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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3.01.25. 금요기도회 - 에스라의 기도(기도 10)


스0904to15 - 에스라의 기도(기도 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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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라 9장 5-15절


 

기독교는 회개와 용서의 종교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내놓고 용서를 빌며, 그 용서의 은혜를 통해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는 신앙을 가진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은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 그렇게 다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용서받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이 일을 피하거나 생략해 버리면 하나님 앞으로 가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일이 불가능해 지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서기관이고 또 제사장으로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이스라엘 사람 들 중의 일부를 이끌고 본토로 돌아와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을 재건하는데 헌신한 지도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라가 이제 막 예루살렘 성전을 성전답게 회복하려고 할 때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으로 때문에 에스라가 드린 죄 고백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하루는 백성의 지도자들 몇명이 에스라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지도층의 죄악에 대해서 보고하였습니다. 일반백성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과의 결혼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일에 여전히 앞장서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국제결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방인들과의 통혼은 그 사람들의 신과 우상, 그리고 그들의 타락한 풍습을 함께 들여오는 것을 뜻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결혼에 지도층이 앞장을 섰던 것은 이방인들과의 결혼관계를 통해서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사람만 받아들이고 그들의 종교를 무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앙은 더럽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보고는 에스라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에스라는 말 그대로 망연자실 해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주저앉아 있었고, 그런 에스라의 주변으로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그렇게 앉아있다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는 죄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에스라의 기도를 통해 죄에 대해, 그리고 죄를 고백하는 기도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그리고 잊고 있었던 우리 신앙의 꼭 필요한 한쪽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에스라는 지도자들의 죄에 대한 보고를 들었을 때, 자신의 속옷과 겉옷을 찢고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뜯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의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죄를 지은 것은 에스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옷을 찟고 자기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 뜯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나’와 ‘우리’를 주어로 해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자신과 이스라엘을 온전한 한 덩어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망연자실해 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머리털과 수염을 뜯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에스라는 자기 수염과 머리를 뜯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들 속에 자신을 포함시켜서 ‘우리의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라고 통회하며 죄를 고백합니다. 요즘에는 참 발견하기 힘든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신앙의 모습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 있다면 바로 ‘교회는 한 몸’임을 믿는 신앙일 것입니다. 매 주일 수많은 사람들이 한 예배당 안으로 모여들어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은 서로를 한 몸으로 생각하고 한 몸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예배드리고 나면 또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가는 그런 사람들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이익에 맞으면 교회에 남아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려고 하고, 교회에 속한 지도자들 조차 교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를 못합니다. 서로를 향해 내가 아니라 네가 문제라고만 합니다. 그러니 주장은 하고 비판은 하되 그 문제 때문에 진정으로 아파하고 마음을 쓰며 기도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잘못은 가려져야 하고 바로잡아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심정만큼은 그것이 또한 나의 문제, 몸된 교회의 한 사람인 나의 잘못이기도 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통감하고 에스라처럼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어떤 문제나 죄가 있을 때 화를 내고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아파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런 마음이 부족하니 죄를 짓는 일도 쉬워집니다. 만약 나의 죄가 내가 속해 있는 몸된 교회 전체의 죄이고, 또 나아가서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의 죄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함부로 죄악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그저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하니 그만큼 죄를 쉽게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성도들인 우리들은 반드시 에스라를 닮은 그런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들의 잘못, 다른 성도들의 죄를 내 허물로 여기고 아파하고 부끄러워하며 용서를 빌 수 있는 그런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피해가거나 희석시키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직면하며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죄가 너무 심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11절로 가서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 금지사항을 어긴 것인지를 고백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약속된 하나님의 복을 발로 차 버린 행위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레위인과 제사장, 그리고 백성들의 지도층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굉장히 용기있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라의 기도가 그 사람들의 죄를 대신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기는 해도 그것은 분명히 힘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죄의 고백은 죄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죄를 숨기려 하거나, 그 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또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합리화하고 무마시키려고 하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진실로 고백할 수 없고 그러면 참된 죄 용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부정적이고 때로는 더럽기까지한 모습들을 직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불쾌함과 아픔을 감당해야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일 때문에 생겨날 현실적인 어려움도 감당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죄를 직면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바로 그러한 직면을 통해서만 참된 죄 용서의 고백이 나올 수 있고, 참된 죄 용서의 은총이 주어질 수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다시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만 생각하면 결코 죄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죄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불쾌하고 고통스러우니까요. 그렇지만 그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질 그 풍성한 은혜를 생각한다면 생각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 불쾌함과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우리 입으로부터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 곁으로 다가오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다시 용납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죄를 직면하기가 꺼려지고, 그 일이 부담스럽게 여겨질 때마다 이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죄의 고백은 단지 죄를 인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은혜의 통로를 다시 여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죄를 직면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은혜를 기대하며 용기를 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일이 훨씬 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세번째로 에스라는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두셨나이다.” 9절을 보면 에스라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방민족의 노예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감사할 내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하나님께 저지른 죄에 비하면 그들이 그만큼이라도 남아있고, 그렇게라도 고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가고 있다는 것이 기적같은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직시하는 것 또한 죄를 직면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 또한 굉장한 유익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 일에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지금도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것 때문에 왠만한 어려움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낮은 존재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지나치게 센 사람들은 사는게 굉장히 괴롭습니다. 남들이 조금 무시하면 파르르...,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기준에 못 미치면 파르르..., 현실이 이상과 다르면 파르르... 실제로 저는 굉장히 똑똑하고 학벌도 좋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준과 평가가 너무 높아서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린 분들을 여러번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그 분들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낮은 존재인지를 알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마도 그렇게 무너진 인생을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자신에 죄에 대해서 더 쉽게 아파할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낮은 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서 굉장히 아파합니다. 자신의 죄는 과분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지른 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또 회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유익입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가는 길을 더 쉽게 다시 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 죄에 대한 통회하는 심령이 부족하다는 것은 실은 죄가 우리의 인생과 교회를 망가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지체들의 죄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내 죄는 교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부풀려진 자아 때문에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 불편하고 아파서 죄를 직면하지 않으려는 것... 이런 모습들 때문에 죄의 골은 더 깊어져 가지만 성도들과 교회는 점점 더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 지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을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 들으러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런 환경보다 죄가 활개를 펴고 살아가기 좋은 환경은 없습니다. 죄는 죄로 느껴져야 합니다. 그리고 죄는 죄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불쾌하고 힘들어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다른 지체의 죄도 나의 죄로 느껴지는 영적인 감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한 기도 속에서 회복되며 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고백과 죄를 직면하는 일이 무겁고 부담스러워질 때,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 앞으로 다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회개의 요청을 사랑의 부르심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므로 항상 마음에 있는 시온의 대로가 막히지 않게 하는 복되고 지혜로운 성도들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가 한 몸임을 깨닫게 하소서.
  2. 그래서 지체의 죄가 내 죄로, 지체의 부족함이 내 부족함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그것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회복되게 하소서. 
  3. 죄가 있을 때에 직면하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4. 내가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지 잊지 않게 하소서. 
  5.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이 닫혀 있지 않게 하소서. 


그러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이런 마음, 이런 신앙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