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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1년 매일성경 설교 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사용법]


방문하시는 중에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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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1-01-16

본문 : 마가복음 5장 21-34장



서론 :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다

서양의 속담 중에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모양이 같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것은 아니며, 또 모두 진짜가 아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래서 우리에게는 각별한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가치있고 소중한 것일수록 진짜와 유사한 것이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가치있는 유일한 것은 진짜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가짜들 중에서 진짜를 가려낼 줄 아는 분별력이 없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크게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는 믿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믿음이 구원, 그러니까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고, 그만큼 믿음은 우리들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믿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남의 속에 있는 믿음이야 내가 참견할 바가 아니고 또 알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내 속에 있는 믿음이 진짜 금인지 아니면 그저 금처럼 반짝이기만 하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믿음이 진짜 금이 되도록, 계속 금으로 남아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이 믿음, 그러니까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인지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이야기의 대강

오늘 본문을 보면, 아주 절실한 필요를 가졌지만, 이 땅에서는 더 이상 그 필요를 채울 방법이 없었던 두 사람이 나옵니다. 어린 딸이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고 하는 회당장 야이로와 12년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에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야이로지만, 예수님으로부터 먼저 자신의 절실한 필요를 채움받았던 사람, 그러니까 자기가 원했던 구원을 얻은 사람은 나중에 끼어든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이 먼저 질병을 치료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복된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이로는  그러는 동안 옆에서 그 여인이 그 질병을 치료받게 된 경위를 모두 들었고, 또 목격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하는 것, 그 여인의 불치병을 낫게 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일이 마무리되고 이제는 우리 딸 차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이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를 바라보시면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 본 본문의 사건

먼저 여인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여인의 치료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이 여인을 구원하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얻기를 원하는 우리는 그 여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구원을 가져다 준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여인의 말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께서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고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데, 그 여인의 이런 확신, 그리고 그 확신에서 나온 이 말은 평범하고 쉬운 상황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이 여인의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인은 원래는 꽤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갑자가 악성 하혈증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이 병은 그 질병이 걸린 사람을 신앙적으로 굉장히 불결한 사람으로 만드는 그런 병이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신앙에 대한 자책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을 가까이 하던 사람들도 하나씩 하나씩 그 여인을 멀리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결한 여인은 가까이 하거나 접촉하면 자신도 불결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질병을 치료해 보려고 백방으로 힘썼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는 모두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그녀의 그런 곤경을 이용해서 돈을 빼앗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나마 있던 재산도 다 날리고, 병이 깊어질수록 사회에서는 점점 더 격리되어져 갔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질병은 ‘불가능’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미 자기 힘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자그마치 12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여인의 믿음, 그리고 그 여인의 말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정말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의 소식을 듣자 그 여인에게는 이상하게도 즉각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치료의 방법도 없지만, 내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댈 수 있다면 나는 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믿음대로 움직였습니다. 그 쇄약해진 몸을 이끌고,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공격받을 것을 각오하고 빽빽한 군중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을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혈이 멈추고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여인은 그 사실을 즉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자초지종을 듣고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여인을 모든 면에서 제 자리로 돌려보내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에게 신앙적인 부족함이 있어서 그런 질병을 앓고 있다고 자책했던 그 여인에게 그 누구보다도 크고 온전한 믿음이 있음을 인정해 주셨고, 바로 그 믿음이 그를 치료했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이 그가 원하는 구원을 얻게 하기에 충분한 믿음이라고 그녀에게 평강과 자유를 주기에 충분한 믿음이라고 모두가 보고 듣는 앞에서 인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야이로의 입장에서 본 본문의 사건

이제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인 야이로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딸의 문제로 정말 막다른 골목에 부딛힌 야이로, 더 이상은 딸을 살릴 아무런 길도 없다고 생각했던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그 벽을 뚫고 다시 열린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아마 자신의 간청을 받아들여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는 야이로는 그 때 하늘이 열린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마음같지 않게 예수님은 여유롭기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밀어 가시는 길이 방해를 받는데도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여인 때문에 그 안타까운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야이로의 마음은 다시 두려움과 근심으로, 예수님에 대한 원망과 야속함으로 무겁워지고 어두워져 갔을 것입니다. 


겨우 여인의 일이 마무리되고 이제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을 듣습니다. 집에서 야이로를 찾아온 사람이 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야이로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인의 치료와 그 모든 일이 일어나고 또 끝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시간은 분명히 야이로에게 그 어떤 순간들보다도 길고 애타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치유를 직접 목격하고 그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 야이로는 직접 경험하여 진짜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이고, 또 얼마나 엄청난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미 딸이 죽은 이후였지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말 그대로 두려움 없이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는 두려움을 몰아냈고 자신의 딸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가장 큰 구원, 가장 불가능한 구원을 얻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인이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듯이 야이로도, 그리고 야이로의 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구원한다. 그리고 평안은 믿음의 열매이다. 

본문이 밝히 드러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리는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영혼의 구원에 있어서나 혹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필요로 하는 구원에 있어서나 변함없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신앙생활에 있어서 처음이요 나중이며, 모든 내용이며, 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이야기해 주는 것은 ‘그렇다면 그런 믿음은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대답은 성경전체의 대답과 동일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이 아니듯이 모든 믿음이 다 구원얻게할 만큼 가치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그런 종류의 믿음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여인과 야이로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인은 땅 위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 질병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료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자기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보다도 온전히 충분한 분이시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했으며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그 믿음이 충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안타깝고 피를 말리는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배워알게 되었고, 결국 딸의 죽음이라는 완전한 절망 속에서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만한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서 본 믿음, 그리고 야이로에게 주시고 싶어하셨고, 또 요구하셨던 믿음은 바로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완전히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사람 속에서 바로 이 믿음을 보셨고, 그 믿음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믿음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꼭같은 믿음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볼까요? 아브라함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무엇때문이었습니까?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성경은 그의 믿음을 “하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는 믿음”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 믿음으로 그는 의롭다하심을 받았고,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100세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삭을 자기 손으로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부활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의롭다하심을 얻게 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끝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해 볼 수 없는 끝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완전한 끝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 하나님을 완전히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진실로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믿음은 하나님을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가장 큰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이 복음이 항상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아브라함처럼 실제 생활 속에서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게 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믿지 못할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근심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믿음과 구원, 그리고 평안을 연결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고, 야이로에게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두 말씀 속에서 우리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안의 이유가 어디있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또 그것을 이겨내고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들 중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얻으려고 노력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그렇지만 또한 우리들 중에서 그러한 노력과 시도에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그런 평강을 얻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에 그렇게 자주 실패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평강을 생각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강은 결코 혼자, 그리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강은 언제나 믿음의 열매입니다. 물론 우리는 내가 믿고 기댈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때 믿음 없이도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이 평강을 흔드는 이유가 됩니다. 그게 없어질까봐, 그게 떠나갈까봐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그것을 붙들고 지키려고 해도 그것들은 언제든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곁을 떠나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불안해지고 두려워질 수 밖에 없으며, 세상으로부터 완전한 평안은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로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입니다. 그 평안은 결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흔들리고 불안한 것들에 의존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의 이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평안이 있는 사람들은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평강에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빨리 벗어나야 할 잘못된 사고방식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과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이름이 같다고 해서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실은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짜 복은 모두 놓치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도 그렇게 오해되는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오해가 우리가 참된 평강을 누리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평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신앙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평강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며, 영원한 평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그 평강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만큼 능력있고 풍성한 평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평강을 여기 이 땅 위, 현실적인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일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지금 나에게 그런 평강이 허락되어 있다고 믿으십니까? 혹시 신앙 안에서 얻는 평강이 있어도 여전히 근심하며 불안해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을 몰아내기에 충분할만큼 강력합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이 환하게 빛날 정도로 강력한 것, 그리고 사자에 물려 찟겨 죽으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띨 정도로 강력한 것이 바로 그 평강입니다. 


우리 속에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주님이 말씀하신 평강이 없습니다. 우리 속에서 근심을 몰아낼 수 있는 우리의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는 그런 평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문제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지만, 그 믿음은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아니거나 혹은 그 믿음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바로 주님을 절대적인 분으로 믿고,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주님 말씀하신 능력있는 평강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믿음에는 결코 끝이란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죽음조차도 끝이 아닙니다. 그래서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딸이 죽었어도 평안합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평안이 어디서 옵니까?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신다는 믿음에서 옵니다. 주님을 그렇게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아니고는 이런 평안은 생겨날 수 없습니다. 저도 믿음 안에서 이런 평안을 얻고 누리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까지 되어서도 왜 계속 불안해 하며, 두려워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안 것도 바로 그 때였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그 믿음의 맛만 본 것 같습니다. 그 믿음에 있어서는 이제 막 출발한 초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그 믿음만이 줄 수 있는 평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맛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믿음을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더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만큼 제 마음에는 평강이 커져가고 견고해져 가고 있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습니다. 간혹 불안해직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합니다. 또 훨씬 쉽게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믿음을 세우면 불안과 두려움은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을 통해 믿음과 평강을 더욱 견고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믿음이 온전하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멀지만, 저는 그 믿음이 커져가고 견고해져 갈수록 제가 누릴 수 있는 평강도 주님이 말씀하신 그 평강에 가까이 가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절대적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이 믿음의 싸움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굉장히 신나고 흥분되는, 점점 더 삶이 견고해져 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결론 : 하나님을 절대적을 신뢰하는 믿음에 이르자

회원 여러분,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기이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무조건 그렇게 되어야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분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이 과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고, 또 우리에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견고한 평강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그런 믿음을 가지고는 구원도, 평강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의 의미는 쉽게 표현하면 “언제나 주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진실로 믿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 진리를 내 삶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생각할 때, 이 여인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야이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많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을 그들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 되게 하십시오. 막연히 좋은 믿음 갖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마시고, 여러분의 믿음이 그들의 믿음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매일 이 믿음을 위한 싸움을 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순간순간 우리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시며 격려해 주실 것이고, 야이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더 견고한 믿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믿음을 가지시고 또 이 믿음에서 성장해 가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경험하며 또 흔들리지 않는 평강 속에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약속 :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하늘 평강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