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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02. 새벽예배 -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22)


요0411to15 -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pdf


20121002D (#1).mp3.zip




성경본문 : 요한복음 4장 11-15절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계셨지만 이 여인은 그 만남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겉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유대인 남자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인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물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내게 주었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속깊은 갈증을 다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 갈증을 온전히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아직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을 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물 한 그릇 기를 수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나에게 그런 생수를 주신다고 합니까? 이 우물은 야곱이 판 우물이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해 왔는데, 그러면 당신은 야곱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예수님은 여인의 말을 들으셨는지 듣지 못하셨는지 그저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속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부터 여인의 시각이 조금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물이 진짜로 있습니까? 있다면 저에게 좀 주세요. 그래서 앞으로는 목 마르지도 않게 해 주시고, 또 다시는 이 뙈약볕에 여기로 물을 길으러 오지 않도록 해 주세요.” 여인은 이제서야 예수님께 무엇을 구합니다. 그러나 그가 구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주시겠다는 거을 한 번 만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마법의 물’과도 같은 것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저 육체적인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물 말입니다. 예수님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도 좁혀진 거리보다는 좁혀져야 할 거리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도 정도는 다르지만 아마도 항상 예수님과 어느 정도는 이런 관계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참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헛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주님은 영원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일시적인 것들,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관심을 더 가지고, 예수님은 하늘의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땅에 속한 것들에 대해 집착하고... 이런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도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남겨 놓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어떤 면에서는 항상 주님과 평행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지고 또 더 성숙해 지지 않는 이유들 중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이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저는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이름만 대면 다 아실 그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잘 몰랐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고 2년, 3년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이 대부분 어린아이 수준의 신앙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은 미국 로버트 슐러의 적극적 사고방식의 한국판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잘 믿으면 잘 된다는 것이 그 목사님의 설교의 거의 동일한 요지였습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 실패하고 상처받고 살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설교를 듣고 아주 쉽게 신앙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자라야 할 신앙이 성장하지를 않았습니다. 소위 중직자라는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아도 정말 정말 신앙이 유아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20대 후반에 가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이 성도들을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의 관심, 그것도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관심에만 붙들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이런 경우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에게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질문했고, 마시면 다시는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마법의 물같은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그의 관심은 단지 이 땅에 속한 것들, 그리고 현실적인 것들에만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필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육신으로 만드신 분이 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물도 마셔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며 살 집도 필요하고 입을 옷도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 그래서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얻고서 이제 받을 복을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우물을 팠던 야곱과 같은 수준으로, 그리고 그 분이 주실 복을 그 우물에서 길어올리는 물 정도로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할수록 점점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 크고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 중에는 100퍼센트 영적인 복들이 있고, 그것이야 말로 진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구하고 또 그것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물에 대해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영원히 솓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성도 여러분 이런 물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주님께서는 진짜로 우리에게 이런 물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까? 이 복을 받는 일은 이런 복이 있고, 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복을 받게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또 그런 복을 주셨을 때 그 복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인이 예수님의 영적인 복에 대한 말씀을 마법의 물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단 한 번도 그런 복을 받고 또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복을 맛본 적이 없으니 예수님께서 그런 복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알아듣지 못한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굉장히 애석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이런 물을 마셔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마셔본 적이 없는지 궁금하시죠? 제가 그 기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음식을 아주 아주 맛있게 하는 그런 음식점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배가 많이 고플 때, 그런 음식을 먹으면 그 만족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눈이 번쩍 뜨이고 저절로 탄성이 나오고 미소가 생겨날 지경이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죠. 그런 경험은 나중에 집에 가서도 다시 그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기회만 되면 다시 그 집에 가 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들을 받았을 때, 우리에게 생겨나는 반응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마실 때, 우리는 정말 정말 완전한 만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기쁨과 영혼이 꽉 찬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과 만족은 그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우리를 진짜로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복은 우리가 그 복을 계속해서 더 온전하게 더 풍성하게 누리고 싶다는 갈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 복을 놓치기 싫다는 애타는 마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중심으로 살게 합니다. 그 은혜를 더 달라는 기도, 그 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도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내가 지금 그 영적인 만족을 계속해서 구하고 있는지, 그것을 더 풍성하고 온전하게 그리고 계속 누리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내가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셨던 그 물을 마셔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그런 물을 맛보았어도 중간에 여러가지 이유로 그것을 구하는 것을 망각한 채로 불만스럽고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상태에 있던 간에 우리가 동일하게 해야 할 일은 바로 나에게 그 물을 달라고 주님께 약속하신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그런 경험이 있든 없든, 그리고 그런 은혜를 망각하고 있던 상관없이 구해야 할 기도제목인 것입니다. 


한 번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샘물을 마시는 은혜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만족을 찾는 방향을 바꾸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만족을 구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 모든 갈증을 없애주는 그 물을 마신 다음부터는 그 물만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 그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 무언가를 버리고 포기하는  손해보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미 그에게는 그것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신앙 안에는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물을 마실 수 있는 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들과는 상관없이 우리 영혼을 그렇게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순전히 영적인 복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로 그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오늘 아침에는 이 복을 중점적으로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도할 때 이 기도를 잊지 말고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물이 진짜로 있는 것을 믿는 믿음을 달라고, 그리고 그것을 마시며 사는 은혜를 달라고, 또 계속해서 달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그 분께 구하면 그 분은 반드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시작하고 또 그 은혜 가운데 하루를 마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