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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09.07. 새벽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5)


요0101to18-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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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장 12-18절


오늘 본문 중에서도 12절과 13절은 성도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암송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은혜로운 구절이니까요.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편견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편견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에 대해서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어리석은 편견을 많이, 그리고 강하게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자신들만큼은 하나님의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유대인들, 그 중에서도 자기들만큼은 하나님을 진짜로 잘 섬기는 참 이스라엘이라고 믿고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 사두개인들이 특히 더 그랬습니다. 이들은 구원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한 편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를 눈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듣기 전에 우리에게도 예수님에 대한 강하고 어그러진 편견이 있었다면, 복음을 들었다고 하여도 지금까지도 우리는 고집을 부리며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편견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이요 은혜인 줄 모릅니다. 편견없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얼마나 큰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복, 이 은혜를 계속해서 잘 유지해 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나의 편견이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를 가려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10절과 11절이 앞쪽에 속한 사람들의 비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12절과 13절은 그 반대쪽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당시에 ‘하나님의 자녀’하면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일단은 유대인이어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했으며 율법도 철저하게 준수해야 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서 자녀이냐 아니냐가 결정되었고, 심지어는 자녀들 안에서도 등급이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이것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자신의 빛이요 구원이며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된다고 간단하게 뒤집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든 자들, 그 분을 구원자요 주인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권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았고, 영생을 약속 받았으며 하늘을 약속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 중에 속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엄청난 권리를 얻기 위해서 내세울만한 공을 세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재벌의 자녀로 태어나면 아무런 노력할 것이 없이 그저 그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재산의 상속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약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적인 조건이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보니 자기 부모의 자녀가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 귀에 들려졌고, 나는 단지 그것이 믿어져서 믿은 것인데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든 권리,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지는 모든 권리를 획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구의 의지나 노력, 그리고 심지어는 나 자신의 애씀도 없었는데,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거듭나게 하셔서 나의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복음이 복음입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복음이 복음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복음이 인간적인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인간적인 조건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단 한 가지라도 인간적인 조건이 끼어든다면, 복음은 복음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인간적인 조건 때문에 복음은 구원에 있어서 사람들을 차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야 복음이 복음으로 불릴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언제나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떠올려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도 우리는 “은혜”라는 말만을 떠 올려야 합니다. 복음이나 믿음이나 전부다 은혜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절과 17절은 그것을 이렇게 은혜롭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부족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손을 빌려드려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는 충만합니다. 차고 넘칩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은혜는 은혜 위에 은혜, 그러니까 정말 다함이 없는 은혜입니다. 거기에 부족함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복음이 오지 않았을 때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을 위해서 지켜야할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렇지만, 그 율법은 원래부터 구원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고, 그래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을 우리의 의되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율법의 역할이고 거기까지 거기까지가 율법이 가지는 영광입니다. 반면에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왔습니다. 복음을 통해 왔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 빛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진짜입니다. 그게 실체입니다. 진짜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충분하고도 넘치는 은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유일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땅에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복음의 가장 영광스러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구원을 은혜로 가져다 주며, 그래서 그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 된다는 점 말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들, 그 분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은혜와 진리를 봅니다. 차고 흘러넘치는 결코 부족함이 없는 구원의 은혜와 진리를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은혜 안에서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항상 기쁘고 감사하며 넉넉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진리를 진리로 알고 또 믿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확신 가운데 살아갑니다. 두려움 없이, 불안함 없이 구원과 하늘나라의 확신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은,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이 땅에서도 행복하고 든든하게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런 복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 복음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풍성한 축복입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차고 넘치는 충분한 권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한 그 은혜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바로 그 구원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이 없어도, 또 무엇을 빼앗기고,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여도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이 넉넉한 복만으로 충분히 즐거워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우리의 복음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 위에 은혜”라고 고백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소망넘치는 성도들로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