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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08.새벽예배 -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요한복음 26)



요0431to38 -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pdf


20121008D (#1).mp3.zip




설교본문 : 요한복음 4장 31-38절


       제가 설교사역을 하면서 정말 희안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지난 삼일 동안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성경 중에서 책 하나를 연속해서 설교하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본문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 설교의 본문도 그렇게 보면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죠. 아뭏든 저는 그렇게 주어진 본문으로 목요일 부터 설교준비를 시작했고, 금요일 저녁에 결론 부분만 남겨놓고 거의 끝내 놓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갔는데 집에 집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약국을 하시는 성도 한 분을 만나러 갔다고 했습니다. 저도 잘 아는 분이어서 합류를 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약국의 일이 너무 많아서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목사의 직업정신이 발동해서 어제 설교할 내용을 고스란히 다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얼굴이 환해 지면서 그래도 많이 편안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제 이런 저런 일로 몇 주간 교회에 나오지 못했던 우리 교회 집사님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이 분도 직장문제로 굉장히 힘들어 하며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일날 그러니까 어제 만나기로 하고 끊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조금 일찍 오셨길래 그 문제에 대해 조금 상담을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배를 드리면서 준비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예배 후에 집사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교회에 오기를 정말 정말 잘한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어찌보면 그저 저에게 우연히 주어진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또 그것을 설교한 것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얼마나 적절하고도 유용하게 그것도 몇 번씩이나 사용하시는 것인지, 저는 이런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하나님의 지혜와 정확하심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꼭 필요한 곳에 그것도 몇 번씩이나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서 쓰신다”라는 말의 풍성한 의미를 깨닫고 마음에 큰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사마리아로 여행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수가라는 마을 근처에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하시며 그들을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의 한 여인을 만나셨고 그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속에 솟아나는 샘물 하나를 선물해 주셔서 그 여인이 더 이상 터진 웅덩이를 붙들고 목이타는 싸움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이 이리 저리 피하는 여인의 질문을 사용해서 성경에서 가장 뛰어난 예배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제자들이 돌아왔고 그 다음에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대화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마도 어렵게  먹을 것을 구해왔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다리시느라 시장해 하실까봐 예수님께 그 음식을 드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음식을 보시더니 시큰둥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배부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배가 부르셨습니다. 우물가에서 그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고, 그래서 그를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 해결할 길 없는 영혼의 갈증으로 부터 그 여인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절대로 다다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구원되고, 또 이렇게 여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배부르게 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신 것은 그저 때가 되었으니 먹을 것을 구하게 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또 수가의 우물가에는 그저 피곤한 다리를 쉬며 가능하면 물 한모금 얻어마시려고 앉으셨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 여인은 우연찮게 만난 것 같아 보이구요. 그리고 그저 주님은 그 여인이 구원받은 것이 너무 기뻐서 만족하신다고 제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씀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두 가지 아주 중요한 단어가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물과 음식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바로 물과 음식입니다. 물이 없어도 안되고 음식이 없어도 안됩니다. 세상 없는 사람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음식이 없으면 두 달을 넘기지 못합니다. 

        여인은 이 두 가지 중에서 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속깊은 갈증을 해갈시켜줄 물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 물이라고, 너는 내 안에서만 너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줄 샘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만 영혼의 온전한 해갈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보내신 것은 무엇보다도 이 여인과 대화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목적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여인을 온전한 구원 가운데로 인도하셨으니까요.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유대인인 제자들을 사마리아의 마을로 보내서 음식을 구해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이들이 음식을 구하기가 쉬웠을리가 만무합니다. 그것은 원수에 집에서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테니까요.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애를 썼고 그래서 드디어 음식을 구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이미 그 양식으로 배부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때였던 것입니다. 여인에게는 뙈약볕에 물을 구하듯이 예수님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사마리아의 마을에서 양식을 구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수만이 너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살아가는 삶이 너희의 영적인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물과 양식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의 대표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살고 또 만족하기 위해서 물과 양식을 얻기위해 시간을 투자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현재 생명을 내어주는 댓가로 미래의 생명을 위한 물과 양식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만 살다가 끝낼 것이라면 그렇게 사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고, 또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끝내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결국 인간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그 영원 안에서 영생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땅 위에서 몸이 필요로 하는 물과 양식을 위해서 애쓰며 살아가야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열심히 우리의 영생을 위한, 영원을 위한 물과 양식을 위해서 힘쓰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고, 그 양식은 바로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얻을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참으로 목마르지 않으며 참으로 배고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과 제자들에게 바로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모든 우연을 필연적으로 행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보기에는 우연이고 우리가 보기에는 무의미한 일처럼 여겨져도 실은 그런 일들을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시고 또 놓아두시는 하나님께는 완전히 우연한 일도, 완전히 무의미한 일도 없습니다. 각각의 일들은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께서 꼭 하시고 싶어하시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고, 또 그것을 위해서 꼭 이루셔야 할 하나님의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 하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하죠. 저는 성도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성도도 질문을 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라고 많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답을 찾아낼 때, 비로소 성도의 신앙은 풍성하고  깊이있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일들을 위해서 말씀하시고,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주님의 가장 큰 목적이니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순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풀어줄 생수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을 배부르게 할 양식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거기서 예수님을 새롭고 깊이있게 만날 수 있으며,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 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한 상 가득 차려놓으신 풍성한 식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일을 통해서 한 가지 목적만 이루어가지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일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많이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일들은 더욱 더 풍성한 은혜의 보물창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그럴 수록 찬찬히 살아보십시오. 그러면서 흘러가는 순간 순간을 그리고 사건 사건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우리의 삶을 묵상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정말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발견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