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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1.12.22. 새벽예배



날짜 : 2011-12-22

본문 : 시편 119편 17-32절


시편 119편, 정말 그 분량만으로도 우리를 압도하는 이 시편은 우리에게 예전에 썼던 철지난 연애편지를 읽거나 다른 사람의 연애편지를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시인은 무언가 굉장히 진지하게 그리고 흥분해서 무지 무지 길게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읽는 우리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편 119편은 176절이나 되는데, 그 모든 내용이 전부가 다 하나님의 말씀, 정확하게는 율법에 대한 것입니다. 시편의 저자가 율법을 바라보면서, 또 그 율법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면서 가지게된 모든 생각과 느낌, 그리고 믿음과 감정들을 시로 적은 것이 시편 119편입니다. 어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할 말이 이렇게 많고 표현할 감정이 많으며, 또 고백하고 싶은 사랑과 드리고 싶은 헌신이 이렇게 다양하고 깊은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리들에게 굉장한 거리를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원래 우리들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깊이가 너무 깊다 싶고, 높이가 너무 높다 싶으면 그것과 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들과 시편 119편을 지은 시인 사이의 이러한 간격은 실은 딱 한 가지 차이점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인과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접근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믿음의 대상,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온전하심, 그리고 모든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담고 있는 그릇,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이신지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가장 완전한 거울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인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가장 깊게 매료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자신을 향한 사랑을 가장 풍성하게 담고 있는 율법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딱딱한 금지투성이의 법전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시인 자신에게는 그 어떤 연애편지보다도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밀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듯 하나님의 말씀, 그러니까 율법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그가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듯 율법을 더욱 알기 위해 힘쓰는 것이며, 하나님께 헌신하듯 그 말씀에 대한 기쁘고 깊은 헌신을 남들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길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을 묵상하고 또 함께 은혜를 나누는 동안 우리 모두의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향한 감정과 헌신이 그렇게 기쁘고 깊어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19편은 알파벳 시편입니다.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와 갯수에 맞춰서 22개의 연으로 쓰여진 시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부분은 그 중에서 세번째 연과 네번째 연인데 아마도 시인이 가장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생각하면서 드린 기도인 듯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개의 연 모두 굉장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쓰여졌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다릅니다. 시편 119편의 세번째 연은 시인이 사람들의 따돌림과 무시, 그리고 핍박 속에 있을 때 쓰여진 시이고, 네번째 연은 아마도 굉장히 강한 범죄의 유혹을 느낄 때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세번째 연은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느라고 어려움과 핍박과 멸시를 당할 때 드린 기도이고, 네번째 연은 그렇게 살아가는 일에 지치고 약해져서 죄의 유혹에 짓눌리고 그 죄와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극도로 커졌을 때 드린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과 너무 많이 닮아있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또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이익이나 원만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불이익과 관계에 있어서의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질 때가 더 많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시인의 경험은 바로 우리의 경험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오늘 시편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상황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시인이 살아가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 어느 시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과 상관없이 정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현실이 될 수 밖에 없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사실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지는 기대와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만사형통하게 하시고 안되던 일도 되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당황하고 실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기대대로 될 때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서 잘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안에는 우리가 기대하던 대로 되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 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하고 또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핍박은 우리에게 고통과 불이익을 안겨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엄청나게 강한 유혹과 시험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 갑니다. 고통과 불이익 속에서도 애쓰며 지키며 싸웁니다. 그러다가 문득 주위를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 혼자만 이 길을 가는 것 같고, 그래서 나 혼자만 힘들어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만 손해보고 나만 아파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유혹과 시험은 전에 없이 아주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 유혹과 시험과 싸우려들면 싸우려들수록 그 무게는 더 무거워져서 영혼을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영혼이 땅바닥에 짓이겨져 붙은 것 같고 그 유혹을 받아들이고 타협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되는 대로 살겠다, 죄와 불법과 타협하며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고 살아가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성도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오늘 시인이 네번째 연에서 표현하고 있는 그런 위기를 잘 넘기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싸우고 또 싸우고 견디고 또 견디다가 어느순간 쓰러져서 포기하고 무너져 버리면 그 때 한번에 정말 말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후에는 오히려 정직하게 살려고 하고, 순결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이전에 살아가던 삶의 방식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이것보다 위험한 상태는 없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파산상태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처음 이 부분을 시로 만들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거룩한 삶이 가져다 준 불이익과 핍박, 그리고 마치 영혼이 죽을 것 같은 죄의 유혹이라는 무거운 짓눌림 속에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119편의 일부분으로 기록할 때는 그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그 유혹을 극복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속에는 시인이 당한 어려움과 유혹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겨냈던 방법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찾아내야할 말씀 속에 담긴 보배입니다. 꼭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편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시가 기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응답되었을까요? 응답되지 않았을까요?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위의 두 가지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똑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뜻 때문에 언제든지 동일한 어려움과 유혹 속에 던져질 수 있는 우리들도 그런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 동일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오늘 시편의 시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우리 속에 생겨나는 시험과 갈등을 그대로 말씀드려야 합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힘들어 죽겠다고, 막 유혹에 넘어가기 직전이라고 말씀들여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 고통으로 연약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 시험으로 짓눌려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러면서 안 그런 척 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도 없고 오히려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가져가야 하며 실은 그것이 가장 신앙적이고 안전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두 번째 기도는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또 갈등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그러니까 진리 자체와 관련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시인은 그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갈등과 압박 속에서도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주의 계명을 나에게 숨기지 마옵소서.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이니다.”,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치말게 하소서.” 

시인은 지금 말씀을 지키고 그 대로 살아가느라고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많이 지쳐서 죄의 유혹에 짓눌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붙들고 있고 또 구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의 참된 가치와 사랑스러움과 영광스러움을 알고 더 온전히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마치 보물지도를 가지고 보물을 찾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속에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며 그 하나님께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 어려움과 시험을 이겨내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더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어려움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약속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약속 중에서 내가 충족시켜야 할 부분은 다 했으니 이제 하나님 차례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기도가 그토록 극심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드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힘있고 당당한 것입니다. 시인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와 함께 시편 119편 속에서 저와 여러분을 위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따르다가 만나는 고통과 고난, 그리고 죄의 유혹을 극복하는 방법은 거기에 굴복하고 타협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더 온전히 그 진리로 돌아가고 그 진리에 의지하며 기도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분과의 깊은 더 사랑에 빠진다면 우리는 마치 전장의 고통과 두려움을 가족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넉넉히 이기는 병사처럼 그 분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삶의 고통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죄의 유혹과 갈등 속에서 기도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영적인 짓눌림 속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시인이 누렸던 그 놀라운 복, 기이한 복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진리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일에는 언제나 어려움과 핍박, 그리고 유혹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고 또 이겨내는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하나님께 아뢰야 하며, 하나님의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그 아름답고 참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를 그러한 고통과 유혹 속에서 건져 달라고, 내 영혼을 다시 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내와 승리의 능력은 바로 그러한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 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입니다. 

언제나 주의 말씀을 여러분의 즐거움이요 또 완전한 상담자로 삼아서 순종의 어려움과 죄의 유혹을 너끈히 이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