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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3.03.01. 금요기도회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3(사도행전 3)

행0101to05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3(사도행전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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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장 1-5절



누구나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 청개구리가 세상이 떠날 때가 되어 아들 청개구리에게 자신의 무덤에 대해서 유언을 남기기로 합니다. 그런데, 아들 청개구리는 언제나 엄마 말이라면 정반대로 어긋나가는 놈이라서 엄마 개구리는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내용을 말해주기로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 줄테니까요. 그래서 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잘 듣거라. 엄마의 마지막 부탁이 있다. 너 내가 죽거든 산에다 묻지 말고 물가에 묻으렴. 엄마 마지막 소원이니까 꼭 그대로 해야한다.” 이 말을 남기고 엄마 개구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항상 반대로 하던 아들 청개구리는 이번에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합니다. 엄마 개구리를 물가에 묻습니다. 그 때부터 아들 개구리는 비만 오면 물가에게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개굴 거리며 울게 되었고, 그게 비만 오면 숫놈 개구리들이 우는 이유라는게 그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너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있을 때 말 잘 들으라는 교훈을 지닌 아주 슬픈 이야기 입니다.  


천하의 말 안듣는 아들 청개구리도 엄마 개구리의 마지막 말은 그대로 따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엄마의 말을 따른 적이 없었던 아들이 왜 유독 엄마의 마지막 말은 실제로는 참 이상한 부탁인데도 그대로 따라했을까요?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말이 가지는 무게 때문에 천하의 아들 청개구리도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게 누구의 말이든, 아무 생각없이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 사람이 일생동안 한 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지닌 중요한 말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고 남길 수 있는 마지막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사도행전이 전하는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아니 모든 교회를 향해 남기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성도들은 다른 말씀들도 그렇지만 특별히 이 두 개의 말씀에 대해서는 특별한 무게를 가지고 생각하고 또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청개구리처럼 다른 말씀들에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았을지라도 이 두 말씀만큼은 꼭 받아들이고 순종해야할 각별하고 심각한 말씀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으며, 이것이 그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주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말씀 모두가 다 성령님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4절은 성령충만을 허락할 것이니 그것을 기다리라는 약속의 말씀이고, 8절은 그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너희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어떤 일을 하게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신 말씀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4절보다는 8절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거기 온 세상의 복음화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절은 혼자 존재할 수가 없고, 반드시 4절의 결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사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8절이 아니라 오히려 4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에 살펴보았던 3절을 보면 거기에는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던 마지막 40일 동안 하셨던 두 가지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계속해서 보여주신 것과 하늘나라의 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두 가지에 집중적으로 힘을 쓰신 이유는 이것이 앞으로의 사도들과 성도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 절인 4절에서 성령세례를 줄 것이니 성령을 기다리라는 주님의 약속과 명령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로 이 약속과 명령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40일 동안 가르쳐 주신 하늘나라의 일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주시겠다는 약속, 그러니 너희는 성령세례를 기다리라는 명령은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교회에게 주신 모든 말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무게있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과 8절은 사도행전과 나아가서 신약성경 전체의 중심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구약을 통해 주신 모든 약속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주님의 그 두 가지 약속이 진짜로 성취되었으며, 또 여전히 성취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사도행전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동안 1장 4절과 8절을 마음에 새기고서 그렇게 하신다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정확하게 말씀드려서 2-3년전까지도 사도행전 1장 4절의 약속과 명령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인지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나서 사실 제 신앙과 사역의 중심이 그것 때문에 굉장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먼저 질문을 좀 드려보겠습니다. 그저 여러분 자신의 평상시 생각을 한 번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만 할까요? 성령충만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성도라면 누구나 꼭 그래야 하는 필수사항인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우리 각자의 생각이 있겠지만 성경이 주는 정답은 성도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하고 그래서 성령충만함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40일 동안 계속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모임이었습니다. 특별한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특별한 언약을 맺기 위해서 그 언약의 당사자들인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모인 별도의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교회의 대표이니 그 언약은 우리의 언약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그 때 맺은 특별한 언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우리말 성경에는 분부라고 되어 있지만 주님은 분부가 아니라 명령을 하셨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해준 아버지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세례’ 그러니까 사도들을 비롯한 성도들이 성령님 안에 충만하게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꼭 성령충만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성령충만을 주실 때까지,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말입니다. 


약속하셨습니다. 명령하셨습니다. 게다가 유언하시듯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성령충만이었습니다. 성령충만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성도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성령충만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가장 절실한 소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이런 뜻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사도행전이 그저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읽고 또 은혜로운 역사들을 읽었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은 단순한 초대교회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세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진짜로 이루셨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령세례, 그러니까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들과 사도들이 얼마나 놀랍고 능력있는 삶을 살면서 이 땅에 하늘나라를 얼마나 멋지게 드러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들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기록이 가지는 진짜 의미였습니다. 저는 그 제서야 사도행전이 오늘날도 그렇게 간구하라는, 오늘날도 성령충만하라는, 그래서 오늘날도 그렇게 능력있는 삶을 살라는 도전이고 축복이고 약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게 되고 나서 덤으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렇게 힘들고 나약한, 능력과 기쁨이 부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 왜 그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속에서 성령충만하기 이전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의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그 주님과 40일을 함께 지내며 하늘나라의 일들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천사처럼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나가서 목숨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00명 5000명씩 회개하게 만들구요.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의기소침해 있었고 예전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직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성령충만하기 이전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해답입니다. 성령충만해야 하는데, 성령충만하지 못하니 성령충만할 때만 가능한 능력있고 영광스러우며 소망넘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다음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별로 하지 않던 기도를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성령충만을 달라고, 꼭 허락해 달라고, 아니 허락해 주셔야만 한다고 절실하면서도 너무 당당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성령충만하라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령충만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성령충만은 하나님을 위해서, 또 우리 자신을 위해서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 할 우리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놀랍게도 우리가 그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성령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허락한 정도가 아니라 꼭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 동시에, 일종의 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믿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해도 좋습니다. 막 달라고 졸라도 좋습니다. 떼써도 좋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주십니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일부러 사도들을 불러 다시 확인하며 도장까지 찍어주셨으니 안 주실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제가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함께 기도를 드리자고 말씀드릴 때, 저는 그것이 마땅히 기도해야 할 의례적인 기도제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들과 하나님을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충만을 약속해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 절실함과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리며 권면합니다. 계속해서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의 성령충만, 우리 교회의 성령충만을 여러분의 기도제목의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기도드려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릴 때면, 잊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과 우리 교회의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성령충만이 답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 광현교회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답입니다. 물론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절실한 것은 바로 성령충만함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가운데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확신합니다. 우리가 구하면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이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령충만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성령충만이 뭔지 몰라도 좋습니다. 사도들도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구했습니다. 구하라고 하시니 구했고, 그래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들의 능력이 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론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간구해 주십시오. 성령충만을 달라고, 약속하셨으니 달라고 계속 떼써 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최고로 복된 의무이며 가장 거룩한 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도행전이 설교되는 동안에 우리의 성령충만함을 위한 소원과 기도가 뜨거워지게 하시고 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