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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2년 새벽설교. 레위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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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상 6장 

언젠가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성경책 속에는 성경통독을 가로막는 강력한 적수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적수는 바로 족보들입니다. 요즘도 우리는 계속해서 주욱 이어지기만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읽고 또 살펴보고 있는데요. 1장 1절부터 시작된 족보는 이런 저런 짧은 설명과 더불어 8장 마지막까지 계속됩니다. 읽다가 보면 내가 왜 이런 것들을 읽어야 하는지 갑자기 허무해지기 시작하고, 또 자꾸 혀가 꼬여서 다시 읽어야 하는 일이 여러번 발생합니다. 그냥 건너뛰자니 뭔가 찝찝하고 계속 읽자니 은혜가 되기 보다는 화가 나고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읽어야 하죠. 그래야 성경을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족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역대기만 보더라도 족보를 기록하는데 무려 여덟 장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경이 이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약속은 아무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한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여전히 흘러갔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어김없이 이루어져 갔습니다. 기나긴 족보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족보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믿음 말입니다. 둘째, 이러한 족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택하시고 항상 이들을 인도하시고 양육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그들을 징계하실 지언정 결코 완전히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열 두 지파를 붙드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족보들을 볼 때마다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붙드십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당연한 것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항상 남은 자들을 통해서 그 분의 역사를 이어가시고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순종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교회를 교회로 서 있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닙니다. 교회를 교회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 있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입니다. 우리는 족보를 대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며 겸손해 져야 하며 또 그 은혜와 신실하심 안에서 다시 한 번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족보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 하나의 족보는 다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대상의 족보라고 예외는 아니죠.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지파의 족보도 그렇습니다. 역대상의 족보는 12지파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레위지파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이례적으로 깁니다. 전체 여덟 개의 장 중에서 6장 한 장 전체가 레위지파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6장의 길이는 81절이나 됩니다. 다른 장과 비교하면 그 분량이 최소 2배에서 3배가 넘습니다. 전체 족보 중에서 분량으로 치면 4분의 일이나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역대상의 족보에서 레위지파의 족보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에서 레위지파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죠. 성경이 그렇게 본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고 계신다는 말이 되고,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통해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바라보시는 시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른 나라는 왕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왕을 배출한 부족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이 아니라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을 배출한 지파가 아니라 제사장을 배출하도록 지정된 지파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지파가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처리하고 또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임무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지키고 또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연상태로는 거룩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아담의 후손으로 모두가 다 죄인이었고, 그래서 거룩에 관한한 이스라엘은 기억상실 상태에 있었고 철저한 무능력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들에게서 죄로 인한 부정함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곧바로 거룩해져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그렇게 죄를 처리한 후에는 그들에게 다시 거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서 연습하게 하고 그래서 거룩한 삶을 통해 거룩해 지도록 도와주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이 바로 레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인 한에서는 왕보다 제사장이 더 중요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나라였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감당해야하는 역할을 이방인들을 향해서 감당해 내도록 부름받은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제사를 통해 정결해 져야 했고 그 후에는 율법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장 지파인 레위족속의 중요성이 그렇게 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족속은 따라 자기 몫의 땅을 가지지 못하고 나머지 열 한 지파의 땅에서 거처를 얻어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항상 거룩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레위지파가 중요했던 것은 레위지파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정결하게 하고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는 중재자요 또 선생의 역할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미 죄와 관련된 제사장의 역할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십자가 제단에서 스스로를 제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룩을 가르치는 제사장의 역할 또한 가장 결정적으로 행하셨습니다. 그 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써 참된 거룩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레위인의 역할을 영원하고 완전하게 행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도 레위인들이 그런 역할을 감당했던 목적과 꼭같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만 그 일들을 온전히 행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도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온 세상을 위한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2장 9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서 행하신 모든 일은 우리의 죄를 씻어 정결하게 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살아서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레위인들을 두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교회의 머리로 두신 목적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 한번도 변한 적이 없고 또 포기된 적더 없었습니다. 그 분은 항상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셨으며 우리의 한님을 닮은 성품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에 빛나게 되는 것을 소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 속에서 레위지파가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 그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을 위해서 그렇게 중요한 분이 되실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과 성품을 가지게 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길게 기록된 레위지파의 족보를 통해 바로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진짜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아 정결케 되며, 그래서 거룩한 삶을 통해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들 또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이러한 목적에 일치시켜야 하며, 또 그것을 우리의 소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이유와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처음의 자리, 가장 영광스럽고 충만한 자리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통해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일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진짜 복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원래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살아야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참된 만족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된 충만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지음받은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단순히 예수 믿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는 진짜 믿는 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온전케 하시는 은혜 안에서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을 여러분의 표어로 삼으십시오.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여러분의 평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분명 여러분을 가장 빛나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안내해 줄 것이고, 나아가서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영광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의 삶을 추어 감으레위지파로써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도 그 분 안에서 지극히 영광스러워지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