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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년 신년특새 - 믿음의 기도는(특새 6)


약0514to18 - 믿음의 기도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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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본문 : 야고보서 5장 14-18절


사람들의 가장 큰 한계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이라는 한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라는 시간 속에 갇히기 쉽다는 것입니다. 내 경험이 전부인 줄 알고, 내가 사는 시대가 가장 정상적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게 사람들의 문제고 또 한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있는 자리가 전부인 줄 알고 거기만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정상적이고 자신이 누리는 영적인 복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고, 자주 자주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도 ‘내가 여전히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에 빠져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이 두 구절은 분명히 기도에 관한 구절입니다. 정확하게는 기도에 대한 교회 안에 병든 자들을 향한 권면이죠. 말인즉 “큰 병에 걸리면 혼자 앓지 말고 장로들을 청해라. 그들이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면 병이 나을 것이고 혹시 그 질병이 죄 때문이라면 죄도 용서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의 질병이 죄 때문이라면 그 질병이 치료된다는 것은 곧 그의 죄가 용서된다는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을 굳이 어떤 사람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에는 그 사람의 죄까지 용서받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까지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병자들에게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부탁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러면 질병도 치료되고 죄도 용서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문득 “아! 야고보 사도는 장로의 기도, 그러니까 목회자의 기도는 당연히 이런 능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야고보는 16절에서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 기도의 능력을 장로들, 그러니까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성도들에게까지 똑같이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모든 성도들의 기도는 병을 낫게 하고, 그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의 기도는 그만큼 역사하는 힘이 크다” 야고보는 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도 당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의 기도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서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야고보도 이것이 100퍼센트 그렇게 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안중에는 확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성도가 드리는 믿음의 기도는 분명히 병을 고치고, 그래서 죄용서를 얻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병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하고 또 서로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야고보는 분명 기도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마치 어제는 1월 20일 주일이었다고 말하듯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성도들을 향해 아니, 나 자신을 향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랬지만 당시의 성도들도 자신들의 기도의 그러한 능력을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한 사람의 아주 중요한 기도의 예를 들어줍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왜 야고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엘리야의 예를 들었을까요? 성경에는 기도응답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이미 성경이 밝히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성정이 같다는 말은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특히 그 사람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이었는지 잘 압니다. 450명의 바알제사장과의 대결에서 이겼으니 이세벨의 협박에 금방 겁을 집어먹고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하나님이 나를 죽여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 기도를 드렸던 나약한 엘리야였지만 그런 엘리야가 드린 기도가 7년이나 비를 좌지우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엘리야의 시대야 말로 가장 지독한 불신앙이 판을 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 팽배한 시대에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그런 놀라운 일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기뻐하실까요? 우리가 언제 드리는 기도를 더 기뻐하실까요? 믿는 사람이 없을 때, 이 세상에 믿음이 희미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더 기뻐하시고 그런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처럼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적대감이 짙은 시대는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처럼 기도하고 좋은 시대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시는 시대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 말로 능력있는 기도를 드릴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연약한 엘리야였지만 엘리야는 불신앙이 가장 짙었던 시대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한 의인이었고 그래서 그가 드린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일단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엘리야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이 불신앙의 시대에 우리의 믿음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족한 믿음을 가진 연약한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서로를 위한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에게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하라고 하는 그 기도를 함께 드리자고 말씀드립니다. 


갑자기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서로를 향해 죄를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부족함과 연약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도 충분히 야고보 사도가 서로를 위해서 드리라고 한 그 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아닌 다른 성도들을 생각하시며 어려움과 고통 속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될 수 있는대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인격적인 연약함, 신앙적인 부족함을 생각하시며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서로를 위해 드리는 기도에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을 믿고서 기도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의 기도라도 기뻐받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병을 낫게 하며 죄라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 교회에 바로 이런 기도가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서로를 위한 기도,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위해서 중보하는 기도가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 기도를 믿음으로 드려서 그 기도가 얼마나 역사하는 힘이 많은지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기도가 회복되고 또 많아진다면 우리 모두는 서로를 위한 기도 속에서 회복되고 온전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똑같은 엘리야도 기도해서 그런 놀라운 응답을 받았다. 그러니 너도 기도해라, 또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라. 기도에는 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 그저 믿고 기도해라, 특히 서로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위해서 기도해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응답은 주님이, 이 말씀을 주신 우리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엘리야와 같은 성정을 가졌지만 이 불신앙의 시대에 믿음으로 기도드려서 부족한 중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