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사기 20-21장)
설교일 : 2015년 6월 4일 목요일
드디어 기브아에 사는 베냐민 사람들에 대한 징벌이 시작됩니다. 자기 첩을 그런 식으로 잃은 레위인이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소환했고, 그 소환에 응항 이스라엘 백성들전체가 기브아를 벌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처음부터 기브아에 사는 베냐민 지파 전부를 대상으로 징벌을 내리기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인을 죽이고 레위인을 욕보이려고 했던 가해자인 기브아 성의 불량배들만 처리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불량배들을 내놓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 징벌의 대상이 베냐민 지파사람 전체로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20장 중간에서 보는 것처럼 베냐민 지파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전쟁이 그래도 조금은 할 만한 전쟁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거의 모두가 다 싸움에 능숙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무리 언약을 맺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고 죄는 죄입니다. 반드시 처리하고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힘을 믿고서 무조건 같은 편 감싸기에 나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죠.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힘의 대결과 자기 편 감싸기. 이런 것들은 정말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베냐민 지파 전체에 대한 공격이 결정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지파를 공격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지목하셨고 그래서 유다지파가 먼저 공격했습니다. 아마도 대승을 예상했겠지요.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22,000명이 전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들은 이번에는 여호와 앞에서 해가 저물도록 울며 다시 공격할지 말지를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올라가서 치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또다시 18,000명이 전사하고 이튿날의 전투도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벧엘에 가서 울며 하나님 앞에서 그 날이 저물 때까지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겠다’는 답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매복작전을 통해서 완승을 거두게 되지요. 참 이상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미 싸움을 허락하셨으면서도 두번 씩이나 커다란 패배를 경험하게 한 후에야 승리를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두 가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첫째,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는 베냐민 지파의 범죄에 대해서 전혀 아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형제였지만 그저 재판관의 자리에서 그들을 정죄하고 벌 주는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너무 너무 싫어하십니다. 모두가 다 한 몸이고 한 형제요 자매이니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안에 있는 악을 제거하고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징벌을 가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때라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 죄를 자기 죄로 여길 줄 아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둘째, 이들은 자기들의 죄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를 정죄하고 벌주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자기들 속에도 그런 죄는 아니지만 굉장한 죄악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 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똑같이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베냐민을 벌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손 보셔야 했습니다. 교만한 죄인이 다른 죄인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벌주게 하실 수는 없으니까요.
살아갈 때, 선악간의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때로는 잘못을 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징계를 내릴 수 밖에 없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라도 우리 잘못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와 똑같은 죄인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처리한 후에 조심스럽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위선자가 되고 스스로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자리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베냐민 지파 25,100명이 죽고 싸움은 나머지 지파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한 지파 전체가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그저 한 지파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열 두 지파여야하고 그럴 때, 온전한 이스라엘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너무 과하게 벌을 주는 바람에 베냐민 지파의 여성들이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오히려 남자는 몇 백명 남았지만 베냐민 지파는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나머지 지파는 절대로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에게 딸들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저주까지 걸어가며 맹세했으니까요. 결국 이 문제는 실로의 여성들을 보쌈해 다가 베냐민 지파 남자들의 아내로 삼는 이상한 방법으로 억지로 해결되기는 했습니다만 이미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 한 지파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작은 숫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죄는 개인 뿐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이렇게 심각하게 망쳐지게 만듭니다.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그 영혼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신앙공동체 전체를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로 남아있지 못하게 철저히 부수고 망가 뜨립니다. 그런 점에서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인 21장 25절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사사기를 마감하고 있다는 것은 사사기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사사기의 그 모든 더럽고 추잡한 죄악들, 그리고 그 죄악들로 인한 고통과 혼란과 비극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된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절하며 스스로 왕노릇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어두운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했을 때, 맺혀질 수 밖에 없었던 열매들이었던 것입니다. 사사시대에는 위대한 사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타락했고 또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삶과 교회 공동체 안에는 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란 바로 하나님만을 우리 삶과 교회의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며, 또 기억하면서 홀로 있을 때, 또 함께 모였을 때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거듭되는 죄가 있을 때, 그 죄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꼭 고백하고 회개하며 용서받는 은혜 속에서 다시는 똑같은 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 은혜에 의지해서 포기하지 말고 거룩한 길을 가십시오. 그 복되고 영광스러운 길, 우리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가십시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온전하신 다스림 속에서 인생과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