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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1.29. 새벽예배 -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 64)

    

요0935to38 - 내가 믿나이다.pdf


20121129D (#1).mp3.zip




    본문 : 요한복음 9장 35-38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쳐준 맹인이 출교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요즘이야 뻔히 잘못해서 징계를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교회로 옮겨가고 또 그러면 다른 교회에서는 묻지도 않고 받아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예수님이 사시던 때는 전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그렇게 쫓겨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그렇게 쫓겨난 사람은 감히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고침받은 사람은 이제 소속이 없어졌습니다. 종교와 사회가 하나로 묶여 있었던 당시로는 정말 그 어디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 사람의 선택이었습니다. 한 번 빛으로 나온 사람으로써 또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렇게 그를 만나서는 대뜸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인자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이미 빛으로 나아온 이 사람, 그렇지만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던 이 사람은 이 일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되묻습니다. “선생님, 그 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그 분을 믿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다. 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인자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난 적은 있지만 누구인지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이 이미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 자신도 몰랐지만 그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도 강한 확신 가운데 거하고 있었고,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어서 출교까지 무릅썼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믿음은 이런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미 삶이 믿음을 증명하는 이런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연세가 많이 드신 성도님들 속에서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연세가 많으시고 게다가 배우신 것도 별로 없어서 이 분들은 실제로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심방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분들이 신앙의 핵심과 실재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저런 내용과 교리들은 잘 몰라도 삶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능력을 누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배울 능력과 상황이 안되는 분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가르치시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참 은혜로운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한 상태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래서 그의 삶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지만 스스로는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을 찾아가신 일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이 사람은 이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로 나왔고, 스스로가 빛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러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냥 내버려 두어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같은데 주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그를  찾아가셨고, 그에게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더 위험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눈 앞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내가 인자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너에게 구원을 줄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스스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 것이 그가 고침을 받았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예수님을 다시 만나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이 순간이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머리보다는 가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저 마음만 은혜로운 상태에 있고, 기쁜 상태에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합니다. 여기다가 병이 고쳐진다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해결되는 것같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면 금상첨화겠죠.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믿음이라고 인정하시는 믿음, 우리에게 진짜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믿음은 놀라운 일에 대한 경험이나 그저 마음으로 느껴지는 은혜로운 감정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영적인 눈은 우리가 은혜로운 경험을 할 때, 이미 열려지고 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눈을 뜬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고침받은 맹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태로는 그의 믿음의 주인이요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께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고 분명하게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또 어떻게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 명확하고 분명하지 않으면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에는 꼭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신앙은 굉장히 변덕이 심합니다. 불안정합니다. 오늘은 천국에 있어도 내일은 지옥에 있습니다. 오늘은 활활 타올라도 내일은 얼음장처럼 식어버립니다. 또 굉장히 위험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그래서 대단한 것 같지만 기반이 없어서 쉽게 무너져 버리고 또 이단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똑같은 경험을 준다고 하면 어디든 달려가니까요. 


예수님은 그 맹인이 그저 고침을 받고, 그 일로 인해서 주관적인 확신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눈을 뜨고 빛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그의 눈 앞에 참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사람의 참믿음은 그 때 생겨났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자기 눈을 고쳐준 사람이 진실로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믿게 되었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그 분 앞에 내려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 삶에 일으키기를 원하시는 참으로 은혜로운 기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분별력을 얻으며, 빛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신 분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알고, 그래서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게 되는 것, 그렇게 그 분 앞에 꿇어 엎드려서 ‘내가 믿습니다’라고 진실로 고백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빛 뿐만이 아니라 그 빛이 흘러나오는 태양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말입니다. 


고침을 받은 맹인은 바로 그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을까요? 그것으로 다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믿음이 고백되는 순간은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참 믿음이 시작되고, 참 믿음의 삶이 시작되는 첫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부분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밝아져야 합니다. 더 확실해지고 분명해 지며 그래서 견고해져 가야 합니다. 


병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의 삶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삶과 영혼, 그리고 지식과 인격의 구석구석이 더 밝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작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진실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 번 만난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욱 더 주님을 깊이 만나기를 원하며 또 더욱 더 온전하게 예수님을 알아가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애쓰게 됩니다. 왜냐하면 빛을 알고 그 빛 속에 더 온전하게 거하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 분 안에 거하는 일이 얼마나 명확하고 분명한 삶을 가져다 주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저 은혜로운 감정을 느끼고 또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저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주님을 더 깊이 만나야 하고, 더 제대로 만나야 합니다. 그 분을 계속해서 더 배워가야 하고 그래서 그 분을 더 온전히 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고백이 날마다 더 힘있고 확신있고 능력이 있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더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더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고침받은 맹인을 찾아가셨던 것처럼 오늘도 고침받은 우리를 다시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눈 앞에 밝히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그 분 앞에 우리 인생의 무릎을 꿇고 드리는 진실된 신앙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시지 마십시오. 희미한 빛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분명치 않은 진리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빛을 보고 더 밝히 보는 일에 진보해 가시기 바랍니다. 거기 참된 유익이 있고, 거기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더 분명하게 만나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더 분명해지고 견고해지는 복을 주시기를, 그렇게 우리가 온전히 눈 뜬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