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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2.13. 새벽예배 - 이 말은 스스로 말함이 아니요(요한복음 77)


요1149to57 - 이 말은 스스로 말함이 아니요(요한77).pdf


20130213D (#1).mp3.zip




날짜 : 2013년 2월 13일 수요일

본문 : 요한복음 11장 49-57절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정해진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분명히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 누구도 변경할 수 없고, 또 가로막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실패하게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이런 진리들은 그것을 묵상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가져다 줍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흔들리기 쉬운 우리의 영혼은 이러한 진리를 생각할 때마다 제 자리를 찾고 또 든든한 평안을 되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은혜로운 진리는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 수준에서는 참 해결하기 힘든 질문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의 인간의 역할은, 그리고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하는 행동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삶과 선택에 대해서 굉장히 무책임해 질 수 있습니다. 또한 때로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대답을 해 주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바른 대답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과 그에 대한 요한의 설명을 살펴보면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움직여 가고 또 하나님의 시간에 그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의 우리들의 선택과 행동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을 위해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그 역할 또한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야바는 대제사장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후 18년부터 36년까지 산헤드린 공회를 이끌었는데, 나라의 정치적인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10년동안 빌라도와 함께 일했던 사람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빌라도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 해에 가야바도 강제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던 것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밀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예수님 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갑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로 갑론을박하던 공회를 향해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함으로써 그 상황을 완전히 예수님을 죽이는 쪽으로 결론나게 했습니다. 정치적 판단으로 볼 때,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것이 거기 모인 공회원 모두의 이익과 부합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꼬집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에 대해서 가야바가 한 말은 그 자신의 생각대로 한 말이 아니라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예언을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부터 그런 의미로 말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뒤에 붙여졌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이 적힌 명패처럼 말입니다. 


가야바는 아주 아주 악한 말을 한 것입니다. 그저 ‘예수를 죽이면 다 끝난다. 예수를 죽이자’는 이야기만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온 민족이 망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좋다’는 고상한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한 아주 정확한 예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그는 예수님께서 그런 죽음을 당하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말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한 것이고, 그의 결정은 예수님과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으니까 그가 잘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악한 마음과 악한 생각을 품었으며 그래서 악한 말을 하고 가장 악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신하게 만들고 결국 예수님을 죽게 만듭니다. 모두가 다 당장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망쳐놓은 것 같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는 커녕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고 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서 가지는 위치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저런 결정을 합니다. 그런 결정들은 아마도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든지 아니면 반대가 되든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가깝든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든지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되든지 아니면 불순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과 반대가 되거나 혹은 거리가 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되는 선택을 하면 우리는 그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쪽을 선택하면 그것을 우리는 순종이라고 그리고, 선을 행한 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선택을 어떻게 하든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한 행동과 선택들 하나 하나를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결국에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선한 것도 그렇지만 심지어는 악한 것도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반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사용하셔야 하며, 또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 일을 통해서 불신앙과 악한 일들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흐려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기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딱맞는 도구가 됩니다. 분명히 사람의 결정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큰 뜻과 계획이라는 틀 안에서만 그렇게 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표에 따라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일시적으로는 에브라임 산지로 피신하실 수 밖에 없으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뜻이 이루어졌던 것을 보면 우리는 이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어떤 모양으로이든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결정과 선택이 최대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것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 또한 하늘의 상급을 쌓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조건 거창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자체는 굉장히 크고 거창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틀 속에서 이렇게 또 저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되는 우리의 선택들은 그렇게 거창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가야바의 말 한마디처럼 굉장히 작고 사소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말 한 마디나 작은 행동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운 것을 선택하시기 위해 애쓰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록 작게 여겨져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놀라운 도구가 될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숨겨지지 않고 더 드러나게 되며,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영광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