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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12.02.22. 매일성경 묵상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1장 1-13절입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도 배워야 하는가? 그렇다. 기도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필요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바램이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해야하는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철저히 그 분께 의존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또 확인하기 위해서다. 기도는 독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게다가 기도는 그저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 거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 분이 우리 아버지이시기는 해도 여전히 하나님이신 분 앞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 ‘바른 기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아무 거나 기도해서는 안된다. 탐욕을 위해서 기도해서도 안되고 악한 일을 위해서 기도해서도 안된다. 교만하게 뻐기며 기도해서도 안되고 아무런 내용없는 기도를 드려서도 안된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를 먼저 배워야 하고 우리의 기도는 그 기도와 동일선상에서 확장된 것이어야 한다.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나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차례가 우리가 기도해야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알려준다고 믿는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위에서도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이 그 분의 존재에 걸맞는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되어있지 않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도 제 자리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에게 걸맞는 영광을 취하실 때, 모든 것들도 제자리에서 자기 몫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 분의 온전하신 다스림이 충만한 그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 다음에 기도해야할 것은 ‘일용할 양식’이다. 양식은 양식이되 일용할 양식이다. 쌓아놓을 양식, 더 많은 양식을 위해서 투자할 양식이 아니라 그저 일용할 양식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나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의 고백이다. 그 옛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 않는다면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하나는 하나 엄밀하게 말해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필요를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중에서 ‘현식적인’ 기도는 이것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엄청나게 많다고 말씀드린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이 기도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탐욕을 다스릴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탐욕이 만들어 내는 모든 부작용들이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것 또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은, 탐욕은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이 싸우고 다스려야하는 대상이다. 그 무기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이다. 그 다음의 기도는 “죄용서”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는 한 번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죄의 은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없으면 다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기도 앞에 붙어있는 말이 우리를 굉장히 당황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리는 진실로 이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을 때도 많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 자신의 죄용서를 위한 기도는 어떻게 되는가? 이게 큰 일이다. 너무 명백한 말씀이어서 피할 길이 없다. 이 기도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은 동료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이 아무리 버겁게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만큼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고자 하고 또 받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양심불량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고자 하는 그것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마음이 바로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마음이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마지막 기도는 ‘시험’과 관련된 기도이다. 우리는 우리가 시험과 유혹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 주어지더라도 거기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시험은, 유혹은 결코 우리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다. 이 보호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은 누구든지 구할 수 있는 보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자녀들을 보호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누가복음 버전이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드릴 때마다 우리의 기도 속에 이러한 기도의 내용들이 녹아져 있는지, 우리가 이런 것들을 위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뒤를 잇는 두 개의 비유는 기도자의 내면적인 태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다. 주님은 기도의 ‘형식’과 ‘내용’뿐 아니라 기도자의 내면적인 ‘태도’까지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첫번째 비유는 친구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어떤 사람의 비유이다. 여기 나오는 요청을 받은 친구는 예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 강청함을 인하여”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다. 두번째 비유는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 뒤에 나온다. 그러니까 그 메시지를 강화하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악한 아버지의 비유다. 비유를 마치면서 예수님은 아버지가 악한 사람이라도 자녀가 달라는 것보다 좋은 것을 준다면,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느냐고 묻는다. 두 비유 모두 ‘악한 인간’과 ‘선한 아버지 하나님’을 대조한다.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지만 그래도 부탁하고 요청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사람이라면 너희가 기도를 드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또 믿고 있느냐고 물으셨던 것이다. 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며 또 믿고 있는가 기도하기 전에 묻고 생각해 볼 일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의미심장하다.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원래대로하면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의 자리에 ‘성령’이 들어간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성령님이시다. 왜 그럴까?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왜 성령님이 되실까? 우리는 성령님을 구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하나님은 가장 선하신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고, 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 분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그 분을 신뢰하고 그 분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성령님을 보내주신다. 성령님이 ‘가장 좋은 것’이 되는 이유는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영을, 그리고 그 분 자신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특히 기도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하나님은 언제나 최고 최상의 것을 주시는데, 그 최고 최상의 것이란 하나님 자신이신 성령님이시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분을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기도일까? 가장 좋은 것을 달라고 해야한다. 최고이 것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니까 생선이나 떡이 아니라 성령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충만 말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달라는 기도이고, 그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상의 것,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얻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시라.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유익한 것이니까. 그러나 없다면 언제나 성령충만을 위해서 가장 간절하게 기도하시라.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유익한 것이니까. 

바른 기도자, 그리고 가장 지혜롭고 유익한 기도를 드리는 기도자가 되시라. 반드시 선하신 아버지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고, 거기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 바른 기도자가 되게 해 주소서. 또 가장 좋은 것을 구하는 지혜로운 기도자가 되게 해 주소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나의 어버지되심을 신뢰하는 기도자가 되게 해 주소서. 기도를 통해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더욱 더 풍성하게 채우시는 아버지를 알고 더욱 견고하게 신뢰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