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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2년 새벽설교. 여호와가 영원히 거하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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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열왕기상 23장 1-32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간단하게 보여도 정작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도록 의지하고 맡기는 일과 또 우리가 우리의 열정과 지혜를 가지고 애쓰고 힘쓰는 일 사이의 균형점을 찾고 그것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이 균형점을 찾아내고 지키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우리가 이 일을 게을리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열정때문에 방향을 잃어버리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되어 버리거나 거꾸로 완전히 무책임하고 게을러져 버리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과 삶을 위해서 그 어떤 고민이나 노력이나 추구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면서도 자신만큼은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판단착오가 생겨나는 것은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생겨납니다. 인간의 지혜와 열정,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정반대의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신앙과 열정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니까 자꾸 이 쪽 아니면 저 쪽,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구별해야 하면서도 함께 조화시켜야 하고 균형을 잡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겸손하게 애쓴다면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열정과 겸손한 신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의 성전을 향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뜨거웠을 뿐아니라 지속적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한 후에 그가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바로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다윗의 아들 중 하나에게 맡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다윗의 삶은 그의 범죄로 인해서 그야 말로 우여곡절로 가득찬 파란만장한 삶으로 뒤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정말 너무 너무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다윗은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아지자 다윗은 이제 구체적으로 성전건축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일단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건축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건축재료가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여기게 되었을 때, 그는 아들 솔로몬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성전건축을 맡겼습니다. 물론 이미 수차례 들려주었겠지만 성전건축과 관련된 일들의 자초지종을 말해주고는 성전건축을 신신당부합니다. 그리고는 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아서 솔로몬을 도와서 꼭 성전을 지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들이라고 당부합니다. 왕이 되면서 거의 처음 소망하고 하려고 했던 일도 성전건축이었고 이제는 왕위를 물려주고 또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아들과 백성들에게 유언하며 부탁하는 일도 성전건축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다윗이 평생 이 일에 대한 얼마나 큰 소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다윗에게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 왕위를 순조롭게 물려주는 일보다도 이 일이 더 중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그러니까 게으름과 과도한 열정 중에서 다윗과 게으름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위험한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열정이었습니다. 성전을 향한 그의 열정이 컸던만큼 그것이 지나쳐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흘러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열정을 잘 통제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면서 구체적으로 선택했던 방식들은 오늘날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우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줍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열정을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만 순수하면 그 외에는 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향하는 대상이 하나님인 만큼 하나님께서 그 열정을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셔야만 합니다. 다윗은 열정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안된다고 하시니 거기서 멈춰섰습니다.  열정은 사람을 맹목적이게 만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궤도를 벗어나게 하죠. 그렇기 때문에 열정을 제어해 줄 수 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윗의 경우 그것이 하나님의 거절이라는 형식으로 명확하게 나타났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선택해야 할 방법과 길들을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커다란 틀에 맞춰가는 일이 됩니다. 열정이 강할 수록, 그리고 그 열정이 순수한 것이라고 여겨질수록 그 열정을 추구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가장 잘 맞고 또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방법이 될지 그것을 잘 분별하고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먼 우리는 우리의 열정이 길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무례함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자신의 선한 동기와 열정을 모두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허락된 것은 무엇인가? 그 아름다운 일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하고 물었습니다. 답은 성전건축을 위한 만반의 준비였습니다. 그는 우선 건축재료들을 준비합니다. 전리품들이나 공물들을 비축했고, 필요한 귀한 재료들을 사모았습니다. 또 건축 기술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그는 성전을 짓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당사자들을 모두 불러서 그들을 설득하고 또 복을 주며 각자가 해야할 일을 맡겼습니다. 후계자인 솔로몬에게는 왕위의 안정과 유지를 위한 노하우보다는 성전건축에 대해서 더 많이 설명했고 또 더 많이 당부했습니다. 백성의 지도들에게 성전건축을 도울 것을 당부했고, 아직 세워지지도 않은 성전에서 직접 하나님을 섬길 레위인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이 각자 해야할 일을 규정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성전 건물이라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소프트웨어에도 세밀하게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사용했던 구체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열정에 북받쳐 물불 가리지 않는 실수를 하거나 정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태함과 게으름에 빠지기 쉽지만, 다윗은 그런 우리에게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열정을 품었고 그 열정을 잘 유지했으며 그 열정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 허락되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일에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했습니다. 성전건축을 계획하고, 거기 필요한 것을 계산하고, 그것을 치밀하게 마련했습니다. 필요한 기술자들까지 사전에 확보했고, 반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지세력으로 설득했고 성전이 지어지면 곧바고 거기서 하나님을 섬길 사람들을 위해 다시 업무분장까지 마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한다는 것이 아무 생각없이, 계획없이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할수록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정당하게 그리고 최대한 세밀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히 해야할 것은 열정을 추구하고 지혜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결과까지 직접 만들어 내려는 도에 지나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라고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 충실한 것, 그것이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균형잡힌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대개 이것을 거꾸로 하려고 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과정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채로 원하는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부정직한 방법을 쓰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최선”이라는 말의 뜻은 “최고로 선한 것”을 의미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일은 최고로 선한 방법을 찾는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보시기에 최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루라도 빨리 이렇게 살고 움직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방법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위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고 그 길로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25절의 다윗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이것은 성전건축이 완성된 것을 전제로 하고 다윗이 레위자손들에게 한 이야기의 서두입니다. 평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편들어 주실 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의 편이 아닐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환경도 그렇고 마음과 영혼도 그렇고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편들어 주시고 그래서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중에서 편안히 거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 편에서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그렇게 하나님의 계속적인 임재를 가져오고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지금 누리는 평강을 계속 누리게 해 주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성전건축 자체가 그것을 보장해 준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레위지파를 재편성해서 그들이 성전에서 온전히 섬길 수 있는 준비를 했지만 그가 성전을 하나님의 임재와 이스라엘의 평강이라는 두 가지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으로 여겼던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편하게 거하실 때, 우리도 그 분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향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범위 안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떤 것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의 예민함과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의 뜻과 맞지 않는 곳에는 충만히 그리고 편안하게 거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풍성한 유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너무도 잘 알았던 다윗은 자신의 열정을 잘 다스렸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구하기 전에 우리의 삶의 자리가, 우리의 신앙의 자리가 그 분이 편안하게 거하실 수 있는 그런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열정을 기울여 살며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넘지 말아야 할 것은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는 멀어지고 그 분만이 주시는 참된 평강도 더불어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여러분의 삶과 신앙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편안하게 머물러 계시도록 하심으로써 그 임재의 풍성한 유익을 누리며 사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