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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0년 매일성경설교 33.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사용법]


방문하시는 중에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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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 2장 16-28절





솔로몬의 이야기

이제 솔로몬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런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을 그렇게 순적하게 왕이 되게 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아주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되었고, 그 분께 그 기쁨과 감사를 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이 너무 컸기 때문에 솔로몬은 천 마리의 짐승을 제사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이 제사는 하루에 한 번씩 천일 동안 드려진 제사는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브온에는 제단이 하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단이 엄청나게 컸던 것이죠. 저는 그 천 마리의 짐승이 한 번에 제사로 드려진 것으로 보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구요. 정확한 것은 그저 천 마리의 짐승을 제사로 드렸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뭏든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의 태도를 너무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받은 은혜를 은혜인 줄 알고 그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 앞에서 누리며, 또 표현하는 것... 하나님은 이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한 가지만 말해 보거란 내가 네 취임선물로 다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주 뜻 밖의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어립니다. 아버지 뒤를 이어 이 넓은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너무 어리석습니다. 저는 언제 들어가야 하고 언제 나가야 하는지도 분별 못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선악을 잘 분별하여 이 나라를 잘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을 너무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야. 너 참 마음에 든다. 어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냐? 오래 살게 해 달라거나, 왕위를 오래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하거나, 네 정적의 목숨을 구하지 않고 백성들 잘 돌볼 지혜를 달라고 하다니... 당연히 주지. 주고 말고. 너를 전무후무한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이건 덤이다. 네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도 주겠다. 너같은 왕이 없을 정도로 내가 너에게 특별한 복을 주겠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맞추었더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상으로 그가 원한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 덤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난제 해결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아마도 솔로몬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왔던 왕이 어떻게 아무도 풀지 못했던 난제를 풀었는가를 보여주는, 그의 지혜가 어떤 지혜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이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궁으로 돌아온 후에 솔로몬은 그 사건이 자기에게 올라오기까지 그 누구도 손도 대지 못했던 아주 어려운 소송사건을 하나 대하게 됩니다. 그 사건은 바로 창녀 둘이 한 아이를 가지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리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고소인은 진짜 엄마였습니다. 그 엄마가 이야기하는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자신과 자신이 고소한 여인은 한 집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둘은 거의 동시에, 3일 차이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소인인 여인이 어느 날 밤에 자다가 자기 아이를 깔아 죽이고는 몰래 자고 있는 고소인의 아이와 바꿔치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도 모르고 깜깜한 새벽에 아이 젖을 주기 위해서 일어났던 고소인은 자기 옆에 있는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황이 전혀 없던 여인은 나중에야 그 아기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자기 옆에 있던 그 아기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 함께 사는 여인의 아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아이라 어느 여인의 아이인지 그 누구도 증언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 여인이 아이를 낳고 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그 집에 들른 사람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니 이 사건은 정말 오리무중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야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유전자 검사만 해보면 즉각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그 당시로는 정말 이 사건은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솔로몬에게도 정말 난제 중의 난제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증인도 없고, 그렇다고 갓난 아기가 누가 내 엄마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여자는 똑같은 주장을 하고... 그 때 솔로몬은 아주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 무슨 취조나 심문을 하지도 않고 그저 말 한마디로 해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칼을 가지고 와라” 아마 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 누구도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넌지시 추측한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설마 솔로몬이 그런 일을 지시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하가 칼을 가지고 오자 솔로몬은 정말 엄청난 명령을 내립니다. “둘 다 저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하니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저 아이를 이 칼로 반으로 나누라. 그래서 한 사람에게 반쪽씩 나눠주어라” 사람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쩌자고, 왕이 미쳤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왕의 잔인함과 무지비함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가장 먼저 가장 극적인 반응을 한 사람은 이 아이의 친모였습니다.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차라리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아이만 살려 주십시오. 그냥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그런데, 이 일을 꾸민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대로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그 누구의 아들도 되지 못하게 하십시오.” 솔로몬은 바로 받아칩니다. “산 아이를 먼저 말한 여인에게 주고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저 여인이 바로 아이의 친모다.” 이렇게 해서 이 사건은 모두 제자리를 찾고 끝이 나게 됩니다. 


사건의 의미

이 사건은 겉으로 슬쩍 보기에는 그저 놀라운 지혜를 발휘하여 난제를 해결한 솔로몬의 무용담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런 점도 있구요. 그렇지만 이 사건 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과 도전, 그리고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첫째로 이 사건은 솔로몬이 하나님으로 부터 지혜를 얻은 후 가장 먼저 다룬 사건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물려 받았으며 가장 큰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 왕, 그렇게 영광스러운 왕이 처음 처리한 사건이 바로 두 창녀간에 벌어진 아주 추하고 지저분한 사건입니다. 통상적인 왕이었다면 이 일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에게까지 올라오게 한 신하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며 다시 처리하라고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당사자들에게 벌을 주어 알아서 하라고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을 의뢰한 사람은 다름이 아닌 한 집에 살던 두 사람의 창녀였습니다. 창녀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전혀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되며, 더럽게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고대의 왕들이 그 어떤 사람들의 소송이라도 해결해 주게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사건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들이 천한 창녀였지만, 그리고 그 사건이라는 것도 아주 더럽고 추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매우 과격하고 극단적이지만 실은 가장 신중하고 사려깊게 해결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아이도 살았고, 친모는 아들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또한 악한 여인은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말씀하셨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서 솔로몬이 처음 만난 것이 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진심을 증명하도록 주신 하나의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재판을 위한 지혜,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하셔서 그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왕이 되자 마자 재판을 하나 던져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평범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천한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말도 안되는, 가장 추하고 더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갓 왕이 되었습니다. 사건을 다루어도 빛나는 사건, 멋있는 사건을 다루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개시인데 큰 손님, 가게를 빛내줄 손님을 맞이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처음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마음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 얻은 지혜를 사용해야 할 곳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대개들 어디 갈때 마음과 거기서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솔로몬은 통치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초심을 잘 지켰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잘 지켰습니다. 병에 걸려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 병만 낫게 해 주시면 평생을 겸손하게 하나님을 헌신하겠다고 기도하고 약속하지만 막상 병이 낫고 나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을 주시면 선한 일도 많이 하고 선한 사업을 위해서 쓰겠다고 해놓고 막상 물질이 손에 들어오면 그것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 멀리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온전한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저는 처음 약속이 거짓이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분명히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바뀌고 상황이 좋아질 때를 헤아려 보지 않은 아주 얕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진심을 달아보십니다. 그게 진짜인지 알아볼 증명해 낼 일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 일이 아무리 우리에게 힘이 든다고 해도, 꺼려지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이 내가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는 일 속에 포함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행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진심을 지켰습니다. 그의 진심을 알아보시는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통치 초기의 솔로몬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처음 마음을 지키며 가장 하나님의 지혜답게 사용하는 왕이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을 살리고 악은 처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 앞으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이런 솔로몬의 지혜가 계속해서 이렇게 사람을 살리고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은 높이고 악은 낮추는 일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처음에 솔로몬의 지혜는 가장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답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그게 오래가질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잘 알고 있었듯이 지혜는 선과 악 사이의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어떤 일을 보면서 그 일의 본질을 알아내고 거기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런데 지혜가 분별력이기 때문에 지혜있는 사람들에게는 선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악도 보입니다. 두 가지가 함께 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생겨납니다. 지혜가 아얘 처음부터 악을 차단하는 능력까지 함께 지니고 있다면 문제가 안되는데, 지혜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옳은 것을 안다고 옳바르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지혜에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용기와 바른 결단력이 함께 해야 합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없거나 혹은 약해지기 시작하면 지혜는 선이 아니라 악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한 욕구를 채워주는 것들이란 모두가 악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그 목적을 위한 선한 방법인지 무엇이 악한 방법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갑니다. 그리고 무엇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고 불리한지도 단번에 결론이 납니다. 그런데, 선한 쪽은 불편하고 불리하며, 악한 쪽은 그 반대입니다. 대개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용기와 결단력이 없습니다. 깨끗하고 순결한 양심과 주님 주신 초심이 희미해 졌습니다. 그러니 악한 쪽으로, 악한 방법 쪽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웠습니다. 왕으로서 아버지가 물려준 큰 나라를 이제는 더 크고 부유하며 안정적인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지혜가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지혜로 자신의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선하지만 멀리 돌아가고 기다려야 하는 방법과 악하지만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들이 무엇인지 너무나 명확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때 그의 초심은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지혜는 그가 백성들을 잘 돌보고 선과 악을 분간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나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제 그 지혜를 나라의 부유함과 안정이라는 다른 목표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그의 길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의 지혜는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을 망치고 하나님 앞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결정적인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사람의 지혜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더라도 지혜는 항상 중립적입니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모두를 살리고 모든 것을 바로잡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모두를 죽이고 더 심각하게 망가뜨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그것을 외무부 인사사건을 통해서 보고 명확하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그 좋은 머리를 어디다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그래서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고, 그걸 보는 우리의 마음은 뭐가 되었습니까? 누구나 지혜는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지혜를 가진 사람도 있고 정말 특별한 지혜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지혜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성도로서의 초심과 양심, 그리고 순전함을 지키며 그 범위 안에서 사용되고 있습니까 ?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지혜의 정말 지혜로운 사용자가 되어 여러분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로 남아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이 사건을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히 솔로몬의 지혜가 제대로 발휘된 사건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 사건 속에는 사탄의 악한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신의 죽은 아기와 다른 사람의 산 아기를 바꿔치기하려고 했던 그 창녀는 왜곡되기는 했지만 지혜 하나는 탁월했습니다. 아무도 자기들이 거의 동시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그 짧은 시간에 용의주도하게 그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판단대로 그 누구도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릴 판이었습니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가 될까요? 분명히 악한 여인의 아이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악한 자가 더 강하고 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때 등장한 하나님의 지혜는 그 해결 불가능해 보였던 사건을 아주 쉽게 해결합니다. 엄마는 아이를 되찾고 악한 여인은 벌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답게 사용되는 곳에는 악한 지혜의 영원한 승리는 없습니다. 단지 단기간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항상 선한 지혜, 나의 지혜가 악한 지혜를 이긴다는 것을 믿느냐? 내가 사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느냐? 그래서, 항상 선한 지혜, 나의 지혜 편에 서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마지막에 웃겠습니까? 역사의 가장 마지막에 웃는 것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어리석게 보여도 여전히 하나님의 지혜의 편에 서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회원 여러분,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는 최종적인 결과가 아닙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보시는 결과가 최종적인 결과입니다. 그 때까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듯한 악한 지혜와 결국은 완전히 이기게될 하나님의 지혜 사이의 전쟁으로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제가 신문에서 외무부 인사사건을 보다가 옆에 계신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외무부 장관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정말 큰 일을 했네요.”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덕분에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얼마나 크게 병들어 있는지 알게 되었고,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바로잡아질 가능성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짧게 보면 그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이용해서 사회를 더럽힌 주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그 일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히려 그 더러운 일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하심으로써 그 동안 망가져 있었던 그런 일들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게 한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로잡는가 하는 일은 또 다시 사람들 손에 맡겨졌고 그래서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하나님은 그렇게 이 나라와 이 나라의 공직사회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란 정말 놀랍죠?” 

회원 여러분, 악한 지혜가 판을 치고, 그 악한 지혜가 승승장구하는 듯이 보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슨 소망과 무슨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그런 세상을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이 어둠 속에서 어떻게 빛을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강해보이는 지혜를 보고 실망하면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지 말고, 약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지혜를 보며 자신을 지키라고, 그 지혜의 편에 서서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눈이 바로 믿음의 눈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강하고 승리하는 듯이 보이는 세상의 악한 지혜가 아니라 힘없고 나약해 보이지만 결국 이기게 될 하나님의 지혜를 더 밝히 보고, 더 의지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의 눈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하나님의 지혜가 승리하게 될 때, 그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 하나님의 지혜에 하나님의 영광이 깃든다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맺어지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이 결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답게 사용하였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 마음을 지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답게 사용하였을 때, 사람들이 솔로몬을 통해서 본 것은 솔로몬 자신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의 지혜였고, 또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 솔로몬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솔로몬은 왕으로서  명실상부한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이면서도 자꾸 세상의 지혜로 세상을 이기려 합니다. 또 교회는 세상의 도구들을 가져와서 세상과 경쟁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게 가능할까요? 승산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불가능합니다.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결국 세상보다 작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그리고 교회가 세상에 속한 것으로 세상을 이기려 드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적어도 세상이 내세우는 것보다 크고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하늘로 부터 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어야 하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야 합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는 저마다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사용해서 무언 가를 행하며 얻고 이루며 살아갑니다. 이제 그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의 지혜답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지혜는 초심을 가지고 순결하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 지혜가 거듭나지 못한 세상의 지혜와 같은 모양이 되어, 같은 목적에 사용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답게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또 그 분의 편에 서있는 우리를 두려워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기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가 되게 하셔서 나를 세우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도구가 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가 승리함을 믿고 하나님의 지혜 편에 서서 살아가는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