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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12.01.13. 매일성경 묵상

신앙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는 얼마나 중요할까? 얼마나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공동체를 참으로 하나로 만들고 그 안에 머물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할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절) 

시편 133편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구절로 시작한다. 적어도 시인에게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하여 동거함’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우리는 그 모습이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이스라엘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비록 열 둘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 속의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인, 하나여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죄성과 이런 저런 이유로 그 하나됨은 언제나 깨질 수 밖에 없었다. ‘원래 그래야 하는 모습대로의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것보다 보기좋고 선한 것이 없었다. 원래 그렇게 하늘백성을 만드는 것이 태초부터 하나님의 가장 원하시는 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거하는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께는 최고의 ‘풍경’이 될 수 밖에 없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소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2-3절)

이것이 하나님께서 ‘연합하여 동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실 때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비유하는 언어들이다. 그런데 이 비유언어들, 특히 첫번째 비유언어는 별로 적절치 않아 보인다. 두번째 그림은 그렇다고 쳐도 첫번째 그림에 나오는 기름이 노인의 머리에서 부터 수염을 타고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광경이 아름다워보았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데도 시인은 그런 ‘이상한’ 광경에다가 하나님께서 최고로 아름다운 것으로 보시는 ‘풍경’을 비유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한 의문은 마지막 구절이 풀어준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3절)

아론의 수염에 흘러내리는 기름, 그리고 헐몬 산에 내린 이슬... 이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차용된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영생이라는 복의 풍성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차용된 그림이다. 그러니까 표현하자면 풍성한 아름다움, 복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 그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복은 제사장을 통해서 주어진다. 하나님의 복은 누군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어 주어야 얻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오! 그리스도 시여, 당신의 탁월함과 우월함... 당신은 ‘한 분 큰 대제사장’ 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어주시는 복 때문이다. 그 복 중의 복은 바로 ‘영생’이었다. 이 세상에 ‘영생’보다 풍성한 복, 영생보다 복스러운 복이 어디있을까? 그런 복이 주어지는 이유가 되는 ‘풍경’이라면 그러한 ‘풍경’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풍경이 또 있을까? 그것보다 더 풍성하고 넉넉한 풍경이 또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곳에서 복중의 복을 베풀어 주신다. 영생이라는 복을 바로 그 자리에서 베풀어 주신다. 그것은 그런 ‘풍경’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즐거워하시고 또 즐기시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교회됨, 그 교회의 아름다움은 바로 ‘연합하여 동거함’에 있다. 교회의 하나됨에 있다. 이런 교회에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부어주시는 이유는 그런 교회만이 ‘한 몸’인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 땅의 교회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다들 모습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한 몸으로 살아가게 해 주소서. 개 교회가 하나되게 하시고, 교파가 하나되게 하시고, 그 울타리를 넘어서서 연합하게 하소서. 그래서 이 땅의 교회들이 하나님이 가장 아름다워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그런 풍경을 만들레 하소서. 

* 참고 : 이 블로그에는 제가 이 시편으로 설교한 설교가 올라가 있습니다.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