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더 8-10장)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극적인 반전’이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밋밋하고 뻔한 내용이나 평범한 결말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나 모두 이런 마지막 반전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에스더서를 통해 만나는 반전보다 더 극적이고 완벽한 반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야 아주 짧게 기록된 것을 그것도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서 보게 되니까 이 반전이 그다지 극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지만, 에스더서가 그리고 있는 반전은 그저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꾸며낸 가상의 반전이 아니라 정말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소름끼치는 반전을 진짜로 자기 삶 속에서 경험했던 것입니다. 어느날 아침에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려진 진멸에 대한 왕의 명령, 그리고 그 날 부터 공포와 긴장 속에서 그 진멸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매순간 순간들. 이 시간들이 이 일을 직접 경험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아무런 소망도 없던 어느 날 아침,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소식! 그 소식은 단지 자신들을 다 죽여 없애라는 왕의 명령이 취소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반대로 자신들을 적대시 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려고 했던 대로 그대로 갚아 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만이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제비 뽑아 결정해 놓았던 날이 자기들 손으로 그 대적들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그런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9장 1절을 보면 그 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달 월 곧 열두째 달 십삼 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날에…”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멋있는 말들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날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그 반전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그래서 모르드개는 이 날을 부림절, 그러니까 제비의 날로 정하고 앞으로 절대로 잊지 않고 모든 유대인들이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날로 공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슬픔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애통함은 길함이 되었습니다. 전날 밤 잠자리에 들 때의 어둠은 다음 날 아침 완전한 빛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치욕이 영광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지 않은 상태였고, 자신들은 이방나라에서 소수의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 날의 이 은혜로운 반전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날 이후, 그러한 똑같은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경험을 했다면 대번에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회복과 해방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있었지만, 상황은 전혀 그런 회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조짐이 보이질 않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 정말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고, 또 우리는 이스라엘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긍정적인 대답보다는 부정적인 대답이 더 많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달랐졌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 누구나 그 약속을 의심치 않았고, 불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시고 멸망 일보직전의 백성들에게 영광을 주시고 오히려 그 대적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시는 그런 하나님을 경험했으니 지금 당장 그들이 경험하는 변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현실은 그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뒤집으시면 손바닥처럼 뒤집혀 질 수 있는 그런 별 것 아닌 일들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림절이라는 절기를 지켰다는 것은 에스더서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증언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히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음으로 살아도 결코 실망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바르고 깨끗한 삶을 살아도 이 세상은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악한 사람들, 욕심 많은 사람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있고, 세상의 이런 모습은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꾸 흔들리고 좌절에 빠지게 되지요. 아마 시편에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어느 시대나 세상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그런 불안과 흔들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소리칩니다.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도 아니고, 그게 세상의 결론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로 소리칩니다. 물론 에스더서가 기록하고 있는 이런 극적인 반전이 어느 시대, 어느 자리에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이내 그렇지 않은 정반대의 일들이 그 자리를 채워갈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악이 있고 악한 사람들이 힘을 과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세상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모든 비정상적인 모습들을 전부 다 남김 없이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왕으로 모두의 무릎을 그 분 앞에 꿇게 하시는 날, 온 세상은 온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반전이 일어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에스더서의 반전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그 위대한 반전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실체가 있다는 뜻입니다. 에스더서의 구원사건이 실제 사건이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오늘 에스더서를 읽는 우리들은 에스더서의 반전을 통해서 그 날을 믿는 믿음과 소망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하고 또 무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그 소망을 붙들고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온 세상이 진짜 부림절을 지키게 되는 그 날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운 명절이 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삶이 불안해 지고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에스더서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으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회복되고 또 회복되면서 더욱 더 단단해져 가는 우리들, 우리를 위한 참 부림절을 기다리는 복된 성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