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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장년2부 마지막 설교 -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날짜 : 2011-12-18

본문 : 시편 133편 1-3절 


서론 : 약한 우리들, 강한 말씀

오늘이 제가 여러분 앞에서 마지막으로 설교를 하는 날입니다. 자꾸 시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만 7년이 넘는 동안의 장년2부 사역을 오늘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저런 생각과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동안 여러분같은 청중이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참 큰 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목회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제가 머무는 울타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었습니다. 이런 여러분 앞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이야기할까, 어떤 말씀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말씀이 오늘 설교의 본문인 시편 133편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 개인화되어 있고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은혜받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결코 생략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만약 신앙에 이것 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것만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신앙은 너무 빈약하고 빈궁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본과 필수만으로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영적으로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과 필수만으로는 풍성하고 든든한 삶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경건과 개인이 은혜받는 일은 바로 이러한 기본과 필수에 속하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개인의 영성과 개인이 받아야 하는 은혜 밖에 붙들 수 있는 것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그거라도 붙들어야 하겠지만, 그것 말고도 신앙을 진짜로 풍성하고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챙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제목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은 이 시가 다윗이 지은 시이며, 성전으로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예배드리러 오면서 부르는 노래,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부르는 노래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노래를 부를까요?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죠, 성도들이구요. 그런데, 이 노래는 개인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한 목소리로 부르던 그런 노래였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노래가 아니라 함께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다시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이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네. 잘 하셨습니다. 이 노래는 이런 식으로 불려졌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장년 2부가 언제나 함께 이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또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있는 그런 공동체로 남아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 시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감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눈에,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형제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로 되어 있었지만 원래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림 속에서는 이 열 둘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이스라엘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색깔이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를지라도 모두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넘어서서 연합하며 또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 성경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됨입니다. 실제로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하나되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교회의 교회됨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연합과 동거입니다. 연합은 물론 그 자체로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연합은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생각과 감정이 동일해 지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의 주장보다는 양보를 요구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지만 그 다양성이 하나됨을 해칠 때에는 그 하나됨을 양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동거, 함께함이란 바로 그런 하나됨 위에 세워진 집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선한 것이 됩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아름다움과 선함은 말로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그 아름다움과 선을 이루기 위한 양보와 포기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나도 아름다워지고 선해지며 내가 속한 공동체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선한 곳이 됩니다. 

2절과 3절은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본문이 사용하는 그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거룩한 기름이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을 거쳐 뚝뚝 떨어져 내리는 그림이고, 또 하나는 헐몬산의 이슬이 시내와 강이 되어서 시온의 산과 들을 적시는 그림입니다. 둘째 그림은 그렇다 쳐도 첫번재 그림이 왜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없습니다. 거룩한 기름은 성별의 기름입니다. 그 기름이 제사장 중의 제사장인 아론의 머리로 부터 수염을 타고 옷까지 흘러내립니다. 그럼 자체는 별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복주심의 그림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사람들이 된 것은 그들이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별과 거룩함을 통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을 통해 주시는 복, 또 제사장 나라가 되는 복이 바로 그 구별과 거룩함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그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그림은 척 봐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가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그 풍경화 속에는 ‘풍성하고 넉넉한 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헐몬산은 거룩한 산입니다. 그 산에 내린 이슬은 모이고 모여서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룹니다. 그리고 작은 산과 넓은 들을 적십니다. 그 땅을 풍성하고 넉넉하며 소산이 많은 그런 땅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그림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아름다움, 그리고 풍성하고 넉넉한 풍성한 아름다움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연합하여 동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함과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아름다움이며, 풍성하고 넉넉한 아름다움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바로 성도들이 연합하여 함께 거할 때, 서로 어울려 신앙생활을 하고 함께 삶을 나눌 때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진짜 아름다움, 성도의 거룩함과 참으로 풍성한 복은 바로 이러한 연합과 동거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연합함과 함께 거함을 통하지 않는다면 성도는 결코 이러한 거룩함과 풍성한 신앙의 복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공동체로 모였습니다. 이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은 내가 은혜받는 일도 아니고 내가 만족을 누리는 일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 공동체를 통해서 연합과 동거를 배우는 것입니다. 점점 더 온전한 연합과 동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장년부가 마치 재미없으면 끊어버리는 아이들의 학원같은 곳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참된 거룩함과 진짜 넉넉함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놀라운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영생을 명령하셨습니까? 그 엄청난 복을 어디서 허락하시고 또 부어주셨습니까? 바로 성도가 연합하는 곳, 성도가 함께 거하는 그 곳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본래 영생이라는 놀라운 최고의 복은 개개인 차원에서 허락된 복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서로 연합하고 동거하는 그런 공동체 안에 허락하신 것임을 알 려 줍니다. 그 공동체를 통해 영생을 얻고, 그 공동체 안에서 그 영생을 맛보며 살도록 말입니다. 

교회는, 그리고 성도들의 모임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여러분의 신앙과 구원을 위해서 중요한 곳입니다.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선함을 만들어 낼 때, 거기서 하나님은 모든 풍성한 복을 부어주십니다. 

이 공동체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공동체가 바로 오늘 시편 133편의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일 때마다 133편을 소원을 가지고 노래하며, 133편을 넉넉한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답고 선한, 복받은 곳이 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돌아보니 제가 장년2부에 머문 7년 동안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미 많이 그렇게 변화되어 온 것 같습니다. 이 복을 놓치지 마시고 더더욱 풍성하고 가꾸어 가시고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