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1년 매일성경 설교 4. 마음에서 나온 것이

* 댓글 남겨주세요. 



본문 : 마가복음 7장 14-23장



서론 : 약을 평생 먹여야 한다면

대구 의료원에 가면 아주 유명한 의사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황성수 박사입니다. 이 분은 평생 안고 가면서 잘 관리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고혈압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내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이 분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길게는 수십년 동안 다른 방법 없이 약만 먹으며 버텨온 분들이 그 분의 치료로 그 질병에서 해방되어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분의 치료법은 간단합니다. 그저 현미밥을 먹고 채식만 하는 것입니다. 일단 환자가 찾아오면 입원을 시키는데, 먹던 약을 다 끊게 하고 식단을 완전히 바꿔줍니다. 육식은 멸치국물도 먹지 못하게 합니다. 황성수 박사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면 정말 신기하게 약을 먹지 않고도 혈압이 정상치가 됩니다. 퇴원 후에도 그 원칙을 잘 지키면 재발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성수 박사가 이런 치료법을 생각해 낸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바로 ‘고혈압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였다고 합니다. 황성수 박사는 말했습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면, 그 질병은 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치료방법을 무엇일까를 생각했고, 약을 빼면 사람에게로 들어가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음식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고혈압은 그것을 일으키는 것도 음식이고, 다시 정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음식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혈액을 맑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음식들로 바꾸기 시작했고, 그랬더니 혈압이 낮아지고 정상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질병이 평생 약을 먹어야만 하는 질병이라면 그 질병은 결코 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른 일반적인 일들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상태로 돌아가거나 혹은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특정한 행동을 반복해서 계속해야만 한다면, 실은 그 특정한 행동은 결코 그 상태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본문의 배경

먼저 오늘 본문의 앞부분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무척이나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스스로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그릇을 씻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 자신이 먹는 음식이 항상 깨끗할 수 있어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결할 것을 명령하면서, 어떤 경우에 그들이 부정해지는지에  대해서 조목 조목 설명해 주었습니다. 죽은 시체, 부정한 사람이나 혹은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그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 되었고, 그 부정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간을 격리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식사 전에는 손을 씻고 그릇을 씻곤 했는데, 아얘 이것이 어겨서는 안되는 하나의 절대적인 법칙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정통임을 자랑하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왜 당신의 제자들은 손도 씻지 않고 식사를 하여 자신을 부정하게 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대대로 장로들이 인정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고 그들을 비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위선자라고 나무라시며 너희는 지금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내 제자들을 나무라고 있지만, 실제로는 너희들이야 말로 장로들의 전통, 그러니까 율법에 인위적으로 덧붙여진 부수적인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입으로만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들에게 가르치심

그렇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논쟁이 끝난 후,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이것이 분명히 정결함에 대한 말씀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심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수수께끼같은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을 알 수 없자, 제자들은 예수님과 따로 있을 때, 아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나무라셨습니다.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제자들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들어야 한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에 대해서 안타깝고 답답하셔서 제자들을 나무라셨던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깨달을 때가 되었는데도, 깨달을만한 위치에 있는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결코 잘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그 이야기를 알아듣고 깨달을 것을 기대하셨고, 또 그런 기대가 무너졌을 때 그들을 나무라신 이유는 그만큼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만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진리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전혀 자라지 않고 그저 우루루 우루루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원 여러분, 신앙의 성장은 모든 면에서 전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앙은 뜨겁고 견고해지기도 해야하지만, 넓어지고 깊어지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깊고 넓어지는 것은 바로 내가 얼마나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느냐,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진리에 나의 삶을 맞추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능력이 모자라면 그만큼 신앙의 내용도 빈약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이해력도 성장해야 합니다. 같은 말씀을 보더라도 10년전과 5년전은 달라야 하며, 5년전 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보이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그게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데는 있어서도 성장해 가고 있는지 체크해 보아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의 말씀을 깊고 풍성하게 깨닫고 있는지, 그 깨달음의 기쁨이 커져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깨달음이 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꾸짖으셨다는 것은 그것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다른 곳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긴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진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진리가 줄 수 있는 자유와 풍성함에서 멀어진다고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사람들이 되지 말고 더 받아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셨지만, 그래도 제자들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같은 말씀의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사람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사람을 더럽힐 수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란 다름 아닌 음식을 뜻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음식은 결코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음식이,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건 부정해진 음식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손을 씻고 그릇을 씻는 ‘장로들의 유전’을 목숨처럼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부정해진 음식은 사람을 부정하게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성결함이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정결함이 전부라면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음식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같은 일만으로도 정결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래 요구하신 정결함은 그런 형식적이고 외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는가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사람들이 문제 삼았던 것은 ‘배’ 그러니까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배’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겉사람의 정결에 대해 집착할 때, 주님은 속사람이 더러워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은 마음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진짜 더러움과 정결함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사람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 이번에도 역시 주님은 몸이 아닌 마음을 문제삼고 계십니다. 주님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들은 “악한 생각, 음란함,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함, 시기하는 것, 중상모략, 교만,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에서 나온다고 지적하신 것들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마음의 상태에 대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것들을 “이 모든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과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는 눈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드러나는 현상에 집착합니다. 도둑질이 문제가 되면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살인을 했다면 다음부터 하지 않으면 됩니다. 중상모략이라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됩니다. 그렇게 행동만 그만두면 됩니다. 그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행동은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악해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고쳐야 할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그 사람의 영혼이라고 보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악한 사람의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들이야 말로 진짜로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은 물감통에서 나온 검은 물감이 도화지를 검게 만들듯이 나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이미 악해져 버린 사람의 마음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악한 것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정결의 문제가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손을 씻고 그릇을 씻는 형식과 외형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마음과 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정결예법에 대하여

율법은 어떤 경우에 정결함이 깨지고 부정해지는지를 규정해 주었습니다. 주로 이러 저러한 것을 피함으로써 부정하게 되는 것을 피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많은 규정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지킴으로써 정결함을 얻고 또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해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결에 관한 율법의 규정이 실은 참된 정결함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만약 어떤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평생 어떤 약을 먹어야만 한다면 그 질병은 약으로 치료될 수 없는 질병입니다. 그저 임시변통으로 큰 탈이 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확실한 보장없이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정결을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피해다니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손을 씻고 그릇을 씻어야 한다면 실은 온전한 정결이란 그런 행동들을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도 유지할수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 런 정결함이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온전한 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며,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위로 부터 덧입혀지는 의를 사모하게 만드는 것이 율법인데, 정결을 명하는 율법도 꼭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과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규정들을 지킴으로써 그 의를 만들어내고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손만 씻고 그릇만 씻으면, 그리고 부정한 음식만 먹지 않으면 원하는 의를 얻고 또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론 : 마음의 정결이 문제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과 세상을 부정하게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죄라고 부르는 악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악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나옵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악한 것들이 나오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속속들이 악해져 있어서 그 안에서 악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참으로 정결해지고 참으로 의로워지려면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영혼을 정결케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존재 자체가 속속들이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마음을 정결케 할 수 없습니다. 혹시 표범의 얼룩무늬를 벗겨낼 수 있을 지언정 인간의 존재에 뿌리 밖고 있는 죄라는 더러움은 스스로의 힘으로 깨끗하게 할 수 없고,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온전한 정결함과 의가 꼭 필요하지만 결코 자기 힘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방법이 없으니 우리 안에서 방법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그 의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 또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가 성도들을 가르칠 때, 저를 참 안타깝게 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자꾸 신앙의 문제를 실천의 문제로 결론지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기껏 복음을 가르치고, 은혜에 대해서 가르치면 꼭 마지막에 가서는 “그런데, 실천을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로 인한 변화를 이야기해도 자꾸 그것을 실천하려고 듭니다. 물론 실천도 필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신 여러가지 악한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하며, 악한 행동들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속에서 나온 것들이 나와 세상을 더럽히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항상 다시 더럽히지고 또 더럽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정결하려는 노력은 우리 힘으로 정결을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실천과 행동의 문제이기 이전에 속사람의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천은 우리 속사람이 새롭게 된 이후에나 중요한 문제지 그 이전에는 영적으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인간의 모든 실천과 노력들은 고혈압 약과 같습니다. 잠시 더 악해지는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붙잡아 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마음과 존재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서게하고, 그 분 앞에서 영원히 살게해 주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 주는 치료약은 따로 있습니다. 그 유일한 치료약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돌아가야 합니다.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해서 거듭 거듭 그 보혈에 우리의 손과 발을 씻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보혈의 은혜에 더 의지하면 할수록 우리는 진정으로 정결하게 변해 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더 의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나를 의롭게 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고, 그 피로 충분함을 믿는 믿음이 거룩하게 하는 능력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하려는 노력도 정결하려는 애씀도 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만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분이 우리가 처리하지 못하는 더럽고 무거운 것들을 치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원히 받아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며 날마다 더 정결하게 변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약속 :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행위가 아닌 은혜와 보혈에만 의지할 때,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정결케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