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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2.28. 새벽예배 - 이 계명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느니라(요한복음 68)


요1014to21 -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느니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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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0장 14-21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설명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할 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로 인한 여러가지 감정을 품을 수도 있지만, 오늘 말씀은 그러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설명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또 반응하려면 잘 이해해야 하는 그런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중심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십자가라고 할 때,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우리 신앙의 중심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가지고 바른 은혜를 깨닫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참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양들이 구원을 얻고 잃어버렸던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도록 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살리시고 하늘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는 모든 풍성함이 예수님께만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다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풍성함은 한 사람의 영혼과 삶 안에서도  충만하게 차고 흘러넘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도 계속해서 흘러넘칩니다.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풍성함은 퍼주고 또 퍼주면 모자라는 순간이 오고 언젠가는 바닥 날 때가 오지만, 예수님의 풍성함은 아무리 퍼주고 또 퍼주어도 모자라거나 고갈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그 분에게로 가서 마시고 또 마셔도 그 생명샘은 결코 마르거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또 우리에 있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원래의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사람들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그 우리 안에 있는 양들만 구원하고 그들에게만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결코 이 좋은 예수믿는 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혼자 떠돌아 다니다가 우리의 영혼을 집어삼키려는 어떤 도둑들에게 잡혀 영혼을 도둑맞고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양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양들도 구원하시고, 우리 안의 양들을 위한 목자가 되어주셨던 것처럼 우리 밖에 있는 우리들 같은 양들을 위한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밖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차고 넘치게 나눠주실 수 있는 풍성하고 다함이 없는 생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 밖에 있었던 양인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에는 그 이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자녀들을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자녀삼아서 하늘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 복을 얻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도 못하고, 절대로 새롭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의 소원과 필요가 직접 만나지 못하게 하는 죄악이 그것이었습니다. 사람들 편에서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나아가려고 하지도 않고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이 죄 때문에 사람들을 받아들여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극히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죄인이 그 모습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구원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커녕 존재마저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들의 이 절실한 소원과 필요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으며, 또 그 연결을 가로막고 있는 죄라는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과 자기 양들인 사람들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사람들도 너무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에게는 자기 양들을 하나님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연결고리인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 목숨을 내놓아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누군가가 영원한 생명을 지닌 분이 자신들 대신에 목숨을 버리셔야만 자신들이 다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라는 구절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은 아버지의 소원과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사랑하시고 우리들도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앎과 사랑이 하나님을 향하여는 목숨을 내놓는 순종으로 나타났고, 우리를 향하여는 목숨을 내놓는 희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죽음은 권력과 폭력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목숨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스스로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일이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이 계명이라는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요한복음을 계속 읽어보면 13장 31절 이하에 ‘새 계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새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로 보면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이 이웃, 그러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용하신 계명이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계명’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사랑’,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었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써 그 사랑을 완전하게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 뒤에는 비참함과 비통함이 아니라 사랑, 하나님을 위하고 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셨던 그 풍성하고 완전한 사랑이 놓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최고의 법이 바로 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아파하시면서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물론 예수님 자신에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으키시도록 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에게 부활을 상으로 주시고 또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 기쁨을 스스로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내어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것은 이전에는 사랑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다시 일으키시도록 해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두 분의 사랑이 두 분의 풍성한 관계 속에서 날마다 더 커져가는 그런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우리와 주님 사이의 관계의 모범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위한 가장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그 이유가 되는 자발적인 순종이라는 그림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게 해 줍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합니다. 물론 우리의 사랑은 항상 여기에 미치지 못하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신앙이 기쁘고 행복한 것이 되려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되어가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의 죽음 뒤에 있는 기쁨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쁨 뒤에 있는 사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아니라 그 십자가가 비춰주는 밝고 풍성한 은혜 안에 거하시고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며 주님 주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