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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0년 매일성경 설교 34. 솔로몬의 나이 많아 늙을 때에

[사용법]


방문하시는 중에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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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 11장 1-13절



서론 :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나이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에야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을 동경하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또 어른 흉내도 내면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막상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젊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되고, 세상에 가장 부러운 것이 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젊음을 살 수 있다면 아마 무엇이라도 내 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나이 먹는 것이 싫어도, 항상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 것은 정말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 것, 그러니까 늙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면에서 약해지기 때문이죠. 생명력도 약해지고, 용기도 많아져 겁도 많아지고, 힘도 빠지고, 의지도 약해지고... 그래서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나이가 들고 늙으면 모든 면에서 약해져야만 하는가? 그래서 그렇게 나이 먹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두려워 해야 하는가? 말입니다. 그게 과연 성도인 우리들에게도 당연한 것인가 말입니다. 


솔로몬의 악행

9장 후반부부터 시작된 솔로몬 왕국에 대한 기록들은 우리에게 솔로몬 왕국이 얼마나 엄청난 부와 복을 누렸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화려한 만큼 솔로몬의 속사람은 심각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으며, 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도 함께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그의 영적인 타락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이 그에 집중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의 여성편력입니다. 성경은 그의 아내들이 후비가 700명, 빈장이 300명 이렇게 1000명이나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아도 정상적인 남녀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일부다처가 허용되어 있었던 시대이고, 또 그가 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이것은 그가 여성에 대한 일종의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마음 속에는 무언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어찌보면 이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고 얻어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23절을 보면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왕끼리 비교한 것이니 한 마디로 재산이나 지혜에 있어서 그가 당대 최고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지식과 지혜도 최고입니다. 재산도 최고입니다. 그런데, 허전합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사용해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재산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그의 마음과 영혼을 가득 채워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성에 탐닉하기 시작합니다. 이 말은 그가 성에 탐닉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름다운 여자를 자기 곁에 많이 두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여자들이 1000명이 되어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애초에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을 참으로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복으로 주시는 이유는 그것으로 마음과 영혼을 채우고, 거기서 만족을 찾으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런 것을 허락하시는 것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부요하심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이 땅의 것이 그렇게 풍성하고 좋다면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복, 그 영원한 영광은 어떨 것인지 한 번 상상해 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복들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손가락인 셈이죠. 그런데, 사람은 무언가를 많이 가지게 되고, 거기서 작고 일시적인 만족을 얻기 시작하면 그것이 자신을 진짜 그리고 영원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도 자신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쨋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을 만족시키신다고 하더라도 그 분이 그렇게 해 주실 때까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더 쉽게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 그리고 그나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손을 뻗기 시작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더 많이 얻고 또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도 진짜 만족, 꽉 찬 만족은 없습니다. 특히 영적인 만족은 전혀 없습니다. 


인간의 허전함과 허무함이란 본질적으로 본다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특히 성도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허무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로 부터 만족을 얻으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허무함과 허전함이 계속되어도 그것이 왜 그런지 진짜로 깨닫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달려왔던 길을 계속해서 달려갑니다. 새롭게 얻어지는 것들이 주는 잠시 잠깐의 감각적인 만족에 홀려서 다시 더 크고 더 자극적인 만족을 찾아서 달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의 소유와 능력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 꽉 찬 영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직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것들로는 우리 자신을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만족해야 만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는 부족하고, 내 생각에는 형편없어 보여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 가장 적절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로 판단하셔서 지금 현재의 나를 위해서 가장 적절하게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그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안다고 하여도 주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며, 또 가장 적절하게 나누어 주실 수 있는 지혜가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결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장 1,2절을 보면 솔로몬이 취했던 여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지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그리고 성경은 그 숫자가 1000명이나 되었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자기를 위하여 여인을 많이 두지 말라던 하나님의 명령만 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어긴 더 심각한 하나님의 명령은 가나안 족속들과는 절대로 결혼관계를 맺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단지 욕심을 부리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줍니다. 단순히 많은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그 범위가 하나님께서 완전히 금하신 것 너머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심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금지하신 영역으로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족한 줄 모른다면, 우리는 이미 이런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그런 불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 이상을 가지려는 욕망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고, 그 많은 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영역까지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기회가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가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착각

천하의 솔로몬은 자신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많은 아내를 두더라도, 그리고 그 아내들이 비록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족속 출신일지라도 자신은 결코 그들의 신을 섬기는 일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이유 때문에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셨다면 거기까지만 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아내들을 끝까지 잘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아얘 작정하고 하나님을 떠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저 여자가 좋아서, 그 여자들로부터 만족을 얻고 싶었고, 그냥 거기서 그칠 수 있고, 그 정도는 자기 능력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지금은 온 천하를 호령하고 있지만 언제든 자기 자신조차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이 정도 쯤이야, 그런 일들은 뭐... 하면서, 나는 절대로... 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나 자신을 믿고 자신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믿는 순간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인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은 뭐든 괜챦고, 혹시 조금 잘못되었어도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잘못, 자신의 그릇된 선택들에 대해서 바른 평가를 내릴 수 없게 됩니다. 


혹시 지금 당장은 나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컨트롤할 의지도 충분하고 동기와 도덕성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좋다고 해서 반드시 나중에도 지금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은 의지가 강해도 나중에는 약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동기가 선해도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덕성도 약해지고, 신앙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럴 수 있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3절과 4절은 그의 노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솔로몬의 왕비들은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함께 가자고 유혹했고 그리로 잡아 끌었습니다. 문제는 솔로몬이 그 왕비들의 유혹과 요구를 뿌리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나이 많아 늙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젊었을 때는 왕비들이 쩔쩔멨을 것입니다. 그를 꼬득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천하의 솔로몬도 나이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나이가 많아지고 늙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빠지고 의지도 약해져 갔습니다. 한 때는 왕비들을 자기 마음대로 했던 솔로몬이 이제는 그 왕비들이 하자는 대로 하기 시작합니다. 아내들이 자신을 괄시할까봐, 싫어할까봐 먼저 나서서 그들의 신당을 지어주기 시작했고, 아내들이 섬기는 잡신들을 함께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꿈에 두번씩이나 나타나 솔로몬에게 미리 경고하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지만 솔로몬은 듣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두려워, 그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여인들에게 자신의 영혼의 통제권마저 팔아넘긴 솔로몬이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히 무시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망가져 버렸던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금지된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모든 인간이 가게 되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되는 것을 두려워 하고, 그것에는 끌려다니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성도라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누구도 이러한 가능성에서 열외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솔로몬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왕조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징계를 내리십니다. 솔로몬의 아들이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을 반으로 쪼개셨습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우리 장년부 회원들은 모두 50을 넘기셨고 아마 대다수가 50대 중반을 넘기셨을 것입니다. 아마 이제 중년을 넘어서서 서서히 노년으로 향하고 있는 나이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나이 많아 늙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사람일이야 알 수 없지만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여러분은 아직도 많게는 30년에서 적게는 20년을 더 사실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인생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정도를 남겨놓고 계신 분들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시점을 30대쯤부터라고 생각해 본다면 가장 중요한 인생의 5분의 3이나 5분의 2를 남겨놓고 계신 분들입니다. 아무리 늙어간다고 하더라도 인생전체를 은퇴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퇴의 순간이야 말로 실은 영원한 인생이 시작되는 첫 순간이 될 것입니다. 


한 쪽으로 보면 이제 분명히 늙어가는 시간만 남은 지도 모르지만, 또 한 쪽으로 보면 오히려 진짜 노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은 아주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만큼 인생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 앞에서 본다면 지금 여러분의 시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기록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 특히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여러분들을 위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하나는 아직 그렇게 많이 늙지 않은 우리가 우리의 노년을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노년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 나이 사십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이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고 또 목회를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대하다 보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40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나이입니다. 한학에서도 절대로 유혹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혹이라고 할 만큼 어느 정도 완숙하고 견고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보니 사람의 얼굴이란 결코 숨길 수 없는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사람이 바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나타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인격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기 얼굴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40이 된 사람의 얼굴은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 40의 얼굴은 그가 40년 동안, 적어도 10대 후반부터 그가 자신의 인격과 사고방식, 그리고 삶의 태도들을 통해서 만들어 온 얼굴입니다. 그것이 40대의 얼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실은 40대가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40이 되기 훨씬 전에 새겨들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어렸을 때부터 젊었을 때부터 자기 인격과 마음,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셈인 것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솔로몬의 노년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나이 많아 그런 길로 갔던 것은 그가 젊었을 때, 그리고 너무 늦게까지 자기 자신을 믿고 방종하게 선택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 뿌려놓았던 가시나무 씨앗들이 거대한 숲이 되어서 이제 늙어 버리고 힘이 없어져버린 솔로몬을 덮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젊었을 때는 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그런 점이 있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어떻습니까? 여러가지로 주변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가지 점에서 스스로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힘이 있고 자신이 있을 때, 그렇게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통제권이 약해졌을 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을 믿고 자기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 자기 옆에 두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주워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옆에 쌓아놓았습니다. 그것이 영원히 자기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오히려 자신에게 덤벼들어 자신을 휘두르려고 하는 그런 것들의 공격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자기 인생의 최고점이 아니라 최저점을 생각하며 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여러모로 약해졌을 때 오히려 자신을 좌지우지하고 먹어버릴 수 있는 것, 가장 중요할 때 자신이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일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을 쌓아놓는 일을 될 수 있는대로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내 힘이 충분하다고 여겨질 그 때, 그것들을 가장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며,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거듭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늙는 것을 막지는 못해도 우리의 영혼이 늙어가고 힘이 빠지는 일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그 순간을 하나님 앞의 최고의 순간으로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시간이 다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언제 찾아올지 모를 그 순간과 가까이 있는 시점일수록 그만큼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시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0년전 보다는 지금이 여러분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일 수 밖에 없고, 또 지금 이 순간보다는 10년 후가 훨씬 더, 아니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시점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육체는 나이가 들면 쉬어야 합니다. 하는 일도 줄이고 활동도 줄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가 오고 병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나이가 들 수록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고 또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자신에게 덧붙여진 것들 보다는 자신의 중심 그러니까 자기 영혼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더 소중하고 무겁게 여기는 연습에 열심을 내야 하며,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더 강건하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 되도록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 중 하나는 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저는 왜 사람들이 나이 먹는 것을 늙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성도들조차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이 나이 많아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이 필연적이었을까요? 그게 나이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 많다고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되었던 것은 그가 말 그대로 그저 나이만 먹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든다고 체념하고 자기가 가던 길만 고집하면서 그냥 저냥 시간만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 엄청난 지혜,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조차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론 : 노년을 성장과 영광의 계절이 되게하라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늙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슬퍼하거나 서글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늙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도에게 나이가 드는 것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을 가장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노년이기 때문입니다. 노년만큼 하늘나라에 집중하고,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며, 또 본질적인 것들에 정직하게 집중하기 좋은 시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노년이 누구에게나 영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나의 노년이 영광스러운 노년이 되게 하려면 적어도 그 노년을 준비하는 지금을, 그리고 그 노년이 찾아왔을 때 지내는 시간들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확실히 알아야 하고 또 거기에 삶을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 방법은 우리의 반면선생인 솔로몬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나중에 힘이 없어졌을 때 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것들을 될 수 있는대로 여러분의 삶에서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그런 것들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제어하시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십시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있는 것을 없는 듯이 없는 것을 있는 듯이” 여기며 살아가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의지했던 것들을 쌓아놓으려고만 하지 마시고 이제부터는 하늘나라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조금씩이라도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과 나누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눠주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런 것들에 대한 의지와 집착 또한 줄어들 것입니다. 또한 미리 미리 자신을 믿지 않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이 들어간다고 절대로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오히여 내 영혼과 영원한 영광을 위한 최적의 기회로 여기시고 영적인 일들에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생물은 성장이 멈추는 순간 노화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제 자리는 없습니다. 영혼이 성장을 멈추면 우리 영혼은 그 때부터 늙어가기 시작합니다. 영혼도 함께 늙어가는 노년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영혼은 오히려 더 성숙해 가고 성장해가는 영광스러운 노년이 되게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과 힘씀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은혜가 그 일을 한다고 해도 여러분이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다가올 노년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 노년, 영원한 삶을 위한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에 영적인 걸림돌이 될지도 모를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삶에서 치우시고, 또 그 노년을 영적으로는 가장 왕성하게 자라고 성숙해 가는 영광스러운 계절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란다면, 그러기를 소망하고 그 길로 가기 시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노년을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남은 인생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최고로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