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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12.03.03. 매일성경 묵상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3장 1-17절입니다. 오늘도 늦
었네요. 죄송합니다. 
    일단 우리는 본문에서도 앞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던 외식의 주제가 계속되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묵상을 시작해 보자. 

“그 때 마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여 가시는 섭리는 정말 놀랍니다. 주님께서 분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분별을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 물론 자연스럽게 생겨난 사람들의 궁금증을 통해서 였다. 

“빌라도가 어떤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질문은 바로 너무나 엽기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질문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그들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자기들보다 더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상대적인 의로움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질문은 하나였지만, 주님은 두 번 대답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대답이라기 보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들의 교만과 자기 의에 대한 탐닉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그 주제로 들어가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특별히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실은 회개하지 않은 모든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적어도 예수님은 그렇게 해석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특정한 사람들을 향한 징벌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자들은 그 갈릴리 사람들의 비극을 보면서 은밀한 자기의의 만족을 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보아야만 했다. 외식, 그러니까 위선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위선자들이 가장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위선자들은, 특히 위선이 심각한 자들은 결코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죄는 더더욱 생각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기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선자의 마지막은 ‘망함’이다. 철저하고 비참한 망함이다. 영원한 망함이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다시 위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열매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위선이란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같지만, 그렇게 꾸미지만 정작 있어야 할 열매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헤아리지 않으며, 그래서 열매를 맺으려는 교정의 노력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위선자들의 운명과 열매없는 나무의 운명은 꼭 같다. 위선자들이 철저히 망하듯이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베어져 버린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삼년을 참았는데도 열매가 없다면 찍어버려 마땅하다. 그러나 과원지기는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한다. 한 해만... 그러나 한 해가 지나면 주인의 뜻대로 될 것이다. 나무에게는 이제 한 해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한 해가 그 나무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 한 해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 기회란 은혜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마지막 기회, 그 마지막 한 해이다. 이제 나무에게는, 이스라엘에게는,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마지막 한 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그 마지막 한 해에 속해있는 시간들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의 인생 전체를 하나의 시간단위로 본다면 그 모든 인생이 우리에게는 마지막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고, 과원지기는 지금도 두루 파고 거름을 주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열매맺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회개의 진정한 의미이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위선자들은 역시 분별력이 없다. 그들은 소나 말이 하루 동안 목말라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형상이 평생을 고생한 후에 하루를 더 고생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 날이 안식일이니 그 날에는 그런 사람을 고쳐서는 안된단다. 화를 내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이 위선자는 얼마나 많이 일그러져 있는가?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그 날은 특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날이고, 하나님의 형상에게는 특별한 안식이 제공되어야 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고치신 것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온전히 성취하신 것이었다. (여자여 네가 네 질병에서 놓였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지라...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그러나, 위선에 빠져 분별력을 잃어버린 그 회당장은 그 일을 보고, 그렇게 안식일을 온전케 하는 그 일을 보고 화를 내면서 정반대의 일이 옳다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이면서도 열매를 맺고 계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나무라고 있었던 것이다. 분별력은 열매, 특히 주인이 원하는 열매에는 필수적이다. 분별력이 없으면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할지도 모를 뿐더러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마땅히 회개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위선은 얼마나 심각하게 위험한 것인가!


“하나님, 항상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알게 하소서. 자의 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항시 자신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 주인이 원하는 열매가 있는지를 살피게 해 주시옵소서. 위선이 우리를 얼마나 일그러지게 하는지를 명심하게 하시고,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맺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마지막 한 해’를 허비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