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2.09.02. 저희와 함께 모이사(행1:4)

광현교회 취임예배 - 저희와 함께 모이사.doc


광현교회 취임예배 - 저희와 함께 모이사.pdf




일자 : 2012-09-02


설교본문 : 사도행전 1장 4절

 


    오늘은 제가 여러분을 위한 목회자로서 처음 강단에 서는 날입니다. 또 이 설교는 제가 그 직임을 맡아 공식적으로 시작하면서 드리는 취임설교입니다. 그만큼 이 설교는 여러분에게도 그렇지만 저에게도 중요하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설교이기도 합니다. 저는 평상적인 설교를 할 때는 그렇지 않지만 이렇게 특별한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할 때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목회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안 그래야 하는데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설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본문이 설교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종류의 설교들은 그 반대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말해야 할 내용을 먼저 생각한 후 그 다음에 거기에 맞는 본문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게 제가 설교자로서 굉장히 어려워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성도님들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저를 잘 모르지만 저는 책과 설교를 통해서 그 분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아마 그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 바로 백주년 기념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이재철 목사님이십니다. 요즈음 조금 덜 하지만 목사가 된 후 처음 몇 년 동안은 정말 이 분에게 푹 빠져 살았습니다. 이 분의 깊은 통찰력과 그 아름다운 삶이 저를 매료시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의 단서와 통찰력은 그 분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오늘 본문으로 하셨던 이재철 목사님의 같은 제목의 메시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여러분 중의 한 사람이 된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모두가 이 교회를 다시 한 번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교회로 만들어 가며, 그 속에서 우리들도 가장 바르고 행복한 성도들도 다듬어져 가는 또 한 번의 기점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무슨 메시지로 은혜를 나누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 또 다시 마음에 떠 오른 것이 이 본문이었습니다. 오늘 같이 뜻깊은 날에는 무엇보다도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모임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와 같은 본문 같은 제목, 그리고 같은 주제 하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함께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 말씀 위에 우리 교회와 우리들의 신앙을 세우셔서 우리 모두를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든든하게 세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교회를 통해서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없었다면,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생전 따로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고, 혹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함께 모인 것도 우리가 모두 한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마다 이것이 교회다, 저것이 교회다라고 수많은 의견을 내놓을 것입니다. 아마 그 모든 의견들이 저마다 일면에서는 진리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의견이 하나로 일치될 때는 괜챦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문제가 좀 달라집니다. 특히 하나의 교회에 속해서 그 교회를 함께 꾸려나가야 한다면, 생각의 다른 부분 때문에 저마다 교회를 향해서 원하고 바라는 모습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교회 안의 불필요한 갈등이나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요 영원한 스승되시는 주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생각을 접고 주님의 생각을 초점으로 삼고 우리 모두의 생각을 그리로 모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에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되려면,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려면 최소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교회의 정의입니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신 것”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모임과 그 중에 계신 예수님”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교회입니다. 두 사람 이상이면 교회라고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수나 조직이 갖추어져야 교회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없으면 안되는 것, 결코 생략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모임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교회가 될 수 없고 교회라고 불릴 수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말의 ‘같이 모이사’로 번역된 말은 원래 “함께 모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모으는데 그 사람과 상관없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 사람도 그 안에 포함된 그런 모임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짧은 한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란 과연 어떤 모임인가 하는데 대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분명히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야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단순히 계모임이나 친목모임처럼 모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모임이 아니라, 주님께서 모이게 하셔서 모여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교회를 무시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예수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여진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을 구심점으로 해서 모인 주님께서 모이게 하신 사람들의 모임….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결코 자의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사실 자발적이라면 결코 함께 모일 필요도, 이렇게 모일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로 이루어진 처음 교회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구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어부도 있었습니다. 세리도 있었습니다.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모일 수 있었겠습니까? 어부는 빈민입니다. 세리는 부자입니다. 자발적으로는 도무지 섞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열심당원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무력도 불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권력에 붙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재산을 도둑질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홍길동 같은 일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로마정부는 유대인들 중에서 세리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세리들에게 로마정부에 바쳐야 할 일정액의 세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 거두어 들이는 것은 모두 세리의 것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세리들은 열심당원들에게는 가장 큰 주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열심당원과 함께 모였고, 자신들이 착취했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3년을 넘게 함께 생활했으며, 이제 다시 예수님과 함께 모였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적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예수님께서 그들 사이에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그들의 믿음은 불완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온전치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족한 가운데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모임의 중심이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물과 기름처럼, 너무 이질적이어서 도무지 함께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서로를 정죄하며 적대시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놀라운 모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이게 하셔서 모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고, 결국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했을 때,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성 안을 소동케 하는 자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생각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함께 오신 부부라도 다릅니다.  아마 우리들은 각자가 교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를지도 모릅니다. 교인이 100명이면 그 안에 100개의 교회가 있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일치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임은, 이 교회는 주님께서 부르시고 모이게 하시고, 그 안에 함께 계시는 그런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다르고, 그렇게 서로 이질적이며, 서로 무시하고, 서로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헌신적인 교회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 누구도 이런 교회를 만들어 가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인간이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 성령의 충만한 임재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들이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왜 그들 사이의 알력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차이와 갈등을 넘어섰습니다. 비결은 그들 가운데 계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향하여 그들의 시선을 고정하였을 때, 그들은 그 모든 갈등과 알력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면, 주님을 통해서 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는 눈으로 서로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부족하지만, 허물 많지만,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불쌍히 여시시며, 용서하시며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주셨던 주님,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 않아서, 주님의 기대에 한 없이 못 미치는 우리들이지만, 아직도 기다려 주시며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 그런 주님의 눈으로 서로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닮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면 우리는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낮추셨던 우리 주님처럼 옆 사람의 눈높이로 나 자신을 맞추어 가게 됩니다. 보좌를 버리고 우리처럼 되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처럼 되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서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 온전하신 참으로 온전하신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면, 우리 사이의 차이들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의롭다고 해도 그 의로움은 정말 보잘 것 없으며,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주님의 온전하심에 비하면 부족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한 일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그 분 앞에서 겸손해 지고 또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들이 모인 교회가 어찌 아름답고 행복하며 주님을 기쁘게 하는 교회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적어도 교회와 신앙의 목표에 관한 한 현실적이기 보다는 이상적인 사람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머리는 히끗히끗하지만, 그리고 목사가 된 지도 10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는 교회에 대한, 그리고 신앙에 대한 이상적인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꿈은 아무리 좌절되고 또 좌절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생각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적당히 해야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만큼은, 그리고 신앙만큼은 현실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이상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건 그저 제 생각이 아닙니다. 저 개인의 철없는 고집도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려고 하시는 모습이 바로 그렇게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우리더러 “너희들도 인간이니, 어쩔 수 없는 사람이나 적당히 되는대로 해라. 그러면 충분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 어디에도 그런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그래도 나도 인간인데...”라는 변명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물론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100퍼센트 달성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요구와 명령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모두 불완전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기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제가 교회와 성도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고, 또 그렇게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고, 성도는 거기 순종해야하고 또 그 약속을 믿고 거기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 자신도 그 그림에 턱없이 못 미치고, 그래서 그 모습 때문에 힘들고 아플 때가 훨씬 더 많지만 끙끙거리면서도 여전히 그 길에 서 있으려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가져야 할 생각인데,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모인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이게 하셔서 모인 자들이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그저 교회로 부름을 받지만 현실 속에서는 지역교회로, 이렇게 광현교회같은 하나의 교회로 부름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교회로의 부르심을 소홀히 여기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모이게 하셔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 모임의 원천도 이유도 바로 주님이십니다. 교회 안에서 자꾸 내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항상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내가 여기 온 것이 아니고, 이곳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나를 부르셨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나는 그 분을 위해서 존재하는 몸된 교회의 일부라고 말입니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 충만하게 거하시지 않습니다. 또 자동적으로 우리의 중심이 되시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중심이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실제로 그 함께 하심이 충만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과 또 진짜 중심이 되셔서 능력있게 역사하시며 우리를 완전하게 다스리시는 것은 결코 자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존중해하고 또 민감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도 하나님도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인격적이라는 말의 뜻은 억지로 혹은 자동적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중심이 되시고 또 중심으로서 능력있게 다스리시려면 그 분이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중심이 되셔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우리 각자가 우리의 중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각자가 세심하고 정직하게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애써야 합니다. 물론 그러려면 그냥 나 혼자서는 안됩니다. 그저 믿음이나 상식만으로도 부족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부대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분을 따르는 연습을 해야하며, 그 분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뜻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성경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알고 순종하려는 고민과 기도, 그리고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한 은혜를 더하셔서 우리의 존재를,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를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또 우리들도 행복한 그런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길을 가는 한, 이 길을 가려고 애쓰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한 목회자가 되게하시고, 또 여러분을 가르치며 돌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저와 여러분에게 복 주셔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광현교회로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고, 또 항상 시마다 때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예수님의 형상이 충만해져 가는 그런 아름답고 복된 교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