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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1.09.새벽예배 -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복음 50)


요0737to44 -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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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7장 37-44절


요한복음 7장은 유대인들의 큰 명절인 초막절 절기와 관련해서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어긋남, 그리고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어긋남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초막절은 7일동안 지켜지는데 그 큰 명절, 그 즐거운 명절 내내 사람들은 갈등하며 오해하며 또 음모를 꾸미고 분노하며 지냈습니다. 


원래 초막절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즐거운 절기입니다. 첫째는 그것이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해방과 광야생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지켜지는 명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유월절과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과 함께 하심을 동시에 기억하는 축제의 절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또한 추수와도 연결되어 있는 절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절기 동안 일주일 내내 물을 긷는 예식이 행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물긷는 예식의 기쁨이 축제의 가장 큰 기쁨이어서,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초막절의 물긷기 의식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자는 인생전체에서 기쁨을 맛보지 못한 자이다’라는 속담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 예식을 행하는 순례객들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예식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동이 틀 때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실로암 못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금주전자 하나에 물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는데, 이들이 수문에 이르면 트럼펫이 세 번 울립니다. 그 때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는 이사야서 12장 3절의 말씀이 크게 외쳐집니다. 물을 나르는 제사장들은 줄을 지어 제단 주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는 동안 성가대는 시편 113편부터 118편을 노래하는데, 노래가 118편의 첫 구절인 “여호와께 감사하라”라는 지점에 이르면 제사장들을 따라 온 순례객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여호와께 감사하라”라고 세 번 반복해서 외칩니다. 노래가 계속되고 노래가 118편 25절에 이르면 사람들은 “구원하소서 여호와여”라는 구절을 세 번 외칩니다. 그러면 선택된 제사장 한 명이 두 개의 사발 안에 포도주와 길어온 물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축제의 일곱째 날에는 이와 같은 예식이 일곱 번 반복되었습니다. 


이 예식에 있어서 물은 여러가지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살게 했던 반석에서 터져나온 생수, 스가랴와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그리고 가뭄의 계절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까지... 초막절에 제단에 부어졌던 물은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게하는 물이었으며, 과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갈증을 해결해 주었던 물이었고, 또 이들이 소망을 두는 온 세상을 살게하는 물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단에 물이 부어질 때, 그런 소망과 신앙과 감사를 담아서 제사를 드렸고, 그 부어지는 생명과 소망, 그리고 은혜 속에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절기의 마지막 날, 물이 제단에 일곱 번 부어지는 그 최고의 기쁨의 순간에 그 자리에 서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고도 대낮에 물을 길으러 나왔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들려주셨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거기 모인 목마른 순례객들,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여인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막 축제를 끝냈습니다. 제단에 일곱 번 부어지는 물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과거에 그러셨듯이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물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들은 축제 내내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지만 그 기쁨은 일상으로 이어지는 기쁨은 아니었습니다. 축제의 기쁨은 이제 곧 일상의 목마름으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예식을 수백년 동안 거듭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예식이 행해질 때마다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들을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만족하게 하는 그런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그 명절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명절 끝날, 그 명절의 가장 큰 날에 그 날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거기 모인 사람들을 향해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복음을 외치셨습니다. 이제 생수를 내는 광야의 바위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은 항상 먼 미래의 소망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하늘에서 내릴 빗줄기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누구라서 목이 마르지 않겠습니까? 누구라서 온전한 해갈을 경험하고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허락된 기쁨으로 그 갈증을 달래고 있지만 이미 그들 속에서는 갈증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광야의 반석이 아니라 영원한 반석이다. 내가 바로 그 성전이다. 내게서 흘러나오는 물은 영원히 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가져라. 나를 소유해라. 믿음으로 나를 취해라. 그러면 너희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가 바로 성경의 그 엄청난 약속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작은 기쁨, 잠시 잠깐 이어지는 기쁨으로 마른 목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초청장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만족스러운 잔치자리로의 초대장은 이미 발송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그 초대에 응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된 사람들만이 그 초대에 응하고 또 약속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첫째, 자신이 얼마나 목마른 자인지를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이미 목마름을 느끼지 못할만큼 무감해진 사람, 자신이 목마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물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가지 않습니다. 둘째, 목이 마른 사람 중에서 예수님의 그 말씀을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내는 샘근원이며, 영원한 만족을 주는 강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려면 이 말씀을 진실로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39절을 보시면 37절과 38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샘 근원과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면 거기서 터져나오는 샘물과 쏟아져 나오는 강물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약속은 전체적으로 이런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 속에 들어와 항상 성령충만하게 하시는 샘근원과 성전이 되어 주신다” 


저는 하나님께서 왜 다른 은혜가 아니라 성령충만이라는 은혜를 주실까? 왜 그것을 가장 크고 또 완전한 은혜라고 말씀하실까 하는 질문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은혜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정말 정말 감사하고 감격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주시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셔야 할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늘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원히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채워주셔야만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채워진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은 성도의 옵션입니까? 아니면 필수입니까? 필수입니다. 왜 그렇죠?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딴 데 기웃거리지 않고 그 기쁨과 만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이제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아얘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터를 잡고 우리와 함께 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 분의 풍성하시고 온전하신 은혜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해주시며, 그 능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모든 목적을 이루려면 우리를 그 분 자신으로 가득 채우시는 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주시고 또 성령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기쁨과 만족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령충만해 지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믿음으로 생수의 근원과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일과 성령충만 하는 일, 예수를 믿는 일과 항상 기쁘고 만족한 삶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그러니 믿으면 성령충만 해야 합니다. 믿으면 기쁘고 만족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게 이렇게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 신앙의 방향을 그리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다른 것을 찾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바라고 소망해야 할 것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만족스럽고 기쁜 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의 축제의 기쁨도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거기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분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언제나 그 분께로 가서 성령으로 목을 축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다 믿음으로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복을 누리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