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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09.17.새벽 -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요한복음 11)


20120917D.mp3.zip


요0201to12 -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pdf




     본문 : 요한복음 2장 1-12절


     어떤 사람이 어떤 직무를 맡아서 처음 하는 일은 굉장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또 그 사람이 나중에 하는 다른 일들과 비교해 보아도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아서 일을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그 일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마련입니다.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예수님은 한 결혼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종들을 불러 이런 저런 일을 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이 집은 아마 예수님의 가까운 친척쯤 되는 사람의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안의 경사니 예수님께서도 초청되셨을 것입니다. 대개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며칠씩 계속되는데, 그 때 잔치의 포도주가 떨어지면 굉장한 결례였습니다. 전라도 잔치에 홍어회가 없고, 안동 잔치에 삶은 문어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풍요와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바닥이 나는 것은 결혼을 한 신혼부부나 혼주들에게도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일이 났습니다. 이 집에 포도주가 바닥난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혼주에게 불명예가 될 수 있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그저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잔치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구나!” 예수님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냉정하게 대답하십니다. “어머니, 그 일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리아는 무척 담담하고 확신있게 종들에게 명령합니다. “얘들아, 이 아이가 시키는 무엇이든지 그대로 해야한다.” 그 때 예수님의 눈에 큰 돌항아리 여섯 개가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고, 종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떠다가 연회의 주빈에게 가져다 주어라” 종들은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합니다. 여기서 퀴즈 하나 드릴까요? 물이 언제 포도주가 되었을까요? 항아리 안에서 일까요? 아니면 연회장 앞에서 일까요? 답은 항아리 안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나중에 연회장이 그 포도주를 맛보고 의아해 했지만 하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뭏든 이 일로 신랑이 크게 칭찬을 받습니다. 대개 술에 취한 후에는 그저 그런 포도주로 떼우는데, 이 집은 나중에 더 좋은 것을 내놓았다고, 아주 훌륭한 집안이라고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습니다. 이 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른 기적들에 비하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 별것 아닌, 그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이 사건을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맨 처음에 하신 일로, 그것도 굉장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그저 낭패를 당할 뻔한 신랑을 술로 구해준 사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굉장한 무게를 가진 사건이 바로 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닌 일이어서 이 기록이 예수님의 공생애 처음을 장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혼인잔치에 가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먼저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 일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그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 곳곳을 보면 마지막 날을 결혼식 잔치로 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영원한 신부가 되는 곳, 그 곳이 하늘나라이며 그래서 그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이 바로 혼인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살아도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살아도 그 분의 신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이 곳은 하늘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부족함이 있습니다. 가장 풍성하고 흘러넘쳐야 하는 그런 혼인잔치자리까지 여전히 부족함이 있고, 그 부족함으로 인한 당황스러움과 여러움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래도 우리가 이 부족함을 해결하면서 살아가야만 우리의 이 땅 위에서의 삶도 하늘나라를 닮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은 이 땅의 것으로는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이 땅 위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족함은 하늘에 속한 것들이 흘러 들어와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풍성하고 만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방법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일단 마리아는 자신의 가까운 친척이 큰 곤경에 처했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옆에 있어서 걱정이 되지 않으려면, 큰 평안을 누릴 수 있으려면 그 예수님을 철저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어머니였지만 아들인 예수님을 철저히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물론 상황이야 많이 다르겠지만 예수님께서 배에 타고 계신데도 두려움에 떨었던 제자들하고 마리아는 얼마나 많이 다릅니까? 그 차이는 바로 신뢰에 있습니다. 옆에 있어도 충분히 신뢰할 수 없으면 있으나 평안이나 여유가 생겨나질 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렇게 평안하고 차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도움을 청하자 예수님은 아주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러한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서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결국 예수님은 마리아가 하자는 대로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리의 평안함이, 그 평안함을 만들어낸 신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예수님이 거절했는데도, 그 거절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신뢰했을 뿐 아니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들이니 어머니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없겠지만, 그래서 그럴 수 있었겠지만, 이것은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땅에서 예수님의 신부로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항상 부족함과 연약함, 그리고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이런 저런 근심과 걱정, 그리고 당황스러움을 경험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위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위로도 필요하지만 진짜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렇게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의 부족함을 채우실 것이라는, 나의 삶을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을 정확하게 아는 지식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거기서는 결코 평안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그냥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을 따르라고 했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말대로 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성품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예수님이라면 말은 그렇게 해도 이런 상황을 나몰라라 하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때, 그 신뢰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그 분의 신부가 되어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그 분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는 그 부족함 때문에 생겨나는 잠시의 불안이나 흔들림도 없을 것입니다. 거기는 항상 풍족하고 항상 흘러넘치는 그런 잔치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은 아닙니다. 비록 우리는 지금도 그 분의 신부이지만 아직은 그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랑이 아직 다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부족함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시만 흔들리고 이내 견고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 속에 있습니다. 그 분만 믿고도 평안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그 분의 성품을 잘 알고 또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거절당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도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큰 확신 가운데 드린 기도야 말로 거절되는 것처럼 여겨져도 거절당하지 않는, 결국에는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지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더 많이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변함없이 선하신 성품, 그 성품을 아는 확실한 기초 위에 여러분의 믿음의 집을 지어가십시오.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그 분만을 믿고도 충분히 평안하고 충분히 여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거절 당하는 것같은 현실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그만큼 신뢰할 수 있게 해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은혜를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