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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1.02. 새벽예배 - 많은 사람이 그를 믿으니라(요한복음 70)


요1031to42 - 많은 사람이 그를 믿으니라.pdf


20130102D (#1).mp3.zip


       

    

     본문 : 요한복음 10장 31-42절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진리를 좋아할까요? 또 교회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진리를 반길까요? 그럴 것같이 생각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영적인 부흥을 이끌었고, 지금도 미국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교회에서 진리를 설교하다가 교회에서 쫓겨나신, 적어도 일반적인 목회에서는 완전히 실패하신 분이십니다. 참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죠. 그 분의 전기를 읽어보면 정말 그 분에게는 잘못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분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성경의 진리에 온전히 헌신하신 분이셨지만 그렇게 자기 교회에서 배척을 당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그 일의 대표적인 피해자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악한 일이라곤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병든 마음을 고쳐주셨으며, 죄에 묶여 있는 것을 풀어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다 선한 일이었고 전부 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구원을 주겠다는 말씀만 하시고 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악하고 능력없는 삶을 살아가셨다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과 행하신 일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도저히 틀린 말일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증거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선하고 놀라운 일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베푸시는 은혜로운 일들은 도저히 하나님을 빙자하여 황당한 이야기를 떠벌이는 사람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고, 반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말만으로는 믿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 그 말을 완전히 뒷받침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그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범죄를 저지르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기준으로 하면 이런 경우 당연히 돌로 쳐 죽여야만 하니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러한 율법적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의 35절은 34절에 대한 주님의 해석인데요. 너무 간단해서 이해하기가 난해 합니다. 그래서 원래 이 말씀이 있는 시편 82편 6절로 가서 그것을 7절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시라서 생략이 아주 심한데요. 그 뜻이즉슨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 율법을 지키면 신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들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율법을 깨뜨렸습니다.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의 삶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시며 또 이루신 그런 삶이었습니다. 선한 하나님의 일들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행하신 일들 만으로는 결코 책을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건 지금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과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기까지 들었으면 유대인들은 고개를 숙여야 마땅합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율법 사람을 신이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곳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하나님을 모독하는 범죄가 될 수 없으니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뒷바침 해주는 예수님의 선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결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율법, 그러니까 구약의 말씀도 있습니다. 이제는 믿어야만 합니다. 믿을 수 없게 하는 모든 이유들이 깨어졌으니까요. 그런데도 믿기는 커녕 예수님을 잡아죽이려는 악한 행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쯤되면 이들의 불신앙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물론 예수님께 대한 불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영적인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신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그 모든 이유를 다 생각해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본문의 유대인들의 모습 속에서 불신앙의 가장 중요하고도 강력한 이유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분노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이미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분노를 더욱 크게 키워가기만 했습니다. 분노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일 때는 그 분노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가치있는 일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분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정당하지 않은 것일 때는 그 분노는 사람을 망가뜨려 놓습니다. 사람이 이런 분노에  사로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그 어떤 생각도 하려고 들지 않고, 그래서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뚤어진 태도만 점점 더 고집할 뿐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진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진리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진리를 위해서 자신을 깨뜨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진리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대신에 진리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저지른 죄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커다란 도전과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신앙이 잘 자라나지 않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언제 자라날까요? 바로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할 때입니다. 순종을 통해 그 진리를 몸으로 확인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은 견고하고 풍성해 집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의 껍질을 깨기 보다는 우리를 지키려고 들 때가 많습니다. 바로 이 일을 가장 크게 거드는 것이 바로 분노입니다. 원래 우리 속에는 자신을 방어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경향이 너무 강해지면 그것은 반드시 분노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항상 화가 나 있고 심통을 부리는 분들이 계시죠?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만큼 그 분들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화부터 내고 보는 것입니다. 먼저 공격을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이제 이런 분들을 보시거든 그렇게 이해하십시오. 아직 그 속에 처리되지 못한 분노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성향이 우리가 진리를 들을 때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깨지는 대신에 진리를 가로막는 가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해 가려면 내 속에 분노가 없는지 잘 살펴보고 그 분노를 처리하는 일부터 먼저해야 합니다. 그렇게 무장해제를 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래서 신앙이 무럭 무럭 자라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진리도 거부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참된 신앙은 결코 자라날 수 없습니다. 꼭 믿어야 할 것, 믿을 수 밖에 없는 것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은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이러한 마음이 자라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처리되지 않은 분노는 없는지 살펴보시고 내 속에서 그런 분노가 다 처리되어 나의 신앙이 정말 풍성하고 자유로운 신앙이 되도록, 또 더불어서 우리 중에 아직도 분노에 사로잡혀 살아가시는 분들이 생각나시거든 그런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속에서도 분노가 사라져서 믿음의 아름다운 성장이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참으로 좋은 밭이 되어서 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더 풍성한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복을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