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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2년 새벽설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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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야고보서 3장 13-18절


저희 집 큰 아이가 이제 6학년인데, 그 아이가 3학년 때인가 아이를 가르치려고 수학책을 펴들었다가 정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원래 수학에는 잼병인 이유도 크지만 겨우 초등학교 2-3학년짜리 수학수준이 왜 그리 높아졌는지, 그리고 왜 한 가지만 가르쳐도 충분할 것을 서너가지 더 복잡한 방법을 다 가르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지식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거의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알게하려고 그렇게 애쓰고 나라도 필요이상의 지식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이죠.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다지 맞는 생각이 아닙니다. 물론 무식할수록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이 안다고 행복한 것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전도서의 말씀처럼 아는 게 많아서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거나 불행해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지식이 더 행복하고 만족하게 한다는 생각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믿음의 대상이 되는 지식의 역할과 한계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 최고의 부품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최고로 정교하고 견고한 부품들이 작업대 위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 벽면에는 정말 좋은 공구들이 종류별로 결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 부품들과 공구들을 사용해서 어떤 목적에 맞는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부품은 어떤 기능이 있고, 그 부품은 또 어느 부품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부품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때 또 다른 어떤 유용한 역할을 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만 알아서도 안됩니다. 걸려 있는 공구들은 또 어떤 부품을 어떻게 하는데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 사용법은 또 어떤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진짜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지식과 지혜의 역할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 한 번 말씀드려 본 것입니다. 인간의 앎에는 지식만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앎에는 지혜도 있습니다. 이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비유에서 어디까지가 지식에 해당하고 어디서부터는 지혜에 해당할까요? 우리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든 것이 다 지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 중에서 부품만이 지식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모든 것 그러니까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맞는 부품을 선택하고, 또 알맞는 공구를 선택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목적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지식은 재료. 그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항상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사용되어야하는지를 분별하고 결정하는 것은 지식 자신이 아니라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둘 다 필요하지만 실은 지혜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은 지식과 지혜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필요하되 그 지혜는 선한 지혜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을 가지고 지혜가 만들어내는 결과들은 유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그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바람직하지 못한 지혜, 그래서 악한 지혜라는 말은 검은 백설, 어두운 빛처럼 그 자체가 있을 수가 없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지혜라는 말은 선하고 좋은 목적에 소용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지혜 중에서도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선한 지혜가 있고, 정반대로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야고보서를 읽고 있는 교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혜 중에서도 선한 지혜가 아니라 악하고 마귀적인 지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은 지혜로워야 하지만, 그저 지혜롭기만 하다고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롭되 선하게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지혜가 나도 유익하게 하고 주변의 사람들도 유익하게 하는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참되고 선한 지혜인지 반대로 그렇지 못한 지혜는 어떤 것을 말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은혜롭게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명확한 기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야고보 사도는 선한 행위가 바로 지혜가 지혜라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되어지는 지혜, 그리고 선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지혜는 지혜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 행위로 증명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지혜만이 참된 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지혜, 선한 지혜와 그렇지 않은 지혜를 구분하는 첫번째 기준입니다. ‘선한 행위’로 드러나는 지혜만이 참되고 선한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악한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지혜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여기서 멈춰서지 않습니다. 우리도 잘 알지만 인간에게는 ‘위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된 선행, 거짓 선행’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때로는 겉으로는 진짜 선한 행위들과 전혀 구분이 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도 속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겉으로 보여지는 선한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한 동기까지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야고보 사도는 만약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그 때는 지혜로 선한 행위를 했더라도 그건 선한 행위가 아니라 거짓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럴 때의 지혜는 진리를 거스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 ‘다툼’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는 ‘이기적인 욕망’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러 겉으로 보기에 선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을 행한 동기가 다른 이들을 향한 시기나 혹은 자신의 은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된 지혜는 결코 선하고 참된 지혜일 수 없고, 오히려 세속적이고 정욕에서 나왔고 그래서 사탄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 선을 이루기 위해서 지혜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기가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면, 남들만큼 되고 남들보다 나아지고 또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 ‘선행’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혜의 결과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당장은 선한 것 같고 훌륭한 것 같아도 결국은 무질서와 사악한 열매만 남깁니다. 마음의 동기라는 씨앗이 악한 것이니 결국 거기서 거둬들일 수 있는 것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제 참되고 선한 지혜를 분별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제공합니다. 참되고 선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참되고 선한 지혜는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 온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는 아무리 사용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악한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인간에게 완전한 선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체크리스트를 잘 사용한다면 적어도 하나님께서 ‘위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지혜가 오히려 우리들과 이 세상을 병들게 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거듭난 지혜’는 첫째 성결합니다. 이 말은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의도가 없습니다. 둘째, 화평합니다. 갈등과 불화가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 냅니다. 셋째, 관용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깊게 배려하며 친절합니다. 넷째, 양순합니다. 충분히 이성적이어서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다섯째, 긍휼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그래서 그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온 선한 열매가 많습니다. 여섯째, 편벽되지 않습니다. 어떤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내 이익이나 입장, 그리고 관계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이 없습니다. 무언가 뒤에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 참되고 신실합니다. 그래서 악한 지혜와는 전혀 다른 열매, 그러니까 의의 열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그래서 사람들을 참으로 유익하게 하는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의 지혜가 위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 그래서 선한 것인지 반대로 악한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혜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일곱가지로 이루어진 위의 점검표를 옆에 놓고 곰곰히 체크해 보는 번거로운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걸 귀찮아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지혜가 오히려 해롭고 악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롭고 신실한 성도가 되려면 우리는 말 그대로 별걸 다 신경쓰고, 별걸 다 고민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좋은 신앙에 대해서 확신하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를 치열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의미의 좋은 성도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다는 것입니다. 지혜 하나만 해도 이렇게 복잡하니까 말이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지혜롭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그 동기와 내용, 심지어는 결과도 생각할 필요가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때로는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항상 참된 것을 분별해야 하고 그 참된 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지혜로운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지혜는 위로 부터 온 거듭난 지혜여야 하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려고 하는 지혜가 그런 지혜인지 끊임없이 체크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지혜라면 걸러내야 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지혜만 사용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러려고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지혜는 나 자신과 이 세상에 악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게 하는 그런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선한 지혜 체크리스트는 사실 이렇게 짧게 살피고 넘어가서는 안되지만 시간상 짧게 살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짧게 살펴보았는데도 복잡하죠. 그래서 이 모든 기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원리 한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이 원리는 참된 지혜와 악한 지혜를 구분할 때 뿐만 아니라, 모든 참된 미덕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같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진짜 미덕들과 가짜 미덕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니까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14절부터 16절까지는 악한 지혜에 대해서 그리고, 17절부터 18절까지는 참되고 선한 지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두 가지의 구분점은 바로 지혜가 향하는 방향에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악한 지혜는 그 방향이 자신의 욕심과 유익에 있습니다. 그런데, 선하고 참된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정반대로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참된 유익을 향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자기유익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해주는 기준은 하나 하나가 너무 중요한 것들이어서 모두 챙겨야 하지만 그게 힘들다면 하나만 확실하게 챙기시면 됩니다. 내가 지금 지혜를 사용하려고 하고 있는데 도데체 무엇 때문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유익 때문이냐 아니면 진실로 다른 이들을 위해서이냐를 정직하게 묻고 거기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맺게 될 열매들이 나를 위한 것이 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것이냐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만 확실하고 정직하게 묻고 대답한다면 지혜는 물론이고 모든 미덕과 선행들이 참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영광스럽게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참된 지혜와 선한 지혜, 그렇게 하늘에 속한 거듭난 지혜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직하게 묻고 또 대답하는 수고와 연습, 그리고 그 대답에 순종하는 수고를 통해 참으로 사람을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 분 앞에서 영원히 영광스러워지는 참으로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