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0.2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욥기 8-10장)

장유진 2015. 10. 2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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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성도 여러분,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까? 아니면 틀린 말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아니, 우리 신앙 안에서는 맞을 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사는 실제 생활에서도 항상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우리의 경험과 이 세상을 모두 다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경우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바르게 돌아온다는 것은 분명히 틀림 없는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한 절대로 깨어질 수 없는 이 세상의 원칙입니다. 그런데도 실제의 우리의 삶 속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지요. 그래서 당황스럽고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반대 편에서는 그것 때문에 우리가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가게 되구요.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보여지고 그래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시간 때문입니다. 사필귀정이라는 법칙이 확실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일들이 바르게 돌아가는 것이 인식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몇 년, 몇 십년, 몇 세대가 흘러가기도 하구요. 어떤 경우에는 아얘 주님 다시 오신 이후로 미뤄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일이 그렇게 바로 돌아갈 때까지 그 과정이, 우리가 다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 굉장히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6장과 7장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한 말의 요지는 ‘사필귀정’입니다. 얼마나 구구절절이 옳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느냐”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정말 틀린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빌닷은 이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하고 있 고 또 일이 그렇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 일을 한 사람의 인생 안에서 모두 일어나는 것으로 한정지어 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표현들도 너무나 단호하고 분명하지요. 이것은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함부로,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게다가 욥의 자녀들의 죽음까지도 그 틀에 넣어서 그들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한 것은 그들에게 그만큼 커다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해석도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상황으로 볼 때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다기 보다는 가장 잔인한 일입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성경이라는 진리를 상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진리를 너무 쉽고 간단하게 생각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남에게 적용할 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아주 단호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서 때로는 그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잔인한 일이 될 수 있는지는 잘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진리는 분명히 진리입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서 경험되고 증명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짧은 시간 속에 갇혀서 살고 있고,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지켜볼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험한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실제로 그럴 수도 없지만 그래도 진리를 이야기할 때는, 특히 그 진리와 관계된 어려움이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말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때나 항상 A이니까 당연히 B라는 결과를 얻은 것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판단이라는 점도 기억하고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말하는데 있어서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진리가 도리어 듣는 이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빌닷의 이야기를 들은 욥은 빌닷의 말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사실 모든 일이 즉각 즉각 사필귀정의 법칙으로 움직인다면 인간은 반대로 그만큼 더 소망이 없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간은 없고, 그래서 그런 기준 아래서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커다란 잘못을 했기 때문이고, 또 내가 괜찮은 것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실제 삶 속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로만 본다면 인생의 길흉화복이 그 사람의 잘잘못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꾸 그런 눈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보고 또 평가하려고 드니까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분명해도 그 진리를 가지고 이 세상과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은 많이 조심스럽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한계이고 또 그렇게 해야 그 한계 안에 머무는 겸손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믿는 바는 확실하게 붙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 확실함 가운데 겸손함과 조심스러움도 잊지 않는 낮은 생각과 낮은 마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