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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1.03. 새벽예배 - 낮이 열 두 시간이 아니냐(요한복음 71)


요1101to16 - 낮이 열 두 시간이 아니냐.pdf


20130103D (#1).mp3.zip




     본문 : 요한복음 11장 1-16절


육안으로는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정말 조심 조심 다가온다면 우리 눈 앞에 얼굴을 갖다대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적외선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서 움직이는 생쥐 한마리까지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적외선 망원경을 쓴 사람은 어둠 속에 있어도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대낮의 환한 빛 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더듬거리며 다니는 길도 이 사람은 대낮에 대로 걷듯이 걸어다닐 수가 있습니다. 


유대에 가셨던 예수님께서는 거기서 자신을 잡아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서 요단강 건너편,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은혜로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요한의 메세지를 들었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의 예언을 다 성취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엄청난 것을 보여주고 말해 주어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 몸을 피해서 잠시 들르신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바로 빛과 어둠의 차이입니다. 한 쪽은 더 확실한 것을 보고 듣고도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둠 속에 있고, 그 어둠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쪽은 훨씬 더 미약한 것을 보고 들었지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도 많이 믿었습니다. 빛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빛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아주 슬픈 소식이 들려옵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친하게 지내던 가족이 있었는데, 삼 남매 중에서 첫째인 나사로가 심한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입니다. 특히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그의 별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비보를 듣고도 달려갈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대신 이렇게 이상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만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그 말씀은 알아듣지 못했어도 베다니가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려고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이틀이나 흘려보니시고는 갑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대로 가자.” 제자들에게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유대에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피신해 온 지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묻습니다. “주님, 돌에 맞아 죽을 뻔한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유대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제자들로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죠. 자기들의 안전까지 달린 일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십니다. “낮이 열 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여러분은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어리둥절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은 어이가 없었죠. 이틀 전에 분명히 사람이 와서 나사로가 심한 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그저 잠을 잔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주님, 나사로가 그저 잠든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의 진짜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제자들 중의 디두모는 아주 어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농담을 하시는 줄 알고, 농담으로 받아친 것 같습니다. 잠들어 쉬는 것을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도 죽으러 가자고, 그러니까 잠자러 가자고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이 대화가 서로 걷도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하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대화의 당사자들이 속해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리고 빛에 속해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빛과 함께 있지만 아직도 빛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어둠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제자들은 보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그렇게 이야기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먼저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의 의미를 알지만 보지 못하는 제자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말씀조차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의 의미를 훤히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나사로는 죽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사로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죽음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끝나는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나사로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도 훤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빛되신 주님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산다, 죽는다 호들갑을 떨때도 그 모든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훨씬 더 평안하게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살면, 또 어떻게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까, 나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영광을 드러내실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큰 덩어리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결정해야 할 일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을 쉽게 명확하게 확신 가운데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밤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삶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로 들어가려는 예수님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빛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 때가 낮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족하지 않을 때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유대로 돌아가는 일을 너무도 쉽게 결정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한 가지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참으로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면 남들은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결정을 굉장히 쉽게, 그리고 확신있게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엄청 고민하는 문제도 크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잠시 자신을 내려놓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하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언제 움직여야 할지를 오히려 너무 간단하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빛되신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빛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밤이 아니라 낮에 살면서 많이 그리고 크게 실족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죽음의 의미같은 큰 문제는 물론이고 삶의 과정 중에서 내려야할 결정들도 가장 유익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또 믿음으로 내리는 결정이니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는 힘까지 얻게 됩니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도 그러한 불확실성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둠이 아니라 빛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살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항상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신 귀중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나 내 욕심이 내 인생을 결정하게 하면 우리는 점점 더 어두운 데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빛 되신 예수님 안에서, 빛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바라보심으로써 실족하지 않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