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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22. 새벽예배 - 오병이어 기적의 교훈(2)(요한복음 36)


요0601to15 - 오병이어 기적의 교훈(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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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6장 1-15절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오병이어 사건을 놓고 보인 빌립의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영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하시는가 하는 것과 우리는 그 실패를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이미 다 아시고 하는 시험입니다. 그렇게 다 아시고 시험하시는 이유는 나의 신앙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또 나의 약점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그 시험을 이기든지 혹은 실패하든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출발입니다. 더 나은 믿음, 더 나은 인격,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험 자체나 그 시험으로 인한 실패와 성공에 붙잡히지 않고 그 너머에 계신 선하신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의 대답이 끝날 즈음 또 다른 제자인 안드레가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물고기 다섯마리와 보리 떡 두 개가 들려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 이 아이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할 때,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의 도시락으로 싸 준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 떡으로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단순히 계속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는 예수님을 보고 “아, 예수님께서 배고프시겠다.”고 생각하여 자기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안드레에게 예수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을 것이고 안드레는 그것을 들고 예수님께로 나아 왔습니다. 안드레도 예수님과 빌립과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예수님께 건네주며 “예수님 여기 어린아이가 주님께 드리라고 자기 도시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들고 제자들을 시켜서 사람들을 무리지어 앉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다 앉자 예수님은 일언반구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하늘을 향해서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풍성한 식탁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시켜서 그 생선과 보리떡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 최소한 5000명은 넘는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도 열 두 바구니도 더 남았습니다. 

이 경험이 있은 후, 사람들의 예수님을 향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시면서도 가장 우려하셨던 그런 태도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서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저 정도면, 저 정도의 능력이면 나라를 로마의 압제로 부터도 구하고, 자신들의 배고픔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주변의 사람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어떤 자리에 오르면 그 사람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 때 사람들의 태도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태도는 신앙적으로 볼 때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먹을 것 못 먹으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는지 그 속내를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는 것은 요즘말로 하면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은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이며, 주님의 관심사와 주님의 마음에 나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부르신 주님의 관심사와 내가 주님을 따르는 관심사가 다르다면 그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떼어내거나 내어쫓지는 않으십니다. 그 때, 주님을 따르던 군중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해 주셨던 것은 그들이 옳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들의 목자없는 양같음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돌보시고 먹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냥 두시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옳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놀라운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능력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만족을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그 일로 무엇을 보이시기를 원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님은 제자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말할 수 없는 궁핍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땅의 삶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통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의 비유들 중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를 잔치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잔치로, 파티로 그림그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잔치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즐거움과 풍성함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의 주인이 잔치의 중심, 잔치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인되시는 곳입니다. 그 분이 주인공이시며 그 분의 다스림이 충만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어그러짐이나 왜곡된 것,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하늘나라는 풍성합니다. 거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풍성하시고 넉넉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성도들이 항상 넘치는 복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그런 곳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 넘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알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계속되는 그런 곳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기쁨이 넘치는 곳이며, 항상 풍성한 곳이고, 또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한없는 풍성함으로 자녀들을 대하시는 그런 분임을 눈으로 보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를 풍성한 잔치의 식탁으로 만드셨습니다. 배고픔을 채우고도 남는 넉넉한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 감사함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그리고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그리고 천국을 배고픔과 거칠음만이 넘쳤던 광야 위에 임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광야 위에 임한 하늘나라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결국에는 하늘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살지만 이미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듯이 우리의 관심과 소망도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 충만하십니까? 그 나라를 생각하면 언제나 힘이 나시고 실망의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시게 됩니까? 그 나라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집착이 수그러드십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은혜는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에 없으시다면 하늘나라에 대한 그런 감각과 소망을 달라고 떼라도 쓰십시오. 이것이야 말로 정말로 떼 써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믿는 게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제나 광야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칩니다. 피곤합니다. 그리고 항상 배고픕니다. 이것이 우리의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고 우리의 소망은 이 광야 같은 현실을 충분히 하늘나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입니까? 바로 감사를 통해서 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것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신 것이니 불평하지 말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어쩌면 작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터진 주머니 같은 욕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그것으로도 충분한데 말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있거든 그것을 주셨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안드레처럼, 그리고 빌립처럼 없는 것, 안되는 것먼저 보지 마시고, 있는 것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 속에서 있는 것을 찾아내시는 참된 혜안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감사할 때, 주님은 그 감사를 통해서 내가 있는 이 광야를 하늘나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나의 반응을 다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마시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망가운데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소망과 감사, 이 두 가지가 우리로 하여금 광야에 살지만 하늘을 경험하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