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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2년 새벽예배 -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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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22장 24-30


요즘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한창입니다. 라디오의 대담프로를 들어보면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는 후보들 끼리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입니다. 서로를 깎아내리고 헐뜯고... 그러면서도 자신은 또 얼마나 미화하고 또 높이는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꼭 저렇게 해야만 할까? 저런 방법이 아니면 당선이 되기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이 땅의 정치에 대해서 굉장히 식상해지곤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마치 국회위원 후보들처럼 서로 자신이 높다고 다투는 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지기 싫었던 것 같고,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농담으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시끄러운 말다툼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또’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높으니, 니가 낮으니 하는 이런 다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또’라고 말할 정도로, 성경이 ‘역시’라고 말할 정도로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온 일이었습니다. 3년이 넘는 세월을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그 분께 하늘나라의 영광에 대한 가르침을 들어왔고, 그 나라에 걸맞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그 분을 통해 보고 들었으면서도 또 바로 직전에는 자신을 영원한 떡과 음료로 내어주시는 성찬을, 주님의 섬기심을 통해서 나누었으면서도 제자들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많이 행하시면 행하실수록, 그래서 사람들의 인기를 더 많이 얻으시면 얻으실수록 그런 예수님 덕에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그들의 욕망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들은 또, 그리고 역시 다른 제자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다는 욕망이 만들어낸 경쟁속에 휘말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방인들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나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 주님은 먼저 이방인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바로 여기에 사람들이 높아지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들어있습니다. “저희를 주관하며...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이게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위치와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이리 저리 하는 것, 그리고 마치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크게 인심쓰는 사람처럼 대접받는 것, 사람들은 그게 좋아서 그렇게 높아지려고 안달을 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이런 욕망은 그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 사람들 밑에서 그 사람들에 의해 이리 저리 움직이고, 또 그러면서도 마음에 없는 감사와 존경을 바쳐야 하는 그런 사람들로 살기 보다는 그 반대편에서 사람들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또 그들로 부터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존경과 인정을 받는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욕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게 하며, 모든 면에서 다투는 사람들로 만듭니다. 그러면서도 그 다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아픔들을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그러니까 제자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성도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그리고 제자들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였습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두목은 다르리고 지휘하는 사람이지 섬기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상식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온 세상의 대세가 그런 사람들을 큰 사람으로 인정해 주고, 또 그런 사람들을 지도자의 자리에 앉혀주지 않는 한 그 상식을 버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이라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을 따라서 살아가면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차이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큰 차이는 자신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평가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고 또 다른 사람들입니다. 아주 특출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둘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고 또 사람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거기서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다릅니다. 물론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평가를 결정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 분이 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시는가? 그 분이 어떤 사람을 크다고 평가하시고 높다고 평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의 인정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결국 사람들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보기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이 보기에 높은 곳은 반드시 사람들에 의해서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의 평가는 항상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이익 중심적입니다. 게다가 기준이라는 것도 객관적이거나 명확하지 않습니다. 항상 변합니다. 지금은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높여주지만 얼마 않있어 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평가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평가에 나 자신을 맡기는 것은 곧 그들의 변덕스러움에 휘둘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안해 하고 공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은 이기심이나 자기중심성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 기준은 변함없고 정확합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추고, 또 그 기준으로 높다고 크다고 평가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자신의 삶을 가장 견고하고 확신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그렇게 당당하고 여유롭고 분명한 것입니다 .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평가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진실로 커지고 높아지려면, 그런 평가를 받으려면  그래서 영원히 높은 자, 큰 자가 되려면 기꺼이 젊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높아지고 커지는 일 때문에 다투어서는 안됩니다. 그 일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며 또 실망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 봐서 알지만,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일 자체가 힘들 뿐만 아니라 그런 일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이 매력적인 것보다 당장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또 그 사람들로부터 눈에 보이는 대접을 받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크고 절실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동기입니다. 우리가 낮아져 섬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크고 절실한 동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 주님의 계획이며 또 가장 영광스러운 약속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천국에 가고 싶으시죠?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사시길 원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엄청나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만약 하늘나라가 이 땅이 움직이는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 가는 곳이라면 그래도 여러분은 그 나라에 그렇게 가려고 하시겠습니까? 만약 하늘나라가 여기 이 곳, 이 땅 위와 같은 곳이라면 저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힘 센 자가 약한 자를 휘두르고,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마음대로 하는 그런 나라라면, 하늘나라가 그렇게 여기 이 땅과 꼭같이 닮아 있는 곳이라면 저는 그런 나라에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곳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지옥이 될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확신하기는 하늘나라는 여기 이 곳,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일 것입니다. 그런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단순히 제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늘나라를 철저히 그런 곳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고, 그래서 소망할만한 그것을 위해서 이 땅 위에서의 삶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그런 나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이 땅과는 정반대의 질서가 다르시는 곳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가장 큰 사람, 가장 높은 사람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가장 낮아진 사람, 가장 작아진 사람, 가장 많이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일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그렇게 낮아지시고 그래서 거기서 가장 높은 분이 되신 것처럼 그 분을 많이 닮아있을수록 그 나라에서는 분명 크고 높은 사람으로 영원히 칭찬받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여러분, 누가 이 약속의 주인공이 될까요? 누가 이 영광을 누리게 될까요? 누가 그 나라에서의 그 영광스럽고 영원한 다스림, 그렇지만 가장 겸손하고 온유한 다스리심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될까요? 답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땅에서 그 연습을 한 사람, 여기 사셨던 주님처럼 살아가려고 애쓰고 힘썼던 그 사람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항상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또 대접받으려 하며 남들 위에 군림하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갈 때,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보려고 할 때 우리는 가장 든든하고 확신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둘째로 더 중요한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그러한 나를 향한 평가는 영원한 평가가 될 것이고 그 평가에 따라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평가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간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이 땅 위에서의 우리의 삶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낮아져야 하고 또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 니다. 이 땅위에서 예수님 처럼 낮아져서 섬기며 살아갈 때, 그 나라에서 그 분처럼 높여져서 그 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낮아지는 것, 섬기는 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교만한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않되는 절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처럼 낮아진 사람만이, 그렇게 낮아져서 섬기면서 살아간 사람들만이 그 나라에서 그 분의 영광에 참여하여 높고 큰 자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그 겸손하고 온유한 다스리심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온 피조세계를 함께 다스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마다, 내 속에서 높아지고 커지려는 욕망이 꿈틀대며 고개를 들 때마다 이 소망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꿈을 꾸시고 이 영광스러운 그림을 마음에 그리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에 여러분의 믿음을 합하십시오. 

이 땅에서 주님처럼 살아서 그 나라에서 그 분처럼 높아지는, 그 영광에 참여하는 영원히 복된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