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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2.27. 새벽예배 - 내가 너를 씻겨주지 아니하면(요한복음 86)

    

요1301to11 -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요한8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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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3장 1-11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셨는데, 식사 중에 갑자기 일어나셔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아주 충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당시에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발을 씻어주는 일은 환대의 표시이기는 했지만 그 일이 너무 천한 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 종들에게는 맡겨지지 않았고 이방인 종들에게만 맡겨지는 일이었습니다. 또 당시 유대인들이 읽었던 ‘요셉과 아스낫’이라는 소설 속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요셉의 신부인 아스낫이 요셉을 너무 사랑하여 그의 발을 씻겠다고 하자 요셉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하녀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스낫은 요셉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주님.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고 나는 당신의 하녀입니다. 당신의 발은 나의 발이고 당신의 손은 나의 손입니다. 다른 여인은 결코 당신의 발을 씻기지 못할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도 있었는데, 이스마엘이라는 랍비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발을 씻기려고 하자 똑같은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그 랍비의 아내는 남편의 발을 씻기는 것이 자신의 명예라고 주장하면서 랍비들의 법원에 심사를 의뢰했다고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다른 이의 발을 씻기는 것이 얼마나 비천한 일이면서도 거기 사랑이 더해질 때는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고귀한 헌신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다른 이의 발을 씻기는 것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그 사람을 향한 더할나위 없는 헌신의 행위였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종 중에서도 가장 천한 종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그 행위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 때문에 절대로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는 해 줄 수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후에 제자들, 그러니까 자신이 가르치고, 자신을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던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헌신과 섬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른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예수님의 행동을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베드로가 그토록 강력하게 거부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녁 먹는 중에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일을 아셨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가신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행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로서의 소명과 그 소명을 이루는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애 전체와 또 행하셔야 하는 모든 일들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하신 일이 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발씻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선택하신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그것 자체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숨기고 있는 수수께끼가 너무 많습니다. 또 그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 충격적이고 처절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보여주시고 느끼게 해 주시려고 스승이요 주님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일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선택하신 방법은 세상 위에 군림하여 힘을 휘두르는 그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세상과 경쟁하여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을 눌러 이기는 그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구해야할 사람들을 위해서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시고 대신 죽으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낮고 천한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은 바로 그런 십자가를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시고 느끼게 해 주신 일이었고, 또 배우게 해 주시기 위해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한 것, 이 세상 그 무엇도 꺾을 수 없고 이길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들을 살리신 것은 힘이나 능력에 의지한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힘이 있으셨고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열 두 부대나 되는 천사들을 말씀 한마디로 동원하실 수 있는 권능을 지니신 분이셨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편에 있는 방법,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고 낮추고 섬기며, 온전히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세상이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절대로 저항할 수 없는 능력이 되어서 세상을 이기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들을 구원하는 가장 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승이요 주인이지만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가장 높고 존귀한 분이시지만 자신을 가장 비천하게 낮추신 것. 이것이 주님께서 죄를 이기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신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우리는 기독교가 세상에서 가장 창피한 종교, 가장 능력없는 종교, 그리고 가장 많이 욕을 먹는 종교가 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얼마나 부끄럽고 슬픈지 모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이런 현실 자체가 아닙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그 최전선에서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종교를 이런 부끄러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심각하게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나아가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목회자요 교회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십자가가 기독교의 구원의 방법과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슴 속에 웃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신 채로 기쁘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자여서 목회자의 경우만 말씀드렸지만 비단 목회자만 이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영혼 속에 이제는 거의 지워져 버린 거룩하고 능력있는 그림 하나를 다시 그려야 할 것입니다. 웃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가장 낮지만 가장 기쁘고 가장 능력있는 우리 주님의 그림을 말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이기고, 또 세상을 이기는 그런 성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런 예수님을 흉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며,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이끄는 거룩한 일을 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왕이 아니라 종이 되어 다른 이들의 발을 씻기는, 그런 종의 능력과 기쁨을 아는 성도들이 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벌써 충분히 사용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 쓴 열매를 너무 많이 거두어 들였습니다. 


발을 씻기는 일.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십자가는 지는 방법입니다. 죽지 않고 죽는 방법입니다. 지는 것 같으나 이기는 방법이고, 약한 것 같으나 가장 능력있는 우리 주님의 방법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환히 웃으시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세상을 구원하신 능력있는 분의 빛나는 모습을 흉내내며 영광스럽고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원을 회복해 보기시 바랍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이웃들 사이에서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섬기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닮아가며 살고 싶다는 소원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그림이 날마다 더욱 더 진해지게 하셔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능력있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