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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11.12.28. 매일성경 묵상

* 매일성경 묵상이라는 폴더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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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시편 119편 113절부터 128절까지입니다. 바쁜 일들과 또 갑자기 서울을 다녀오는 바람에 그 동안 묵상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이곳을 찾으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113-115절
    113절에서는 미움과 사랑이 대조되고 있다. 미움의 대상은 '두 마음을 품은 자'이고 사랑의 대상은 '주의 법'이다. 시인이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그 마음의 두 방향이 그의 마음을 나뉘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향한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각주:1] 사랑이란 원래 하나를 향하는 하나의 마음이다. 그럴 때에만 충분히 강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시인이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미워하지만 그런 시인에게 시험이 전혀 없고 흔들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방패삼고 은신처로 삼아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두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악인이 가는 쉽고 화려한 길로 갈 것인가 하는 내면적인 갈등은 항상 있다. 114절의 고백과 115절의 선언은 그런 갈등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반복되는 고백과 선언은 시인을 각성시키고 다시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진리와 계명을 향해 생겨나는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이 사랑은 한 마음일 때만 가능한 그런 사랑인데, 그 마음을 나뉘게 하고 다른 곳을 향하게 하는 막강한 하나님의 연적이 있기 때문이다.[각주:2] 그래서 이 사랑에는 항상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헌신의 고백이 필요하고, 그 온전치 못한 연적을 향한 선언이 필요하다. 

116-120절
     항상 그렇듯이 시인은 다시 시는 다시 기도로 향한다. 이 사랑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에 자신의 사랑을 걸고 있다. 그런데, 그 붙들어 주심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던 것이다.시인은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언약의 성취를 위해 기도드리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중심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이 있다. 그리고 그 언약이 붙들어 주는 관계가 있다. 
     118절 이하에서 우리는 시인의 사랑의 또 다른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 동기는 악인의 삶에서 배운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버리시며, 그래서 그들의 삶은 허무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각주:3]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인생을 허무로 끝내지 않으려면 결국 하나님을 붙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허무를 넘어설 수 있게 해 주는 '주의 증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랑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사실 모든 사랑이 그렇다. 사랑은 사랑을 잃었을 때 생겨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 사랑이 실패했을 때 단지 마음의 괴로움과 상실감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부터의 분리이며 그래서 영원한 허무에 속하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하나님과 그 분의 법을 향한 사랑은 항상 엄청난 두려움(경외)를 동반하게 되어 있다. 

- 신앙,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두 가지 기둥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끌어오고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끌어다 놓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연약한 사랑은 이 두 가지 기둥에 의지할 때 더욱 든든하고 흔들림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121-128절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시인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또 힘겨운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주의 말씀이 의로운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신실하심으로 인한 구원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과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인의 이 절절한 고백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이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기다림일 수 있다. 그 가치를 알기에 사랑하지만 그 성취란 그 성취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게 할만큼 힘겹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도 쉽사리 그리고 신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모하는 그 말씀이 더 온전히 깨달아지고 또 그래서 그 말씀에 더 온전히 순종[각주:4]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자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확실한 앎만이 확고한 소망과 순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에 소망을 두고 모르는 것에 순종하는 것은 종에게 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의 대적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깨뜨렸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야 말로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어떠하심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셔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심판을 생각할 때, 그 심판을 면하려면 답은 하나 밖에 없다. 더욱 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또 그 법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때를 읽는 지혜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었고, 그 두려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향한 더 큰 사랑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이 가깝다. 의인의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향한 사모함이 진해지고 강해질수록 하나님의 심판은 그만큼 가까운 것이다. 그 분의 의로우신 행동은 소망이 되는 동시에 두려움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더 온전한 신앙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정 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113절부터 120절까지는 고백과 결단에서 출발해서 기도로 이어졌고, 121절부터 128절까지는 기도로 출발해서 고백과 결단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의 모습, 참된 기도의 전형을 본다. 결단과 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신뢰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 고백과 결단은 견고한 기반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기도는 고백과 결단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자가 갖게 되는 하나님의 개입과 함께하심, 그리고 도우심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 더 든든한 확신과 더 견고한 헌신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1. 원문에서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 속에는 마음이 약하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문으로]
  2. 성향상 우리는 하나님보다는 이 연적에게 더 끌린다. [본문으로]
  3. 안다고 시험이 없고 유혹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당장은 그들이 훨씬 더 쉽게 잘 나가는 것 같으니 아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으로부터의 강한 유혹은 여전히 존재한다. [본문으로]
  4. 나는 주의 종이오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