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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각

새로 열린 문...


     예전에는 믿음 성장을 아랫 계단에서는 윗계단에 뭐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생각했었다(물론 윗계단에서는 아랫계단에 뭐가 있는지 다 보인다). 그런데, 그 생각도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요즘 거기에 무언가 덧붙여야 비로서 맞는 설명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앙은 그렇게 위로 올라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옆으로의 지평도 그런 식으로 확장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신앙은 단지 수준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닫힌 세상이 다른 세상과 연결되어지며 전혀 보이지 않는 세상과 연이어 넓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요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나의 믿음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고, 그래서 채워지고 더해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없는 믿음을 있는 믿음으로 바꾸기 위해서 무엇이 꼭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계신다. 진실로 예수를 믿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신다. 그리고 이 지식은 진실로 내 믿음의 비어있는 곳을 채워가고 있으며, 그 빈 곳이 조금씩 채워질 때마다 나를 울게 하고 흥분하게 한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너무 바보같아서 울지만, 또 너무 기쁘고 충일해서 흥분되기도 한다. 

    믿음의 성장은 단순히 높이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넓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지금 내가 있는 방이 전부인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더듬 더듬... 그 방의 탐험이 다 끝나갈 때쯤 벽들 더듬는 내 손에 그 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그리고 그 방에 있는 줄도 몰랐던 문고리 하나가 손에 잡혔다. 문고리가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머무는 방 뿐만이 아니라 그 문을 통해 그 방과 연결된 다른 방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을 열었다. 

    세상에...
지금껏 내가 전부인 줄 알고(물론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밖에 무엇이 있는 줄은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그 방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는 공간의 전부였다) 그 안에만 머물렀던 그 방은 내가 열려진 문을 통해 다른 방으로 한 발을 내딛자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 열린 방, 내가 들어선 방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제 또 다시 방은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전의 방에 대한 탐험도 모두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나에게는 그 방을 포함하는, 그 방을 흡수해 버린 그러나 이전의 방과는 전혀 같지 않은 탐험의 공간이 열려진 것이다. 이제 나는 하나의 방을 탐험하면서 두 개의 방을 동시에 탐험하는 셈이 되었다. 
새로운 방, 이전의 방과 하나가 되어버린 그 방은 또다시 내가 들어온 문 밖에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 넓디넓은 결코 완전히 탐험하지 못할 공간을 내보여주면서 다시 보이지 않는 문을 찾아보라고 그렇게 '믿음의 지평'을 넓혀보라고 초청한다. 

     아...
한가지만 더 말한다면, 새로 열린 방은 이전의 방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분명히 다른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이지만 그 빛나는 광채가 다르고, 그 향기가 다르며, 그로 인한 충만한 만족감과 그 만족이 주는 능력이 다르다. 평생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믿음 안에 진짜, 그것도 이 땅 위에서 이런 만족과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참,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이전에 내가 있던 "하늘의 소망"이라는 방을 열어주시고 그 방으로 들어가게 하셨을 때도 나는 이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있었던 이전의 방과 지금 나에게 새롭게 열려진 이 방은 원래 하나였던 것 같다. 어떤  쪽에서 접근하던,어떤 쪽에서 문을 열던 그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하나가 되는 그런 방 말이다.아, 온전한 은혜여, 그러나 단편적인 인식이여...)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아니 확신한다. 
그 방 안으로 단 한 걸음만 들여놓았을 뿐인데, 기독교의 신앙 안에는 비록 땅에 살아도 근심과 걱정을 넘어서는 능력이 진짜로 있음을, 있고 소유할 수 있음을, 그렇게 이미 허락되어 있음을 믿는다. 이미 그 세계로 향한 문이 열렸고, 그 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눈부시게 기쁘고 충만한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은 어디있을까?
아직 두 걸음도 나가지 못해놓고 또 다른 문이 기대되는 것은 왜일까? 보이지 않아도 그 문이 있음이 믿어지는 것은 또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