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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06. 새벽예배 -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요한복음 91)

요1336to38 -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요한9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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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3장 36-38절

사람에게는 자신이 들으려고 하는 것만 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얼마나 맞는 말인지 정말 사람은 자기가 들으려고 하는 것만 듣는 것 같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설교를 하거나 혹은 성경을 가르쳐 보면 사람들의 이런 모습이 대번 드러납니다. 분명히 설교는 하나이고 똑같은 성경본문을 한 사람이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굉장히 다르게 알아듣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른 은혜를 얻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듣든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따라, 취향에 따라 그리고 또 관심사에 따라 해석하고 골라듣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실 설교자에게는 축복이기도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곤란한 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이 잠시 동안이지만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몰라도 당장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곳에 제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살펴보았듯이 사실 이 말씀은 단순히 떠날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귀에는 예수님의 다른 말씀은 안들리고 “나는 떠난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는 말씀만 들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대뜸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아마 베드로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예수님을 버리고 더 이상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들렸으니까요. 그래서 아주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런 일은 없다고, 당장이라도 내 한 목숨 버리고 바치는 일이 있어도 결코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든 당장 따라나서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찬물을 끼얹는 말씀이었고 너무도 매몰찬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서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제자에게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는 커녕 너는 오늘 한 밤이 다 지나기 전에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제가 언젠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 때 함께 공부를 했던 집사님들이나 권사님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온다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뭘 그런 걸 다 묻는냐는 듯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인지 그런 대답을 기대하지 못했던 저로서는 굉장히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질문을 했던 저는 전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물론 그 분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다 진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을 떠나신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뒤를 따라올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베드로의 말은 그의 충심이 담긴 진실된 이야기였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베드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크게 보면 인간자체에 제대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했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큰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베드로의 호언장담은 ‘그 당시의 진실’이 될 수 있었을 지언정 ‘참되고 변함없는 진실’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변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런 상태에 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또 언제 어떤 상태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만약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면 나중에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좋지 않은 상태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결코 완전히 한 가지 마음만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 선한 마음이 크다고 해서 그런 마음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이 사실이구요. 누가 이만큼 나이 먹어서 자신에 대해서 그런 순진한 생각을 품느냐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실제로 우리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미래의 마음에 대해서 호언장담을 하는 것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서 절대로 마음을 바꾸어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바로 이러한 우리의 모습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거짓말을 하게 될 때도 있고, 간사하게 자신의 태도를 바꾸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말을 할 때, 그 때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그게 진심이었고 죽었다가 깨나도 그 말을 지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영적인 상태가 변합니다. 상황이 변합니다. 또 내가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순간에 시험이 다가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예전의 호언장담이 강했으면 강했을수록, 거기 나의 진심이 크게 실려있었으면 크게 실려있었을수록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더 큰 영적인 실패를 경험하고 더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속에는 우리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고 말할 수 있는 베드로만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는 그와 정반대로 하루도 다 지나기 전에, 밤에서 새벽이 되기도 전에 두려움에 떨며 주님을 배반하는 그런 베드로도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죄인인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좋고 바람직한 모습을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그 반대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긍정의 힘이다 뭐다 해서 마치 그것만이 신앙적이고, 그것만이 바람직한 것인양 여겨지는 이런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목숨을 걸더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따르겠다고 말하는 베드로에게 네 속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베드로 뿐만이 아니라 새벽이 오기도 전에 나를 세 번씩이나 거듭 부인할 수 있는 그런 베드로도 들어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신에 대한 참된 긍정이란 자기 속에 있는 바람직하고 선한 모습과 더불어 그 정반대편에 있는 그렇지 못한 어두운 모습까지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긍정이며, 긍정의 진짜 힘은 이것까지 긍정할 때 비로소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은 긍정은 반쪽짜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후에는 따라 오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주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을 줄 때, 그 때가 되면 그런 호언장담이 없어도 우리는 기쁘게 주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좋은 믿음, 굳건한 믿음, 그리고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하고 우리가 우리 믿음에 대해서 장담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겸손한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겸손한 믿음이 안전한 믿음입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지만 그 뒷편에는 언제나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는 연약함도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겸손한 믿음이 오히려 영적인 실패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능력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저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믿음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다고 해도, 그 믿음이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신뢰하는 믿음이라면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주기에 충분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항상 나의 연약함을 잊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더 온전한 믿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기도를 잊지 않고 겸손하게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믿음의 능력으로 주님을 따르는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셔서 영적인 실패에 빠지지 않고 시험을 이기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