑자기 뭐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제가 아주 쉬운 질문을 하나 드릴 테니 여러분이 한 번 대답해 주십시오. “자, 이것은 1이 맞습니까? 아니면 2가 맞습니까?” 맞다 아니다로 대답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둘 다 아닙니다.”가 답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아니라’라고 한 대답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제가 조금 전 드린 질문처럼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 편도, 너희 적의 편도 둘 다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둘 사이의 대화가 정상적인 대화가 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 편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렇지만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꼭 여호와 군대의 대장은 항상 이스라엘의 편만 들어주어야 할까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든 이스라엘은 무조건 이기게 만들어 주어야 할까요? 혹시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요?
또 한 가지 그러면 여호와 군대의 대장은 있는데, 군대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대장이 천사니 군사들도 천사일 것이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군대가 천사들이라면 여호수아서 어딘가에는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었다는 기록이 있을 법한데, 그런 기록은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군대는 천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조금 넓게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군대는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7장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겠다는 뜻을 말씀해 주시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부르고 계시죠? 내 군대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 애굽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의 군대는 천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라 애초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그림이 눈에 들어오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여기십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군대는 그 나라의 백성들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니까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하시기 위해서 천사를 그 군대의 대장, 그러니까 사령관으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천사는 항상 하나님을 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계속해서 이스라엘 앞에서 그를 높여주시고 또 인정해 주시는 것을 거듭해서 보아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여호수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준비를 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내려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 그런 역할을 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역할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그것을 분명히 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여호수아도 탈선을 할 수 밖에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릇된 길로 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천사를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장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고 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우리들을 위한 참 대장이고 또 참 지도자일까요? 하나님의 군대의 군사들이 우리들은 누구를 우리의 참 대장과 지도자로 여기고 따라가야 할까요? 옛날 이스라엘과 똑같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참 대장, 참 지도자의 역할은 절대로 인간이 맡을 수도 없고, 또 맡아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도력을 위임받아 교회를 돌보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생각, 자기 취향, 자기 계획대로 교회를 이끌어 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생각도 필요하고 목표도 필요하고 또 계획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그 방향과 가치가 일치할 때만 허용될 수 있는 수단에 머물러야 합니다. 지도자가 자기가 대장이 되고 또 힘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자기도 망가지고 공동체도 망가뜨리게 됩니다.
성도들도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너무 인간 지도자를 맹신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교회의 머리가 아니니까요. 하나님께 일정한 권위를 위임받아 여러분을 지도하는 교회의 지도자들도 그저 인간에 불과합니다. 항상 부족한게 사실이고 그래서 언제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모르고 그러거나 혹은 알고서도 그러거나 말이지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을 이끌어 가고 또 교회를 움직여 가는 방향이 성경적으로 볼 때, 잘못되었다고 여겨지거나 혹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그냥 계시지 말고 꼭 물어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이유를 들으셔야 합니다. 물론 지혜롭게 질서를 지키면서 그렇게 하셔야 하지만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애석하게도 이렇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것을 보면서도 그저 끙끙거립니다. 그러다가 문제는 곪을 대로 곪아 결국 터지게 되지요. 그러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 이미 대형사고가 일어난 다음이니까요. 그 때가서 그 문제를 수습한들 이미 상처는 있고, 그 흔적은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 속에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우리가 목사이건 성도이건 간에 우리는 사람이 교회의 진짜 대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며 그것을 목숨처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교회는 여호와의 군대로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천사는 자신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아직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참 이상한 말이지요. 그런데, 실은 바로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천사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보다 일찍 와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어서 이기게 해 주시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그런 역할을 맡고서 거기에 왔고, 그렇게 해 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사가, 또 하나님이 진짜 자기들의 대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그래서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그 때는 편을 들어 줄 수도 없고 편들어 준다고 한들 이기는 군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대장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병사들이 그 대장을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다면 절대로 그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르는 이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전쟁에서 이긴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영적이고 신앙적인 전쟁이 더 결정적인 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절대로 그 전쟁은 이긴 전쟁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 군대의 대장으로 파견받아 왔지만 아직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했던 천사의 말은 실은 그러니까 내가 누구의 편이 될 지는 너희가 정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반대편을 들어주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이스라엘을 편 들어 주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기만 해도 이스라엘에게는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숫적으로야 어떨지 몰라도, 가나안 족속들은 이미 든든한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 앉아 있고, 높은 산에 요새를 세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고, 무기를 비교해 보아도 이미 그들에게는 철로 만든 무기와 병거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철로된 칼과 창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 편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여호수아는 천사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서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이것이 진짜 영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태도입니다. 모세를 대신하는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 이제 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큰 일을 맡은 여호수아는, 자신이 아무리 커다란, 영적이고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아무 것도 아닌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자기 주인에게 순종해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종이 되어서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엎드린 여호수아에게 천사는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저는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한 이 말 속에 앞으로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꼭 지켜내야 하는 모습이 모두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삶을 통해서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바로 이 말씀 안에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알려 주시기를 원하신 것은 여호수아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거룩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은 거룩하지만 교회 밖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거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비교적 조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별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과연 그렇게 거룩한 곳과 거룩하지 않은 곳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거룩함과 그렇지 않음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 어디든, 우리 삶의 영역 어디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그런 곳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으시는 그런 곳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든 계시고 또 이 세상 구석 구석을 예외 없이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생각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 모든 곳,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거룩한 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의 눈에 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성경은 여호수아가 천사를 만나는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 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그렇다면, 과연 그 이전에는 없던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그 순간 그 자리에 짠하고 나타났던 것일까요?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그런 것 같이 표현되어 있지만, 14절에서 천사가 들려준 말의 정확한 뜻은 자신이 지금도 여기에 있지만 이미 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사의 말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와서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리고 여호수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들은 왜 미래를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또 확실치 않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두려워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것은 만약 그 삶이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욕심대로 결정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앞서 가시고 또 우리가 가야 할 곳에 이미 가 계시면서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앞 길을 알 수 없어도, 불확실한 길을 갈 때도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13절은 여호수아가 자기 눈 앞에 서 있는 천사를 보게 된 것이 ‘눈을 들었을 때’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말은 성경에서 조금은 특별한 순간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은 누군가가 그 이전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갑자기 보았을 때,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준 행동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한 계시의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 계시는 그 사람이 눈을 들었을 때, 이렇게 축 늘어진 손을 치켜 올리듯이, 아래 쪽만 향해 있던 눈을 들어 올렸을 때 그 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구석 구석은 전부 다 거룩한 곳입니다. 그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또 그 모든 곳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 그렇게 계시고 또 그렇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아무 때나 아무의 눈에나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현실 때문에, 상황 때문에 끊임 없이 아래쪽을 향해서만 내려가는 우리의 눈을 들어 위를 바라 볼 때, 저 앞을 바라볼 때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인생의 주인은 네가 아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세상도, 너의 인생도 내가 주인이고 내가 다스리고 있다. 그러니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 네가 서 있는 그 삶의 자리가 가장 거룩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네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눈은 한쪽 방향으로 너무 치우쳐 있습니다. 현실에, 그리고 이 땅에 쏠려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의 눈은 항상 아래 쪽을 향해 있고 땅에 있는 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이, 내가 지금 서 있는 그 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래서 거룩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인생과 생명이 온통 땅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눈을 들어야 합니다. 힘없이 축 쳐진 손처럼 땅만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들어 좀 더 위쪽을, 그리고 저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먼저 가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더러운 신을 벗고 하나님께 내가 서 있는 그 곳, 내 땅이라고 여겼던 그 곳, 그래서 내가 내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발버둥쳤던 그 곳을 다시 하나님의 땅,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으로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그 모든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대장이 되어서, 우리가 가야 할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제 우리 삶 속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영적인 전쟁이 있음을 생각하시며 그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를 이끄시는 우리의 대장되시는 하나님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우리의 삶의 자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복된 약속의 땅으로 회복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