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2. 금요기도회 -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8(사도행전 109)
본문 : 사도행전 17장 29절
이제 드디어 이 제목으로 하는 설교의 마지막에 왔습니다. 몇 번이나 하게될까 했는데, 벌써 8번째네요. 길다면 긴 거 같지만, 사실 저는 제가 이 정도 밖에 여러분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게 하나님 앞에서 죄송스럽고 여러분에게도 그렇습니다. 그저 하나님에 대한 저의 지식이 너무 일천하다는 것만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저도 여러분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을 것이고, 또 성령님께서 함께 나눈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살을 덧붙여 주셔서 풍성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잠시 지금까지 살펴 본 내용을 잠시 정리하고 오늘 내용으로 넘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만이 만물을 지으신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또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것들은 절대로 그런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니까요. 둘째,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전에만 갇혀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하나님이 너무 크고 광대하신 분이시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크신 분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교회 안에만, 혹은 우리 삶의 특정한 부분에만 가두어 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인이시듯이 하나님을 내 삶 전체의 주인이요 주관자로 모시고 살 때, 그 때 하나님을 믿는 참 유익을 알 수 있습니다. 세째,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섬김을 받아야만 무언가 부족함이 채워지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부족한 것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그것도 모든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네째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렇게 크고 놀랍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서 홀로 독야청청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로 다가오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보기를 바라시는, 항상 그렇게 사람들과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죄인이 된 이후에 인간의 영적인 기능들이 다 망가지고 오염되어서 우리들의 노력만으로는 아무리 더듬어 찾아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찾아봐야 우상들이고 또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그렇게 병들고 오염된 우리 영혼을 되살리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은혜 덕분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존재, 그리고 심지어는 움직이는 동작 하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것 하나 가지거나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래서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연관된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실 한 가지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놀랍게도 그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소생’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를 참으로 기독교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분명히 그 분을 우리의 왕이요 주인이요 창조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서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규정지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가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하나의 신과 그 신을 섬겨야 하는 인간이라는 형식적이고 딱딱한 관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가족이고 부모자식지간이라는 가장 친밀하고 또한 인격적인 관계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격적이고 친밀하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계가 바로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이끌고자 하는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확신하고 또 누리는 그 자리까지 가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풍성함과 든든함, 그리고 가장 큰 영광을 놓치고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남편과 아내 한 번 잘 만나고 부모 한 번 잘 만나도 같은 길이의 인생에서 누리게 되는 풍성함과 행복이 그렇게 천차만별로 다른데, 그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진짜로 내 아버지 노릇을 해 주시는 것이 매일 매일의 나의 삶이 된다면, 그런 은혜와 복을 누리고 산다면 그러한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럽겠습니까? 또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복을 모르고 산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손해를 보며 사는 셈이 되겠습니까?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되는 자리에 데려다 놓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기 위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새 생명을 넣어줍니다. 복음은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이 되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른 그 어떤 관계도 대신하고 대체할 수 없는 친밀하고 풍성한 관계,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가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관계를 누려야 합니다. 그 관계가 주는 모든 유익과 능력을 누리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그 복과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당당함과 그 풍성함, 그리고 그 영광스러움을 말이지요.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반드시 이 복이 무엇인지 알고 이 복을 누리는 자리로 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하고 또 소원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직 주시지 않는 복 달라고 떼써서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것으로 취하려고 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여러분 앞에 활짝 열려지는 그런 복입니다. 이미 나에게 그 복이 주어졌음을 알고, 그 복이 정말 귀한 것인 줄 알고, 믿음으로 현실 속에서 사용하기만 하면, 그 방법을 배우기만 하면 언제든 맛볼 수 있는 그런 복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모두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제발 우리 광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됨의 복을 제대로 누리며 살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많이 한탄스러웠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리고 인간의 언어가 너무 형편 없어서 이런 단어들로 밖에 그 놀랍고 엄청난 은혜와 복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자녀됨의 은혜가 제 속으로부터 밖으로 이렇게 흘러넘쳐서 저를 보시는 분이 저것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이구나 할 수 있는 날, 그렇게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우리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그 풍성한 복을 함께 누리는 그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9절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우상 사이에 있는 관계와 전혀 다릅니다. 독실한 불교도들이 자신의 종교를 믿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정말 따라가기 힘듭니다. 매일 새벽 목욕재개하고 새로 옷을 갈아 입고 불공을 드립니다. 그야 말로 치성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앙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신이라고 만든 것들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비단 불상을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라는 신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신입니다. 부처는 원래 신이 아닙니다. 자기가 신이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선각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이 이 선각자를 따라가면서 이 부처를 신처럼 만들어 섬기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상상 속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부처는 원래의 부처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신격화된 우상에 불과합니다. 불교가 우상숭배가 가장 고차원적으로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에 그 나머지 종교들은 이보다도 훨씬 더 못합니다. 그저 가상의 신을 마음에 떠오르는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마치 그 형상에 무슨 능력이 있다는 듯이, 그 형상이 신으로 그렇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은 관계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무엇보다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우리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정성을 드리고 덕을 쌓아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또 그저 어떤 형식만 갖춰놓고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해서도 안됩니다. 신을 얼르고 달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는 것이 아니니까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신뢰입니다. 그 어떤 다른 관계 안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과 신뢰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길 때,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신뢰와 사랑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있으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부모자식지간일 뿐만 아니라 피조물과 창조주, 죄인과 구원자, 주인과 종, 왕과 백성의 관계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어떤 모습 속에도 그런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녹아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를 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제대로 챙겨야 합니다. 이 관계가 바로 서 있고, 또 이 관계를 정말로 소중히 여기며, 그 관계 안에서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의미있고 가치있어 집니다. 그저 하던 것이니까 무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만 하는 것은 마치 사람들이 자기 기술과 고안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서 자기가 정한 형식에 따라 그 우상을 섬기는 행위와 같아집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우상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그 우상을 얼르고 달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면 그뿐이지요. 그렇지만 우리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얼르고 달래지는 분이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줄을 알고 또 믿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기도를 드리고 난 후에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래서 입니다. 만약 내가 달라고 기도한 것이 사실은 나에게 독이 될텐데 그걸 모르고서 내가 기도한 것이라면, 그런데 그저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했으니까 그냥 그걸로다가 주신다면,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나서 그런 걱정을 해야 한다면 우리가 어찌 기도한 후에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의 평안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지극히 친밀하고 온전한 관계 덕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신앙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정말 내 삶 속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되어주심을 누리며 그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내 신앙은 그런 아름다운 관계로 채워져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일이 안되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시큰둥해 지고 우리가 그 관계가 주는 풍성함과 기쁨, 든든함과 만족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신앙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살 때, 우리 신앙은 결코 무미건조한 상태에 남아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가 사랑과 신뢰 가운데서 주고 받는 깊고 진한 교제, 기쁨과 만족의 이유가 되는 그런 온전한 교제가 될테니까요.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가 지루하고 덤덤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더욱 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교제를 나눌 뿐 아니라 영적인 교제를 나누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이방신이나 우상 대하듯이 그렇게 대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신앙도 아닐 뿐더러 우리를 참되고 풍성한 삶으로, 영생으로 인도할 수도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나, 나와 하나님은 그저 한 신과 그 신을 섬기는 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라는 이 은혜롭고 능력있는 사실을 중심에 놓고 여러분의 신앙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과 이 관계 가운데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나는 정말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사랑하며 신뢰하며 그렇게 섬기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중심에 놓고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시고 또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믿는 참 신앙의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우리들도 그 안에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어주시는 일의 은혜와 능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해 주신 그 은혜를 항상 잊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렇게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