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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년 특새 - 너희가 얻지 못함은(특새 17)


약4042to03 - 너희가 얻지 못함은(특새 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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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3년 2월 5일 화요일

본문 : 야고보서 4장 2-3절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마치 정글을 닮아 있습니다. 싸움과 다툼, 경쟁이 끊이지 않고 강한 존재는 살아남고 약한 존재는 도태됩니다. 능력있는 사람은 좋은 것을 차지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때로는 그 안에서 승자가 되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패자가 되기도 합니다. 얻는 자가 되기도 하고 빼앗기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하나의 인간의 삶의 틀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런 경쟁과 투쟁을 선한 것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까지 생각합니다. 문제는 성도들까지 이런 사고방식 속에 갇혀 있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 성도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이런 생각 속에 갇혀서 이기기 위해서 경쟁하며 때로는 승자가 되고 때로는 패자가 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할까요? 혹시 우리의 신앙 속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요? 오늘은 그 답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다투며 시기하는 이유를 단 한 단어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정욕’ 그러니까 ‘욕망’입니다. 무언가를 욕심내는 일만으로는 얻을 수 없으니까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심지어는 죽이기 까지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든 비극이 다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서 시기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다투는 일들이 아무래도 선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래서 우리는 이 욕심을 다스리고 또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욕심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란 것은 믿는 사람들까지도 대부분 욕심을 선한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청년들과 또 장년들에게 욕심이 꼭 필요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 욕심은 다스리고, 처리해야 하는 것이냐 물었더니 그 질문에 대해서는 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상하죠. 꼭 필요한 것을 다스리고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상식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욕심에 대해서도 세상이나 내가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며, 거기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어야 합니다. 저는 욕심에 대한 가장 명확한 말씀은 바로 누가복음 12장에 나와있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이것은 유산 때문에 큰 싸움에 휘말렸던 형제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탐심 중에서 선한 탐심도 있고, 필요한 탐심도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탐심, 모든 욕심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모두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욕심을 바라보는 성경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욕심을 전부 다 악한 것으로 보십니다. 일단 우리가 욕심과 욕심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악한 결과들을 해결하려면 이것이 욕심에 대한 성경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리쳐야 할 것, 그래야 할만큼 악하기만 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코 욕심과 싸울 수가 없고, 그러면 그것이 만들어 내는 나쁜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욕심은 나쁜 것이라는 성경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이제 두번째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욕심을 내는 이유는 그것이 만족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가졌을 때, 그것이 나에게 주는 만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욕심내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 그 좋은 것을 가져서 만족을 얻으려는 것. 이것이 욕심을 내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주어진다면, 우리를 온전히 만족시킬만한 가장 좋은 것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욕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손에는 항상 제일 맛있는 사탕이 한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아는 어린아이는 친구와 눈깔사탕 한 알 때문에 싸우지 않습니다. 동생의 손에 들려 있는 사탕을 탐내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면, 매번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탕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들 또한 욕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을 내가 찾아야 하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또 다시 전쟁터로 뛰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혼자서 좋은 것을 결정하고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시며,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욕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왜 우리가 얻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실로 만족시킬만한 것들을 찾지 못하며, 실제로는 얻는다는 보장도 없고, 또 얻어도 진짜로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토록 애쓰며 투쟁하며, 때로는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가장 좋은 것들을 모두 가지고 계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달라고 기도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주실 것입니다.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그래서 다른 이들과 다투거나 다른 이들을 시기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입니다. 구하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탐심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는 것, 욕심을 내고 사람들과 싸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서 받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고 그래서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너희가 욕심이 나는 것,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 다투게 만드는 그런 것을 구하라고는 하시지 않습니다. 2절의 앞 뒤를 끊어보면 이런 내용이 됩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며...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그러니까 욕심을 내도 얻지 못하지만 구하면 얻는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니 이 구절에서는 분명히 욕심과 기도를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구하면 그것은 또 다시 욕망에 빠져드는 것이지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욕심이 동기가 되어 욕심나는 것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주시지 않습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인데,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우리의 탐심을 채워주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더욱 더 심한 욕심에 빠져들텐데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그렇게 사용하실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도 아니고, 선하신 분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무엇을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 답은 바로 ‘가장 좋은 것’입니다. 결코 우리 겉사람은 욕심을 내지 않는 진짜 좋은 것입니다. 겉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사람을, 우리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말 정말 좋은 것, 그만큼 충분히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구하라고 하시며, 그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6절은 그것을 “더욱 큰 은혜”라고 말합니다. 어떤 것보다 훨씬 더 클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무엇보다 더욱 클까요? 바로 우리가 욕심내는 것,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고서 욕심을 내지만, 결코 우리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는 그런 것들보다 더욱 큽니다. 우리가 가져보겠다고 그토록 싸우고 경쟁하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그 은혜는 우리의 영혼을 온전히 만족시키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욱 큰 은혜,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주시는 더욱 큰 은혜가 여러분에게 부족할까봐 절대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반드시 만족시켜 주십니다. 근심과 걱정이 없도록, 걱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더록 우리 영혼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를 위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욕심내면서 기도드려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들을 위한 기도는 그저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달라는 수준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수준에서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족해도 연약해도, 욕심부리지 않고 절망하지 않게 해 줄, 우리 영혼을 그만큼 꽉 차게 해 줄 하나님의 더 큰 은혜입니다. 


주님은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더 큰 은혜를 구하면 그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영혼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만족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 가장 좋은 것, 그 무엇보다 더 큰 은혜를 구하는 가장 지혜로운 자의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욕심을 이기며 가장 만족스러운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